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김앤장’ 꺾은 소상공인…“내돈내산 명품 리폼은 합법”

배지현 2026. 3. 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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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산 '내돈내산' 명품 가방을 '리폼 수선'하면 브랜드 상표권 침해일까요?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전세계 명품업계 1위이자, 프랑스 시가총액 1위 기업 '루이비통'과 강남의 한 수선업체 사장이 4년 간의 법정 다툼을 벌였습니다. (루이비통이 선임한 로펌은 국내 1위 '김앤장'이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였던 이 재판,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다윗' 이경한 사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1심과 2심의 결과를 뒤집은 '역전 한판승' 이었습니다.

상고심 선고 직전까지만 해도 '자포자기'에 가까웠던 이 씨, 선고가 끝난 뒤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는 그 감정을 '홀가분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갑자기 날아든 루이비통 측 '내용증명'…4년간 이어진 소송전

지난 2022년, 이 씨는 루이비통이 선임한 대형 로펌 김앤장 측으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았습니다. 루이비통 제품을 리폼하는 행위가 상표권을 침해하니, 향후 리폼을 하면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씨가 확인해 보니 다른 수선업체들도 같은 내용증명을 받았고, 그 업체들은 루이비통 제품을 리폼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썼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차마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경한 / 수선업체 사장]
"우리가 하는 일이 불법이 아니라고 저는 확신을 하고 있었고. '아니 그러면 부모님 옷 리폼해서 아이들한테 입히면 안 되는 거야? 그게 왜 꼭 루이비통은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옷 수선, 시계 수선, 자동차 튜닝하면 안 되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못 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반발을 한 거고, 그래서 4년 동안 소송을 하게 된 거죠."

그러자 루이비통 측은 이 씨에게 손해배상금 3000만 원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 씨의 수선업체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루이비통 가방을 리폼해 상표권이 침해됐단 겁니다. 루이비통 측은 고유의 로고가 박혀있는 가방을 리폼하면 그 자체로 루이비통 상표를 단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셈이고, 이를 의뢰인에게 다시 넘겨주는 행위까지 모두 상표권 침해이므로 불법이라 주장했습니다.

반면 이 씨 측은 ▲루이비통의 상표권은 처음 소비자들에게 가방을 팔 때 이미 소진됐고 ▲소비자들은 소유권을 사용해 리폼할 자유가 있으며 ▲리폼 제품을 대규모 생산해 유통하지 않고 의뢰인의 주문에 맞게 수선한 뒤 돌려줄 뿐이라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습니다.

2023년 10월,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루이비통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리폼 제품 그 자체가 교환가치를 갖고 독립된 상거래 목적물이 되는,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이 씨가 리폼 행위로 루이비통의 상표권을 침해했으니, 15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루이비통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특허법원 2심도 루이비통의 승리였습니다. 이 씨의 항소가 기각된 겁니다. 이 씨 측은 '소비자는 리폼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 씨가 '가공업자라는 신분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의 고유 업무와 관련해 리폼 제품의 외부 원단에 상표가 표시되도록 했다'면서, 리폼 제품을 의뢰인에게 인도하는 행위까지 모두 불법행위로 규정했습니다.

이렇게 판결이 확정되면, 이 씨뿐 아니라 수선업에 종사하는 많은 소상공인의 리폼 행위가 모두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당시 심경을 이 씨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경한 / 수선업체 사장]
"상식이 통하지 않는구나. 그런 심정이었고 참담했죠. 루이비통의 경우에는 원단에 벽지처럼 로고가 전체에 박혀있어요. 그걸 조금 잘라서 수선을 하든, 크게 잘라서 리폼을 하든, 그 로고는 무조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건데. (당시 재판부는) 리폼을 하면 그 상표를 수선업체가 쓴다는 거예요. 1심과 2심에서는 소비자의 개인적인 소유권 행사 인정을 안 해줬던 거죠."

■'리폼 행위의 상표권 침해' 첫 판단…대법원 이례적 공개변론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리폼 행위의 상표권 침해' 문제를 법원에서 다룬 적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판례도 없었습니다.

루이비통과 이 씨의 소송 결과가 한국 법원의 첫 판단이자 관련업계의 운명을 가를 선례로 남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법원도 이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말 대법관 4명의 소재판부로는 이례적으로 공개 변론을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루이비통과 이 씨 측의 주장을 각각 뒷받침하는 전문가들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견을 전했습니다.

