3000km 날아온 ‘귀한 손님’ 위해 열리는 독수리 식당 [포토다큐]




독수리는 겨울이면 남쪽으로 내려오는 철새다. 몽골 초원에서 3000㎞를 날아 북한 영공을 지나 철원·파주·고성·김해 등 곳곳에서 겨울을 보낸다. 천연기념물 제243-1호이자 멸종위기종으로 날개폭이 3m에 이르는 국내에서 가장 큰 수리류다. 강인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먹이를 제때 찾지 못하면 쉽게 쓰러진다. 해마다 우리나라를 찾는 2500여 마리 중에서도 100마리 안팎이 굶주림이나 농약 중독, 감전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런 독수리들을 보호하기 위해 겨울마다 특별한 식당이 차려지고 있다. 안전한 먹이를 제공해 겨울을 나게 돕는 ‘독수리 식당’이다. 현재 파주와 고성을 포함해 전국 13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매해 11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경기 파주시 문산읍의 한 논에 독수리 식당이 문을 연다. 2009년 파주 생태 보전을 고민하던 임진강생태보존회 윤도영 회장이 독수리 개체 수 감소를 체감하며 사비로 먹이를 마련한 것이 출발이었다. 한 끼에 마리당 1㎏씩, 100㎏이 훌쩍 넘는 돼지고기를 준비하는 일이 수년간 이어졌다. 2016년부터 뜻이 맞는 이들과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400여 명의 회원 중 파주·안성·김포 등지에 사는 활동가 20명이 돌아가며 꾸준히 현장을 지킨다. 2024년부터는 사람 손님도 독수리 보호 활동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체험비를 1만 원씩 받아 운영에 보태고 있다.


식사에 쉬는 날은 없기에 운영 기간에는 명절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매주 화·목·토요일 오전 9시 30분이면 문을 연다. 주요 손님은 200~300마리 독수리지만 입소문을 타며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100명 넘는 시민들이 찾는다. 늘어난 독수리와 사람 손님에 맞춰 식당 터를 옆쪽 더 넓은 논으로 옮겨 제한 없이 체험객을 받고 있다.



식당이 문이 열리기 전부터 차량이 속속 도착한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탐조가들이 들어서고, 아이 손을 잡은 가족들이 뒤를 잇는다. 한 어린이는 수줍게 독수리 종이접기를 활동가에게 건네기도 했다. 조류인플루엔자 예방을 위해 발 소독을 마친 뒤 천막에 모이면 30분간 윤도영 회장의 생태 교육이 이어진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독수리는 스스로 사냥이 가능한 이글(Eagle)이에요. 하지만 진짜 ‘독수리’는 벌처(Vulture)예요. 사냥을 못 하는 대신 동물 사체를 먹으며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해요. 점점 도시가 늘어나며 독수리가 사라지고 있죠. 모든 생물이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잖아요? 여러분이 오늘 독수리도 지구에서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활동을 하는 거예요”


오전 10시가 되자 20㎏짜리 돼지고기 박스 20개가 논바닥에 흩뿌려진다. 독수리 150여 마리는 이미 근처에 모여 있다. 숲에 있던 독수리들도 하늘로 올라 원을 그리며 맴돈다. 활공하던 독수리들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일제히 내려앉자 본격적인 식사 시간이 시작된다. 식사는 10분 남짓이면 끝난다.


매번 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흐리거나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독수리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안전이 확보됐다고 판단할 때까지 기다린다. 길게는 사흘 동안 먹이를 앞에 두고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야생의 본능이다.


싱가포르에서 온 킴벌리 씨는 “이렇게 많은 독수리를 한자리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자국에서 겨울을 나던 독수리 두 마리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뒤 한국의 독수리 식당을 알게 됐다. 꼭 와보고 싶단 마음이 들어 여행 중에 들렀다. 비행기 시간 탓에 먹는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다음에는 꼭 보겠다”며 웃는 얼굴로 독수리들에게 인사했다.


활동가들은 먹이를 ‘최소한’만 제공한다. 이곳에서 겨울을 무사히 나되 몽골로 돌아가서도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약 60차례 정도 밥상을 차리고 독수리들이 북쪽으로 떠나면 식당도 문을 닫는다. 겨울 논은 다시 고요해진다. 다시 3000㎞를 날아올 귀한 손님을 기다리며.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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