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 미술 거목 ‘광부화가 황재형’ 태백에 잠들다

안현 2026. 3. 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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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74세로 별세 예술계 애도
강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 헌신
탄광촌 일상·공동체 애환 기록
머리카락 등 현실 오브제 활용

“세상 어디든 희망 없는 곳이 막장이다.”

강원 태백 탄광촌에 정착해 노동자들의 삶과 시대적 모순을 화폭에 담아온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거목, ‘광부 화가’ 황재형(사진) 화백이 지난 27일 별세, 1일 발인이 엄수됐다. 향년 74세.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황 화백은 유년 시절 해변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며 처음 미술에 눈을 떴다. 남도 화단의 대가 오지호와 강연균의 화실에서 고학하며 예술적 기틀을 닦았고, 중앙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해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걸었다. 재학 시절에는 ‘현장 속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작가 동인 ‘임술년’을 결성해 참여 미술 운동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특히 이 시기 그린 ‘황지 330’(1981)으로 제5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일찍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1980년 황지광업소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낡고 흙 묻은 작업복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려낸 작품은 옷 주인은 사라지고 빈 껍데기만 남은 상태를 통해 노동자의 부재와 죽음, 그 뒤에 가려진 사회적 모순을 강렬하게 고발하며 미술계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작업실에 머무는 예술가에 만족하지 않았다. “가장 뜨거운 진실은 현장에 있다”는 신념 아래 1982년 돌연 가족과 함께 강원도 태백으로 이주했다. 태백, 삼척, 정선 등지에서 약 3년 동안 직접 광부로 일하며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노동의 고통과 숭고함을 몸소 체험했다. 탄가루와 돌먼지로 인한 만성 결막염과 지병인 허리 디스크 악화로 결국 갱도를 나와야 했지만, 이 경험은 그의 평생 작업을 지탱하는 신념이 됐다. 막장의 삶을 몸소 겪은 고인은 건강 악화 이후에도 태백에 정착해 노동·문화운동에 헌신하며 탄광촌의 일상과 공동체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기록해 왔다.

이후 ‘식사’, ‘광부초상’ 등의 작품을 통해 노동의 무게와 인간의 존엄을 기록했다. 신경림 시인은 그를 두고 “광부들을 지도하려는 화가가 아니라 그들 속에 들어가 삶의 진실을 배워 화폭에 옮긴 화가”라고 평했다. 그는 대상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물질’ 그 자체를 화면에 구현했다. 정제된 유화 물감 대신 탄광촌의 흙과 석탄 가루를 직접 짓이겨 발랐으며, 규격화된 캔버스를 벗어나 거친 산업 폐기물이나 가공되지 않은 판재를 지지체로 삼아 척박한 현실의 질감을 기록했다.

특히 두꺼운 마티에르(질감)와 변형된 화면을 활용한 시도는 노동의 무게와 현장의 생동감을 물리적 실체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에는 쇠락한 폐광촌과 강원도의 풍경을 바라보며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작업을 통해 인식의 전환을 유도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머리카락이라는 파격적인 매체를 도입해 예술적 지평을 넓혔다. 탄광촌 사람들과 시대적 아픔을 형상화하기 위해 수십만 가닥의 머리카락을 화면에 한 올씩 심어 넣는 고된 공정을 지속하기도 했다. 고인은 인간의 몸에서 자라나는 머리카락이야말로 현실의 불평등 속에서 누구나 공평하게 지니는 ‘평등의 징표’이자, 그 사람의 생명력과 삶의 기록이 녹아있는 매체라고 봤다. 한 올 한 올 심어 넣은 머리카락은 소외된 생명력을 회복시키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세상은 그를 ‘광부 화가’라 불렀지만, 황 화백은 “광부는 태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현대 사회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모든 인간을 작품의 시선 안에 뒀다.

은퇴 후에도 진폐증을 앓는 노광부의 얼굴을 세밀하게 묘사한 ‘아버지의 자리’, 바이칼 호수를 흑연으로 표현한 ‘알혼섬’, ‘백두대간’ 연작 등을 통해 인간과 자연, 노동과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을 꾸준히 탐구했다. 세밀한 사실주의 기법으로 재현해 낸 탄광촌 사람과 풍경은 곧 강원도의 대자연과 백두대간으로 옮겨갔다. 시선의 이동과 확장은 ‘막장’이라 불리는 절망의 끝에서도 인간성, 시간성, 역사성을 관통하며 희망과 회복을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보여준다.

202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 ‘회천(回天)’을 열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담아 40여 년에 걸친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선보였다.

가나아트는 조사를 통해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치열한 눈으로 현실을 응시한 화가”라며 “한 사람의 삶이 곧 한 시대의 초상이 될 수 있음을 평생에 걸쳐 증명해 보였다”고 추모했다. 끝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은 예술가는 그렇게 태백 황지에 영면했다. 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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