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위기 시대, 한겨레의 선택과 집중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기자 2026. 3. 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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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후원회원 제도인 ‘서포터스 벗’ 누리집 갈무리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한겨레는 뉴스룸국(옛 편집국) 국장을 기자들의 임명동의 투표를 거쳐 선임합니다. 사장이 지명한 국장 후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뉴스룸국 소속 기자들에게 묻는 제도입니다. 임명동의 투표에서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국장이 될 수 있습니다. 뉴스룸국장 선임에 기자들의 의사를 반영해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려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황준범 논설위원이 임명동의 투표를 통과해 한겨레 신임 뉴스룸국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비록 직선은 아니지만 임명동의 투표도 구성원들의 찬반 의사를 묻는 절차인 만큼, 국장 후보는 투표에 앞서 자신의 ‘정견’을 담은 홍보물을 배포합니다. 임기 동안 뉴스룸국을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콘텐츠를 만들지 구상을 밝힌 일종의 공약집입니다.

그동안 십수차례 임명동의 투표가 있었지만, 국장의 ‘공약’을 지면을 통해 독자들께 알린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뉴스룸국장은 한겨레 콘텐츠 생산을 책임지는 ‘야전사령관’입니다. 신임 뉴스룸국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할 분들도 있을 듯하여 짧게 소개합니다.

황 국장은 홍보물에서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습니다. 기자들이 고품질 기사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힘을 줘야 할 곳에 힘을 집중해, 독자들이 한겨레의 존재 이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한겨레 내부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꽤 된 것 같습니다. ‘혁신’이나 ‘전략’이라는 이름을 단 각종 보고서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 말이 선택과 집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선택과 집중입니다.

선택은 포기와 동전의 양면을 이룹니다. 뭔가를 선택하려면 다른 걸 포기해야 합니다. 선택이 그래서 어렵습니다. 포기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선택을 못 하면 당연히 집중도 어려워집니다.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어디에서 힘을 빼서 어디에 힘을 쏟을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리더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황 국장은 단순 속보 등 꼭 필요하지 않은 디지털 기사를 쓰느라 기자들이 에너지를 쏟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당분간 페이지뷰(조회수) 강박은 조금 내려놓고 우리의 주전장(주된 싸움터)에서 질 높은 기사로 승부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전장’은 한겨레가 관심 가져야 할 주요 사안을 뜻합니다. 이런 사안이 발생하면 거기에 인력을 집중 투입해 순발력 있게 심층 보도를 해나가자고 황 국장은 제안했습니다. 그러려면 누구나 다 쓰는 루틴한 기사는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황 국장의 생각에 적극 공감하는 편입니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속보와 가십성 기사 위주의 디지털 환경을 한국 언론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으로 꼽아왔습니다. 올드미디어, 뉴미디어 할 것 없이 트래픽을 얻기 위해 ‘빨리, 많이’를 핵심 디지털 전략으로 삼아온 결과 기사의 질은 추락을 거듭했고, 언론에 대한 신뢰도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디지털 대응도 잘하고 기획도 순발력 있게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좋은 기사를 쓰려면 취재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유통기한이 30분이 채 안 되는 디지털 속보를 위해 기자들의 손발이 묶이는 것이 바람직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속보 위주의 디지털 전략에 따른 기자들의 소진 문제도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5 한국의 언론인’ 조사를 보면, 조사에 응한 언론인 가운데 45.5%가 디지털 대응 및 혁신에 대해 피로감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직전 조사(2023년)와 견줘 7.2%포인트 증가한 수치입니다.

더욱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은 대중의 뉴스 소비 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꿀 공산이 큽니다. 미디어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제로 클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포털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포털에 기대어 트래픽과 수익을 올리는 전략이 한계에 봉착할 날도 머지않은 듯합니다.

인공지능이 이용자의 질문 의도를 파악해 뭐든지 척척 대답해주는 시대, 언론이 살 길은 고품질 콘텐츠일 수밖에 없습니다.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맥락을 보여주고 사안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기사, 사람과 현장이 스며들어 있는 기사가 그 예일 것입니다.

속보로 ‘뜨내기 독자’를 불러올 수는 있겠지만, 한겨레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이들을 붙잡아두기는 어렵습니다. 황 국장의 ‘선택과 집중’이 향하는 곳도 한겨레의 가치에 동의하는 ‘의도 있는 독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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