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면 독하고 유능해지는 ‘결핍효과’…꿈과 용기가 버텨줘야[박찬희의 경영전략]

권투 영화의 대표작 록키 시리즈 제2편에서 챔피언이 된 록키는 호텔 연회장을 꾸민 스테이지와 같은 링에서 미디어의 집중 조명 아래 쇼와 같은 훈련을 한다. 도전자는 지하 감옥과 같은 낡은 도장에서 이를 갈며 연습을 하는데 결국 화려함에 들뜬 록키를 무너뜨린다. 제2편의 제목인 ‘호랑이의 눈(eye of the tiger)’은 성공한 챔피언 록키가 잃어버린 근성과 투지를 상징하는데 산속으로 들어가 가난한 시절의 훈련법으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은 록키는 다시 챔피언이 된다. 이른바 ‘결핍효과(scarcity effect)’를 보여주는 사례다.
인공지능 세상의 중심으로 부각된 하이닉스의 경우도 주목된다. 경영진과 개발자들은 입을 모아 언제 망할지 모르는 처지에서 없는 돈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풀면서 독한 경영의 유전자가 생겼다고 회고한다. 낡은 장비를 고쳐 쓰려다 부품을 못 구해 청계천 공구상을 뒤지는 이야기도 나온다. 인텔에 밀려 입장이 어렵던 AMD와 함께 손잡고 엔비디아와 함께 새 판을 만든 것도 아쉽고 부족한 언더도그(underdog)의 투지가 함께한 면이 있다.
부족하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쫓기고 시달리다 얼이 빠지면 잘하던 일도 못한다. 그러다 지치면 용기가 꺾이고 주변의 도움도 사라진다. 유능한 경영자는 부족함 속에서 독하고 유능하게 힘을 모으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다. 함께 해낸다는 믿음으로 용기를 살려낸다.
◆빚이 많으면 쓸데없는 짓을 못한다
한심한 경영학 교과서나 뻔한 언론 보도에는 ‘방만한 경영으로 빚이 쌓여 망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생각해 보면 빚이 많아 망한 것이 아니라 망할 회사가 버티다 빚이 쌓인 면도 있다. 좋은 사업이면 돈이 몰린다. 3년 뒤에 100배가 될 지분을 헐값에 마구 팔기보다 부채를 끌어 쓰는 편이 낫다. 자본은 위험수익률을 요구하므로 기회비용이 크다. 서민들의 부동산 갭투자에 담긴 레버리지 효과도 같은 맥락이다.
부채가 많으면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쓸데없는 짓을 못한다. 부채의 규율효과(disciplinary effect)인데 은행이 거는 깐깐한 대출조건(covenant)도 한몫한다. 1억원 대출 받아서 집장만 하고 아껴 쓰며 갚는 것이 1억원 저금해서 모으기보다 쉬운데 커피 1잔, 택시비 1만원 쓰려면 대출이자 생각이 덜컥 나기 때문이다. 결핍효과가 작동하는 셈이다.
사모펀드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부채를 잔뜩 일으키고 자산을 매각한 후에 특별배당으로 현금을 확보한다. 다른 한편 자본시장이 선호하는 적극적 구조조정으로 기업가치를 높여 매각한다. 이런 ‘차입형 자본재편이 단물 뽑고 버리는 ‘먹튀’인지 경제의 탄력성을 높이는 효과적 조정과정인지 늘 논란인데 사모펀드를 옹호하는 쪽은 늘어난 부채가 빚더미가 아니라 경영진을 규율하고 핵심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현금흐름을 만들어 주가를 높여야 수지가 맞으니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3년에 주가 2배, 빌린 돈은 연리 20%’ 같은 조건으로 펀드를 모집했기 때문이다. 기본적 투자도 없이 핵심 자산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주가 목표를 위해 내부자거래에 나서기도 한다. 결핍이 주는 집중효과에 동반되는 후유증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는 결핍효과의 반대 사례이다. 애써 산업을 일으키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으니 힘을 모으는 전략이 설 자리가 없고, 노곤함에 익숙해진 사회는 절실함이 어색하다. 부패한 정권이 해먹어도 ‘그러거나 말거나’가 되면 국민은 배부르고 게으른 노예가 된다. 힘센 나라에 헐값에 자원 팔아먹고 비싼 물건 사주는 불쌍한 처지가 된다.
