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투자해도, 투자하지 않아도
2017년쯤의 일이다. 당시 20대 후반 나이였던 한 청년의 진로 고민을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지난 몇년 동안 힘든 일을 하며 악착같이 모은 끝에 꽤 큰돈을 마련한 상태였다. 이제부터 뭘 할지, 그 돈을 어떻게 가치 있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주위 선배들은 “비트코인을 사든지 서울 아파트에 갭투자를 하라”고 했단다. 지금 돌아보니 혜안이 담긴 조언이지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나라면 네 재능을 살리고 커리어를 만들어줄 ‘경험 자원’에 돈을 쓰겠다”고 했다.
이후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그날의 대화는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듬해 즈음부터 비트코인과 서울 아파트 가격 둘 다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당시 내 말이 그의 진로에 영향을 줬을지, 그때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든 건 아닌지 떠올리곤 했다.
얼마 전 <흑백요리사> 시리즈를 보면서도 이 대화를 떠올렸다. 이번에는 내가 한 말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셰프’라는 직함 앞에서 당당하고 여유로운 사람일수록 치열하게 보낸 청년 시절이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일 수십억원을 줄 테니 그 시간을 무위로 돌리자고 한다면 수락할 사람이 있을까? 요리 학교에 들어가는 대신, 박봉에 고된 일을 버텨내는 대신 그 비용과 시간을 투자에 쓰면 큰돈을 벌 수 있었다고 말해준다면 어떨까? 그 편이 나았겠다고 답할 사람이 있을까?
주가지수가 무섭게 오르는 요즘, 동참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인식도 사회 전반에서 함께 커지고 있다. 저평가되었던 한국 기업들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반길 일이다. 다양한 금융 상품이 개발되어왔고 대부분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는 만큼, 두려워만 할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투자를 시작해봄 직도 하다. 경제교육 차원에서 청년들 누구나 투자를 경험해보게 하자는 의견들도 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측면이 있다. 첫째, 청년들의 시간과 노력에는 기회비용이 있다. 어떤 일에 대해 꿈을 가지고, 몰입하고, 성장하는 경험은 이 시기가 지나면 하기 어렵다. 그 시간과 노력 중 어느 정도를 투자에 써야 할지 조절하지 못한다면 커리어의 첫 단추부터 잘못될 위험이 있다.
둘째, ‘나만 뒤처질 것 같아서’ 하는 투자는 대개 성과를 내기 어렵다. 불안은 시야를 좁게 만들고, 조급함은 합리적 판단을 방해한다. 부동산 시장이 지금과 같이 심각해진 것은 어느 시점 이후 이런 불안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가격을 더 높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당수는 ‘이대로 있다가는 영영 내집 마련을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 청년세대였다. 주식 투자에 있어서 이런 현상이 또 벌어져서는 안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투자하는 것도 좋지만, 투자하지 않아도 불안할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주가지수가 오른다고 해서 곧바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국민에게 좋은 투자처를 소개하는 것이 정부 역할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집도 의료비도 노후 대책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는,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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