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컵 정책 혼선…‘순환경제 철학’ 부재가 낳은 참사

현재 한국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년 7%씩 늘지만 재활용되는 건 9%뿐이다.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 제품은 잠깐밖에 쓰지 않는 포장·용기가 절반(47%)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를 2030년까지 전망치 대비 30% 줄이는 내용의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안)’을 발표했지만, 일회용 컵과 택배 포장 규제 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진다. 플라스틱 문제에 집중해온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전문위원이 5차례에 걸쳐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자원순환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감량과 재사용이다. 보증금을 돌려받는 시민 행동과 회수 물류망은 향후 다회용 컵 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핵심 인프라다. 동시에 단일 재질 컵을 회수해 식품용 재생원료로 활용하는 고품질 재활용의 기반이기도 하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를 내세운 정부가 가장 확실한 고품질 재생원료 공급망을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보증금제 시범사업을 시행한 제주와 세종에서 2023년 말 기준 반납률은 각각 78.4%, 41.9%로, 지자체의 행정 의지에 따라 극명히 갈렸다. 상식대로라면 성공 모델을 바탕으로 제도를 다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종합적인 평가를 제시하는 대신 지역 간 편차를 평균 수치로 뭉뚱그리며 사업을 ‘실패’로 규정하고 지자체에 공을 넘겼다. 이후 과정은 더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는 폐지를 기정사실로 하듯 ‘가격 내재화’ 전제의 ‘답정너’식 연구용역을 발주해 놓고,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컵 따로 가격제’를 제시해 현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중앙정부가 책임을 내려놓은 사이 제주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사태의 기저에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자원순환' 의제가 차지하는 낮은 위상이 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에서 폐기물 비중은 2% 남짓으로, 산업공정(41%)과 에너지(32%)에 비해 작아 보인다. 문제는 이 통계가 ‘버려진 이후’만을 포함하고, 원료 채굴, 가공, 운송, 사용 등 전 과정의 배출은 에너지·산업 항목으로 흩어져 숨어있다는 것이다.
엘렌 맥아더 재단에 따르면 에너지 전환으로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는 55%에 그친다. 나머지 45%는 플라스틱, 철강, 시멘트 등 주요 소재와 식량의 생산·소비·폐기 전 과정에서 발생한다. 자동차 강판을 만들기 위한 제철과 건물에 쓰이는 시멘트 생산,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제조와 소각 등 전 과정을 아우른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얼마나 쓰며 어떻게 순환시키는가가 기후 문제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 45%는 단순한 폐기물 관리를 넘어 산업 구조와 소비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줄일 수 없는 영역이다.
세계는 이미 구조적 전환에 착수했다. 일본은 2030년까지 순환경제 시장을 80조엔 규모로 키우려 하고, 유럽연합은 순환경제를 ‘유럽 그린딜’의 핵심축으로 세웠다. 우리 정부도 2024년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으로 전환을 선언했지만, 실제 행정과의 간극은 아득하다.
결국 이번 사태는 순환경제에 대한 이해와 철학의 부족에서 비롯됐다. 이제는 망가진 정책 하나를 땜질하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순환경제를 에너지·산업 정책 수준의 핵심 기후 의제로 재정렬해야 한다.
그리고 컵 정책이 그 시험대다. 감량과 재사용, 고품질 재활용이라는 순환경제의 세 요소를 단일 품목 안에서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현시점에서 거의 유일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주의 고군분투를 방관하지 말고 투명한 공론화를 통해 정책을 원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쓰레기 대책’이 아니라 감량과 재사용을 중심축으로 사회의 구조를 전환하는 설계도여야 한다. 시민의 반납 행동과 회수 인프라가 향후 다회용기 체제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확장될 지까지를 담은 청사진이 필요하다. 이 단단한 밑그림 위에서 기본 규칙을 다시 세우는 것, 순환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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