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ETRI, ‘가마솥 안 개구리’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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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걱정 섞인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이런 성과를 발판삼아 ETRI는 '국가 AI 종합연구기관'으로 탈바꿈을 선언하며 AI 퍼스트 무버로 도약하기 위한 조직 개편과 R&D 혁신에도 발 빠르게 나섰다.
ETRI가 '가마솥 안 개구리' 신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다가오는 피지컬 AI 시대의 선도기관으로 거듭나 예전의 명성과 위상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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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걱정 섞인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ETRI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2022년 11월 말,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등장 이후 부쩍 짙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ETRI는 글로벌 ICT 연구를 선도하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 ICT업계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ETRI가 AI라는 거대한 글로벌 파도에 부딪혀 방향을 잃고 심하게 흔들리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사실 ETRI는 단순한 연구기관을 넘어 대한민국 ICT의 산실이자 ‘ICT 강국 코리아’를 견인해 온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1970년대 1가구 1전화 시대를 연 ‘전전자교환기’(TDX)부터 1980년대 반도체 신화 주역인 ‘D-램’, 1990년대 휴대전화 강국의 초석이 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2000년대 내 손안의 TV 시대를 실현한 ‘지상파 DMB’까지, 산업적 파급효과가 엄청난 혁신 성과들이 모두 ETRI에서 탄생했다. ETRI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ICT의 역사였던 셈이다.
이랬던 ETRI의 추락은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ETRI가 AI 대전환 시대를 맞아 이런 위기에 처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대략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먼저 기관 차원에서 AI 분야 연구에 역량을 모으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응한 면이 없지 않다. ETRI는 AI 열풍이 촉발되기 이전인 2010년대부터 AI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통해 주요국보다 앞서갔다. AI 기술 양대산맥인 자연어처리(언어지능)와 시각처리(시각지능)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원천기술 개발을 통해 자동 통·번역 플랫폼 ‘지니톡’을 시작으로 ‘엑소브레인’(한국형 AI), ‘딥뷰’(시각 지능) 등 독보적인 AI 모델 개발에 성공했다.
이런 성과를 발판삼아 ETRI는 ‘국가 AI 종합연구기관’으로 탈바꿈을 선언하며 AI 퍼스트 무버로 도약하기 위한 조직 개편과 R&D 혁신에도 발 빠르게 나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기관장이 바뀌고, 우수한 AI 연구자들이 대학, 기업 등으로 하나 둘씩 빠져 나가며 추동력을 잃었고, AI 경쟁력은 점점 약화돼 갔다. 심지어 AI 연구를 총괄할 보직자를 내부에서 찾지 못해 AI창의연구소장 자리가 3개월 넘게 공석일 정도로 인재 확보에 허덕이고 있다.
두 번째는 기관장의 AI 리더십 부재와 AI 방향성 실기(失期)를 꼽지 않을 수 없다. AI가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산업 생태계와 국가 기술 안보까지 바꿀 핵심 변수임을 간과하고, 기관 연구 역량을 AI에 결집시키지 못했다. 기관장이 AI에 대한 깊은 통찰과 미래 예측력을 바탕으로 민간이 하기 어려운 AI 핵심 원천기술과 AX 분야 연구에 인력과 자원을 제 때 투입하지 못해 ‘AI 골든타임’을 놓쳐 버린 것이다.
기관 운영 방향도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중심의 AI 패러다임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채 과거의 성공 방정식인 통신 인프라와 하드웨어에 안주해 온 비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세 번째는 정부의 경직된 R&D 지원 체계 역시 ETRI의 발목을 잡았다. 부처 간 칸막이식 예산과 단기 성과 위주의 소형 과제로는 ETRI가 국가대표급 AI 모델 개발에 집중하는 것을 가로막는 족쇄가 됐다.
ETRI는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다행히 조만간 새 기관장도 뽑고, 미래·도전적 연구를 위한 R&D 시스템도 마련될 예정이다. ETRI가 ‘가마솥 안 개구리’ 신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다가오는 피지컬 AI 시대의 선도기관으로 거듭나 예전의 명성과 위상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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