◆결핍효과, 청구서가 돌아온다
부족해서 잘된다면 가난한 사람, 못사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쫓기고 시달리다 보면 꼭 필요한 일도 못하고 피가 마르다 정신줄 놓는 일도 벌어진다. 천신만고 끝에 결핍을 넘어서면 끊어진 활시위처럼 퍼져버리고 다시 떨쳐 일어나기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넉넉히 갖춘 가진 자의 저력이 힘을 발휘한다.
행동경제학은 결핍효과를 터널링(tunneling)으로 설명한다. 부족하니 생각과 행동의 폭을 좁히는데, 당장은 힘을 집중해서 효과를 얻지만 결국 그 대가를 치른다. 부족한 상태에서 계속 무리한 결과 피로와 짜증이 무력감으로 이어지고, 생각의 에너지가 떨어지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생각의 틀 밖에 두었던 중요한 문제들이 불거질 수도 있다. 급한 불 끄느라 화재예방을 못하는 셈이다. 뒤로 미루고 빌려 쓰다 보면 부족함이 일상이 되어 결핍효과 자체가 줄어든다.
몸이나 마음이나 회복을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 기본적 조건이 안 되면서 ‘악으로 깡으로’ 영원히 버틸 수는 없다. 고생에 지쳐 기가 꺾이면 나중에는 힘든 일을 마주하면 바로 포기하는 일도 벌어진다. 약물에 의존해서 한계를 넘다 보면 생명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주장도 있다. 악과 깡으로 버티는 투혼은 정말 필요할 때 쓰고 반드시 쉬어서 회복해야 한다.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도 결핍효과의 청구서는 돌아온다. 위기극복을 위해 현금 확보에 온 힘을 모으면 미래를 위한 탐색과 투자에 공백이 생긴다. 비용삭감과 구조조정으로 바짝 긴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능한 인재가 먼저 떠나는 현상이 벌어진다. 혁신은 다양한 실험적 시도에서 나오고 느슨한 긴장과 여유 자원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끝도 없이 쫓기고 시달리는 회사에서 무한정 영혼을 갈아 넣는 투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기업 차원에서 피로와 휴식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단기결전’ 방식이 관행이 되면 정보탐색과 의사결정의 과정이 부실해진다. 무리한 도전에 성공하면 위험에 둔감해진다. 급해서 택한 편법이 익숙해지면 합리적 기본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러일전쟁 이래 일본은 육군 강경파의 무모한 전략이 영웅적으로 미화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자살돌격으로 이어지고 패망으로 끝났다.
◆기회와 가능성에 대한 믿음
미래의 기회와 가능성을 믿을 때 부족함 속에서 독하고 유능하게 힘을 모을 수 있다. 함께 해낸다는 믿음이 있어야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기본을 지키며 미래를 준비한다. 결핍효과의 후유증도 작아진다. 무엇보다 유능한 사람이 떠나지 않는다. 기회와 가능성을 설득하지 못하는 경영자는 어떤 희생도 요구할 수 없다.
마이너리그는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야구를 한다. 메이저리그의 영광이 보이기에 버티는데 극단적인 차이는 ‘이렇게 힘들어도 하겠느냐? 안 되면 빨리 떠나라’는 뜻이다. 어설프게 오가다 인생의 다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얘기다. 기회가 나의 것이 아니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낫고 경영자는 그 답을 줄 의무가 있다.
하이닉스가 고난의 시절을 버티고 지금의 입지를 갖게 된 것은 구성원들이 최소한 사업의 미래를 믿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으로 자금과 사업 네트워크가 더해지면서 가능성이 확대되었고 최근 이슈가 되는 ‘거액의 성과보상’은 이를 확인해준 면이 있다.
부족하면서도 넉넉하다 착각하고 안일하면 그야말로 망하기 딱 좋다. 유리한 입지와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 독하고 유능하게 힘을 모으면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혁신으로 얻은 독점적 우위가 회사를 ‘누리고 폼 잡는 곳’으로 만든다면 따뜻한 (안일한) 품에서 벗어난 신규사업으로 변화를 읽고 기회를 만들게 이끌어야 한다. 그럴 능력이 안 되는 경영자는 회사와 나라를 망친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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