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16] 선을 넘는 일, 선을 긋는 일

류호정 목수, 前 국회의원 2026. 3. 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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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었다.

정치할 때 내가 자주 듣던 말이다. 정치인 평균에서 가장 멀었던 나는 뭘 해도 쉬이 화제가 됐다. 구설의 이유가 오해라 여겨 열심히 설명하기 바쁠 때도 있었다. 모든 게 지나가 차분해진 지금, 흑연심으로 진짜 선을 긋다 문득 생각이 닿았다. 내가 했던 정치도 어쩌면 선을 긋는 일이었겠구나.

목수와 국회의원, 일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선을 타려는 노력도 없는 직접적인 질문도 있다. “그래서 뭐가 더 낫냐?” 나는 뻔한 대답을 해왔다. “무엇이 더 나을 문제는 아니다. 모두 보람이 있는 일이다.” 이제 설명을 좀 더 보태 본다. 예전엔 사회에 선을 그었고, 지금은 목재에 선을 긋는다. 예전엔 합의를 다뤘고, 지금은 자재를 다룬다.

국회의원은 법과 제도를 만든다.

나는 주로 누가 보호받아야 하는지, 무엇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연대와 추모의 경계에, 범죄와 비범죄의 경계에 새로운 선을 그어 보였다. 선이란 결국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다. 미루어진 합의 때문에 흔들리는 선 위에서 사람들은 불안하다. 그래서 가로막히고 느려 터졌어도 계속해서 손을 보탰다. 죽음은 가해를 덮을 수 없게 됐고, 내 팔목의 문신은 불법이 아니게 됐다. 수많은 논의 끝에 새롭게 정해진 선은 쉽게 되돌려지지 않는다.

목수는 생활 환경을 만든다.

목재 위의 선을 따라 나무를 자르고 붙이면 가구가 된다. 흑연심으로 그린 선도 되돌리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목재에 선을 한 번 긋고 나면 톱이 지나갈 선, 드릴이 들어갈 점, 목재가 서로 맞닿을 면이 자연스레 정해진다. 선 하나가 공정을 끌고 가는 것이다. 틀리면 수습은 할 수 있어도, 이미 잘린 목재를 처음으로 되돌릴 수는 없으므로 늘 긴장한다. 문과 서랍을 만들어 붙일 때쯤에는, 그것들을 잡고 돌릴 누군가의 손길을 상상한다. ‘여기에 따뜻한 저녁이 오르고, 서로의 하루를 묻는 시간이 놓일 것이다. 저기에 그 집 고양이가 앉아 그 모든 걸 구경하게 될 것이다.’ 다시 자를 댄다. 가열차게 선을 긋는다.

더 나은 직업 같은 건 없다. 그려낸 선이 누군가의 일상이 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같은 일을 한다. 나의 노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늘 책임과 기대로 마음을 채우며 일한다는 것도 같다. 전체 국민의 복리 증진만큼이나 고객 여러분의 편의 향상도 상당한 기쁨이다. 그래서 다시 뻔히 대답하자면, “모두 보람이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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