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경찰 ‘수사 독점’의 위험한 예고편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헌금 사건을 취재하면서 ‘검찰 개혁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의 소셜미디어를 들여다보곤 했다. 검찰 수사를 비판하던 그들이 같은 당 김병기·강선우 의원을 둘러싼 경찰의 늑장·봐주기 수사 논란에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수사가 본격화한 지 두 달이 넘도록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 해체 법안으로 표적·하명·정치적 수사를 막겠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정권 입맛에 맞춘 ‘봐주기 수사’가 검찰만의 문제는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경찰 고발 사건들은 몇 달 동안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동작경찰서는 김 의원 측이 동작구의원들에게서 불법 선거 자금을 받았다는 탄원서를 확보하고도 두 달간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동작서는 김 의원 아내의 동작구의회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의혹에 대해 내사를 벌였으나 사건을 뭉갠 혐의로 서울경찰청 수사를 받고 있다. 김 의원은 당에서 제명된 후에야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를 받았다.
언론 보도 이후 수사가 본격화했지만 부실 수사 논란은 계속됐다. 지방선거 공천을 대가로 강 의원에게 1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는 김경 전 서울시의원은 수사 첫날 미국으로 출국했다. 공천 헌금 의혹이 제기된 지 열흘이 지나도록 김씨와 강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도 없었다.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한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우파 성향 단체 리박스쿨이 댓글 조작 의혹으로 경찰에 고발된 날 페이스북에 “경찰은 즉각 압수수색 하라! 증거 인멸 시간을 벌어주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썼다. 그런데 경찰은 지난달 강선우 의원에 대한 구속 수사를 주장하면서 “(이미) 안방과 옷방 등 모든 공간이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청소 및 정리 정돈이 돼 있는 상태였다”고 했다. 정권 눈치를 보느라 늦어진 압수수색이 증거 인멸 시간을 벌어준 것 아닌가. 이에 대한 김 의원의 고견이 궁금하다.
‘검찰 개혁’을 외치는 이들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어 외부 견제를 받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실제 그런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각종 권력 수사를 다루는 방식들을 보면 본질은 권한의 배분이 아니라 권한을 쥔 주체를 누가 주무르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벌써부터 경찰의 권력 수사가 한없이 늘어지는데도 이를 견제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정치 권력이 개입해 수사를 뭉개거나 지연시켜도 바로잡을 장치가 거의 없다. 나중에 공소청 검사가 기소를 한들, 수사 단계에서 이미 증거가 인멸됐다면 법정에서 유죄를 끌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때 가서 또 “경찰을 개혁하자”고 외칠 셈인가.
지금 추진되는 수사 기관 개편이 진정한 견제 장치의 보완인지, 아니면 말 잘 듣는 ‘제2의 수사 권력’ 구축인지 따져봐야 한다. 경찰의 민주당 공천 헌금 수사에서 위험한 미래의 예고편을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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