[루이비통 측 공개변론 요지]
-제3자인 수선업자를 통해서 하는 리폼은 '상표적 사용'에 해당
-리폼 제품이 장래에 중고시장 등에 유통될 가능성이 충분함
-리폼 제품을 위조품으로 보고 리폼 업자들에게 징역형 내린 중국 판례 제시

[이경한 씨 측 공개변론 요지]
-소유자 개인 사용 목적으로 수선업자가 하는 리폼은 상표권 침해가 아님
-자체 수선 어려운 물건을 전문가를 통해 수선하지 못하게 하는 건 소비자의 소유권 침해
-'소유자 개인 사용 목적 리폼'은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고 본 독일, 스위스, 스웨덴 법원 판례 제시

그리고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앞선 1, 2심 판결을 뒤집고 이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수선업자가 가방 소유자로부터 개인 사용 목적의 리폼 요청을 받아 리폼한 뒤, 소유자에게 반환한 경우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리폼업자가 리폼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등 자신의 제품으로 거래 시장에서 유통시킬 경우엔 상표권 침해가 성립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봤을 때 이 씨의 리폼 행위는 상표권 침해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원심의 판결을 파기해 하급 법원인 특허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두고 "리폼업자의 리폼 행위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선언한 사건으로 그 의의가 상당히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사건으로 사회적 파급효과도 상당하다"면서 "공개변론을 열어 소송관계인과 참고인 의견을 두루 듣고 공정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절차적으로 만전을 기했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서 '역전승'…강남 수선집 사장이 루이비통 꺾었다


대법원 선고 날 오전 9시 반쯤, KBS 취재진은 홀로 선고 결과를 들으러 온 이 씨를 만났습니다. 법정에 들어서기 전, 긴장해 굳은 표정이던 이 씨는 "1심과 2심처럼 패소하더라도 대법원이 무엇이 불법인지 구체적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법정에 들어선 이 씨는 방청석 앞쪽 자리에 앉아 붉은색 수첩을 펼치고 볼펜을 꺼내든 채 선고를 기다렸습니다. 4명의 대법관이 앉을 재판부 자리를 한참 응시하다, 작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재판부가 입정했고, 이 씨 사건에 대한 주문을 읽었습니다.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에 대한 주위적 청구 패소와 예비적 청구 패소를 파기하고 이 사건을 특허법원에 환송한다"

이 씨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정면을 응시하다, 수첩에 '파기 환송이면 이긴 거 맞죠?'하고 적어 필담으로 취재진에게 물어왔습니다. 취재진이 필담으로 '그렇다'고 답해주자, 이 씨는 '오!'하고 나지막하게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이내 법정을 나와 변호사와 통화까지 마친 이 씨는 '축하드린다'는 취재진의 말에 울컥 눈물을 보였습니다.

글로벌 브랜드와 대형 로펌을 상대로 4년간 지난한 법정 싸움을 이어온 이 씨. 본인이 믿는 '상식'을 지키려 끝까지 싸웠고, 대법원에서 결국 승소하며 몸소 새로운 판례를 만들었습니다. 승소 직후 취재진에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경한 / 수선업체 사장]
"살아가면서 이거 하나 남겼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뿌듯합니다. 살면서 이런 감정을 앞으로 몇 번이나 느낄까요? 1심과 2심에서 다 졌고, 가망 없다고 하는 전문가들도 많았는데. 소비자들의 권리와 기본적인 상식이 통한 판결이 내려져 너무 기쁩니다. 큰 홀가분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요."

이 씨는 "우리 같은 수선업자들이 특정 유명 브랜드 간섭 없이 우리의 기술과 수선업을 계속할 수 있고, 소비자분들도 리폼 수선을 맡기실 때 불법인지 고민하지 않고 자유롭게 맡길 수 있게 된 점에 대해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 씨는 이날 선고를 듣고 다시 수선업체로 돌아가 평소처럼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오랜 단골부터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까지, 승소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 '이제 불법일까 봐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취재진에게 웃어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경한 / 수선업체 사장]
"특별한 계획은 없고요. 저도 내년이면 60살이고, 여기 같이 계신 수선 업자분들도 나이가 저보다도 높으신 분들이라 망치 들 힘이 있을 때까지 여기서 일하는 게, 그게 꿈이에요. 다른 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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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현 기자 (veter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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