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당내 경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쓴맛’ 봤던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2026. 3. 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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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는 이번 6월 지방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불립니다. 현역 오세훈 시장과 더불어민주당 후보군과의 대결구도 향방은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요.

각종 여론조사는 오 시장과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양자구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각 당의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결선에 누가 이름을 올릴지도 관심가는 부분입니다. 오 시장도 지난 2021년 보궐선거 당시에는 당의 ‘대세’ 후보라 부르기 어려웠지만 최종 당선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 연재는 지방선거에 관련된 역대 대통령들의 기록을 되짚어보고 있는데요. 이번 회차에서는 서울시장을 거쳐 대권으로 직행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방선거 사연 중 하나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경선 공정할 리 없었다”
MB의 처음이자 마지막 敗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개인의 험난한 일생과 별개로 정치이력은 화려한 꽃길만 걸은 것으로 알기 쉽습니다.

현대그룹에서의 성공신화와 이를 다룬 드라마, 자서전의 폭발적 인기를 바탕으로 정계진출 초반부터 거물급으로 인식된 영향이 큽니다.

실제 정치여정을 뜯어봐도 비례대표로 시작해 10여년만에 ‘정치1번지’ 종로구 국회의원, 서울특별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오르는 이상적 경로를 보여줬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거 상대로 만나 꺾은 정치인들의 면면도 엄청나죠. 노무현 전 대통령(종로구 국회의원 선거), 박근혜 전 대통령(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당내 경선)이 대표적입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2(2008)
이처럼 정계진출 후에는 아픔이 없을 것 같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지만 중요한 시점에 1패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요.

바로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의 서울시장후보 당내경선입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이 전 대통령은 경선에서 37.4%를 득표해 정원식 전 국무총리(61.0%)에게 큰 격차로 패배했습니다. 오늘날 독자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납득하기 쉽지 않은 결과고,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이 전 대통령이 패배원인으로 꼽는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은 소속 의원들과의 비공식 만찬 자리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취소하고 정원식 전 총리를 추대하겠다는 것이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정치환경에서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은 곧 당심이었죠. 이후 당 대표가 나서 이 전 대통령에게 사퇴를 종용했지만 거부하자, 결국 김 전 대통령과의 조찬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도 이 전 대통령은 “이제 대통령님 임기 중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며 끝내 경선에 나섰지만,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정주영 비판할 수 없었다
이후로 나를 곱게 안보더라“
민주자유당 후보로 나선 정원식 전 총리는 민주당의 조순 후보에게 큰 격차로 패배하고 맙니다. 이런 결과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한데요.

이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통해 표면적인 이유와 숨겨진 이유 하나씩을 서술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조찬 자리에서 말한 표면적인 이유는 “(1992년) 대선 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준 정원식 전 총리에게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서 “이 의원은 앞으로 다른 일을 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까?”라 덧붙였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은 자서전의 다른 대목에서 숨겨진 이유도 짚어내는데요. 3년 전인 1992년 대선에서 고 정주영 회장을 비판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던 일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바로 1년 전까지 정주영 후보와 함께 기업활동을 했던 나로서는 그 같은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단순한 의리 때문이 아니었다”며 “내가 네거티브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어서 “이 사건 이후 여당 측 인사들은 나를 곱게 보지 않았다. 이 일은 3년 후까지 내게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은?’,‘이명박 대통령이 기억하는 현대건설은?’…<대통령의 연설>은 연설문을 통해 역대 대통령의 머릿속을 엿보는 연재기획입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남아있는 약 7600개 연설문을 분석합니다. 지금 문재용 기자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발빠른 정치뉴스와 깊이있는 연재기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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