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역사문화공원 한국 근현대사를 품다] 2. 자네는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시인 김영랑에게 북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심장의 박동이었고 숨결을 맞추는 동행이며 삶과 예술을 하나로 묶는 울림이었다. 소리꾼과 고수가 서로의 기척을 읽으며 한 판을 완성하듯 그는 시와 북소리를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은 호흡과 관계의 진실을 노래했다.
1954년 망우리공원에 안장됐다가 1990년 용인으로 그리고 2024년 다시 망우리로 되돌아 온 김영랑의 시어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치지"를 2부 주제로삼았다. 회귀에 대한 감사의 답례다.
나라를 빼앗긴 들에 실의에 빠진 민초들에게 문학과 예술로 희망을 승화시켰다. 예술의 혼돈기와 해빙기를 거친 예술가를 비명록으로 만난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결이 포개진 공간이다. 이 곳은 생전에는 서로 다른 문학적 색채를 지녔던 4명의 소설가 최학송, 김말봉, 계용묵, 김이석이 나란히 잠들어 있다.

그의 소설은 관념이 아니라 체험에서 길어 올린 기록이다. 소설 60여 편을 남기고 서른한 살에 요절했다. 무덤 앞의 비석에는 "그믐달, 탈출기 등 명작을 남기고 간 유족이 행방도 모르고 미아리 공동묘지에 누웠다가 여기로 왔다"라고 적었다. 그는 소설이나 삶이나 결국 험난한 가시덩굴을 헤쳐나간 언어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의 '순수 귀신을 버려라'는 외침처럼 그는 삶의 욕망과 갈등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3번의 혼인 11명의 자녀 등 파란만장한 가족사와 사회운동, 여성 장로 행보까지 그의 삶 또한 한 편의 소설이었다.
구리시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무덤 앞에는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푸른 날개에서'라는 짤막한 문구가 있다. 오른쪽의 무덤은 세 번째 남편 이종하이다.
계용묵은 정치와 이념을 경계하며 인간 내면을 응시한 순수문학가 였다. 제주에서 피란살이를 하며 가난과 고독한 삶속에도 문학적 절제를 잃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한 문장, 일상의 균열을 파고드는 시선은 망우리의 적막과 닮아 있다.
1주기에 세운 묘비의 뒷면에는 백치 아다다, 병풍에 그린 닭이 등 6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는 기록만을 담았다. 이는 소란한 시대 속에서 문학의 자리를 지키려 했던 한 작가의 고집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난세를 기록하되 과장하지 않았고 상처를 드러내되 절망에 머물지 않았다. 마흔아홉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문장은 시대의 체온을 품은 채 망우리 언덕에 남아 있다.
언덕의 묘비 앞면에는 작가의 이름과 생몰 연도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해방의 기쁨을 형상화한 <실비명> 한 구절이 배길기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이 4인의 작가 마지막 주소지이자 체험의 문학, 대중적 서사, 순수의 미학, 정한의 기록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는 또 하나의 문학 지도다.
# 4인의 시인...저항과 희망을 노래 하다
만해 한용운은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이다. 1918년 불교 잡지 「유심」을 창간하며 계몽적 글을 발표했고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은 일제강점기 저항문학의 상징이 됐다. 1933년 성북동에 심우장을 짓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며 장편소설 「흑풍」을 통해 일제의 억압과 여성해방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1944년 입적 후 망우리공원에 안장됐다.

모더니즘과 허무의 청춘의 박인환은 해방 후 종로에서 '마리서사'를 운영했고 문학 청년들과 교류하며 후기 모더니즘 시 운동의 중심에 섰다. 1955년 시집 박인환 선시집을 간행하며 「목마와 숙녀」를 발표, 도시적 감수성과 허무, 전후 세대의 상실감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자유문학상 후보에서 탈락 후 깊은 실의에 빠졌고 1956년 31세로 요절했다. 조니 워커와 카멜 담배가 함께 묻혔다는 일화는 그의 낭만적 이미지를 상징이다.

1989년 아내 안귀련이 타계하자 이듬해 3월 아내 곁인 천주교 추모공원으로 옮겨졌다 2024년 다시 망우리로 돌아온 것이다. 햇수로 34년 만의 귀향이다.
묘역에는 '북', '독을 차고', '모란이 피기 까지는'의 마지막 구절이 새겨졌고 '천지인 삼재'의 상징 구조로 조성돼 있다.
이들 4인의 시인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대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항과 상실, 그리고 희망을 노래했다. 망우리공원은 한국 현대문학의 숨결이 살아 있는 성좌이다.
# 1936년 데뷔, 두 연극인의 엇갈린 운명
1936년 같은 해 등단한 서로 다른 길을 걸은 두 연극인이 잠들어 있다. 이광래는 1936년 '촌선생'으로 데뷔, 극단 중앙무대를 창설하며 중간극 실험과 민족극 기반을 다졌다.


이 둘은 같은 해에 무대에 섰지만 정치적 선택과 시대적 격랑이 연극 인생을 갈라 놓았다. 망우리공원은 그들의 예술과 운명이 교차한 한국 근현대 연극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 미술계 3명의 거장 잠들다
한국 근현대 예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인성과 이중섭, 조각가 권진규가 같은 공간에 묻혀 있어 눈길을 끈다.

이인성이 밝고 투명한 색채로 향토적 서정을 그려냈다면 이중섭은 거친 선과 강렬한 형상으로 시대의 고통을 화폭에 새겼다.
여기에 권진규는 또 다른 차원의 조형 언어를 더한다. 그는 테라코타와 건칠 기법을 통해 인간의 얼굴과 형상을 깊이 있게 빚어냈다. 그의 대표작 '자소상'과 인물 흉상은 과장되지 않은 묵직한 절제미를 드러낸다. 자소상 중 하나는 망우리공원 입구에서 만난다.
이들 3명의 거장은 모두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이인성은 요절했고, 이중섭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권진규 또한 고독과 예술적 고뇌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하게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 근대 아동문학을 이끈 빛과 그림자
이곳에는 한국 아동문학사의 상징적 두 인물, 방정환과 최신복도 함께 묻혀 있다. 한 사람은 '어린이'라는 이름을 우리 사회에 심어준 빛의 상징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를 쫓는 그림자이다.

방정환의 돌무덤은 동지였던 최신복이 주도해 조성했다. 비문에 새겨진 "동심여선(童心如仙), 어린이의 동무"라는 문장은 어린이를 위해 살다 간 방정환의 생애를 대변한다.
최신복은 스승이자 동지 방정환 곁으로 가족과 함께 이곳에 자리했다. 그의 비석에는 대표 동요 '호드기'가 새겨져 있다. 잡지 「어린이」를 만들며 동심의 세계를 열던 두 사람, 망우리 하늘 아래에서 나란히 한국 아동문학의 한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 어린이와 어른을 위해 부른 노래
강소천은 해방 이후 한국 아동문학의 재건과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 동화와 소년소설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 도덕적 가치를 전했다.

묘비에는 대표작 동요 '닭'을 새겼다. 강소천은 평생 동요와 동시를 300편, 동화와 소설을 2천여 편 남긴 아동문학의 거장이다.

어린이의 순수성을 노래한 강소천과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어른의 노래로 시대를 울린 차중락은 서로 다른 장르와 세대를 대표하지만 모두 한국 근현대 문화의 한 장면을 증언한다.
구리=윤덕신 기자 dsyun@kihoilbo.co.kr
이 기사는 「망우리 비명록」 공동저자인 한철수 향토사학자의 도움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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