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김앤장’ 꺾은 소상공인…“내돈내산 명품 리폼은 합법”
내가 직접 산 '내돈내산' 명품 가방을 '리폼 수선'하면 브랜드 상표권 침해일까요?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전세계 명품업계 1위이자, 프랑스 시가총액 1위 기업 '루이비통'과 강남의 한 수선업체 사장이 4년 간의 법정 다툼을 벌였습니다. (루이비통이 선임한 로펌은 국내 1위 '김앤장'이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였던 이 재판,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다윗' 이경한 사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1심과 2심의 결과를 뒤집은 '역전 한판승' 이었습니다.
상고심 선고 직전까지만 해도 '자포자기'에 가까웠던 이 씨, 선고가 끝난 뒤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는 그 감정을 '홀가분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갑자기 날아든 루이비통 측 '내용증명'…4년간 이어진 소송전
지난 2022년, 이 씨는 루이비통이 선임한 대형 로펌 김앤장 측으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았습니다. 루이비통 제품을 리폼하는 행위가 상표권을 침해하니, 향후 리폼을 하면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씨가 확인해 보니 다른 수선업체들도 같은 내용증명을 받았고, 그 업체들은 루이비통 제품을 리폼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썼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차마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경한 / 수선업체 사장]
"우리가 하는 일이 불법이 아니라고 저는 확신을 하고 있었고. '아니 그러면 부모님 옷 리폼해서 아이들한테 입히면 안 되는 거야? 그게 왜 꼭 루이비통은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옷 수선, 시계 수선, 자동차 튜닝하면 안 되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못 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반발을 한 거고, 그래서 4년 동안 소송을 하게 된 거죠."
그러자 루이비통 측은 이 씨에게 손해배상금 3000만 원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 씨의 수선업체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루이비통 가방을 리폼해 상표권이 침해됐단 겁니다. 루이비통 측은 고유의 로고가 박혀있는 가방을 리폼하면 그 자체로 루이비통 상표를 단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셈이고, 이를 의뢰인에게 다시 넘겨주는 행위까지 모두 상표권 침해이므로 불법이라 주장했습니다.
반면 이 씨 측은 ▲루이비통의 상표권은 처음 소비자들에게 가방을 팔 때 이미 소진됐고 ▲소비자들은 소유권을 사용해 리폼할 자유가 있으며 ▲리폼 제품을 대규모 생산해 유통하지 않고 의뢰인의 주문에 맞게 수선한 뒤 돌려줄 뿐이라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습니다.
2023년 10월,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루이비통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리폼 제품 그 자체가 교환가치를 갖고 독립된 상거래 목적물이 되는,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이 씨가 리폼 행위로 루이비통의 상표권을 침해했으니, 15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루이비통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특허법원 2심도 루이비통의 승리였습니다. 이 씨의 항소가 기각된 겁니다. 이 씨 측은 '소비자는 리폼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 씨가 '가공업자라는 신분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의 고유 업무와 관련해 리폼 제품의 외부 원단에 상표가 표시되도록 했다'면서, 리폼 제품을 의뢰인에게 인도하는 행위까지 모두 불법행위로 규정했습니다.
이렇게 판결이 확정되면, 이 씨뿐 아니라 수선업에 종사하는 많은 소상공인의 리폼 행위가 모두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당시 심경을 이 씨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경한 / 수선업체 사장]
"상식이 통하지 않는구나. 그런 심정이었고 참담했죠. 루이비통의 경우에는 원단에 벽지처럼 로고가 전체에 박혀있어요. 그걸 조금 잘라서 수선을 하든, 크게 잘라서 리폼을 하든, 그 로고는 무조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건데. (당시 재판부는) 리폼을 하면 그 상표를 수선업체가 쓴다는 거예요. 1심과 2심에서는 소비자의 개인적인 소유권 행사 인정을 안 해줬던 거죠."
■'리폼 행위의 상표권 침해' 첫 판단…대법원 이례적 공개변론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리폼 행위의 상표권 침해' 문제를 법원에서 다룬 적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판례도 없었습니다.
루이비통과 이 씨의 소송 결과가 한국 법원의 첫 판단이자 관련업계의 운명을 가를 선례로 남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법원도 이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말 대법관 4명의 소재판부로는 이례적으로 공개 변론을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루이비통과 이 씨 측의 주장을 각각 뒷받침하는 전문가들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견을 전했습니다.
[루이비통 측 공개변론 요지]
-제3자인 수선업자를 통해서 하는 리폼은 '상표적 사용'에 해당
-리폼 제품이 장래에 중고시장 등에 유통될 가능성이 충분함
-리폼 제품을 위조품으로 보고 리폼 업자들에게 징역형 내린 중국 판례 제시
[이경한 씨 측 공개변론 요지]
-소유자 개인 사용 목적으로 수선업자가 하는 리폼은 상표권 침해가 아님
-자체 수선 어려운 물건을 전문가를 통해 수선하지 못하게 하는 건 소비자의 소유권 침해
-'소유자 개인 사용 목적 리폼'은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고 본 독일, 스위스, 스웨덴 법원 판례 제시
그리고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앞선 1, 2심 판결을 뒤집고 이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수선업자가 가방 소유자로부터 개인 사용 목적의 리폼 요청을 받아 리폼한 뒤, 소유자에게 반환한 경우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리폼업자가 리폼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등 자신의 제품으로 거래 시장에서 유통시킬 경우엔 상표권 침해가 성립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봤을 때 이 씨의 리폼 행위는 상표권 침해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원심의 판결을 파기해 하급 법원인 특허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두고 "리폼업자의 리폼 행위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선언한 사건으로 그 의의가 상당히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사건으로 사회적 파급효과도 상당하다"면서 "공개변론을 열어 소송관계인과 참고인 의견을 두루 듣고 공정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절차적으로 만전을 기했다"고 밝혔습니다.
■ 대법원서 '역전승'…강남 수선집 사장이 루이비통 꺾었다

대법원 선고 날 오전 9시 반쯤, KBS 취재진은 홀로 선고 결과를 들으러 온 이 씨를 만났습니다. 법정에 들어서기 전, 긴장해 굳은 표정이던 이 씨는 "1심과 2심처럼 패소하더라도 대법원이 무엇이 불법인지 구체적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법정에 들어선 이 씨는 방청석 앞쪽 자리에 앉아 붉은색 수첩을 펼치고 볼펜을 꺼내든 채 선고를 기다렸습니다. 4명의 대법관이 앉을 재판부 자리를 한참 응시하다, 작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재판부가 입정했고, 이 씨 사건에 대한 주문을 읽었습니다.
"주문. 원심판결 중 피고에 대한 주위적 청구 패소와 예비적 청구 패소를 파기하고 이 사건을 특허법원에 환송한다"
이 씨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정면을 응시하다, 수첩에 '파기 환송이면 이긴 거 맞죠?'하고 적어 필담으로 취재진에게 물어왔습니다. 취재진이 필담으로 '그렇다'고 답해주자, 이 씨는 '오!'하고 나지막하게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이내 법정을 나와 변호사와 통화까지 마친 이 씨는 '축하드린다'는 취재진의 말에 울컥 눈물을 보였습니다.
글로벌 브랜드와 대형 로펌을 상대로 4년간 지난한 법정 싸움을 이어온 이 씨. 본인이 믿는 '상식'을 지키려 끝까지 싸웠고, 대법원에서 결국 승소하며 몸소 새로운 판례를 만들었습니다. 승소 직후 취재진에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경한 / 수선업체 사장]
"살아가면서 이거 하나 남겼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뿌듯합니다. 살면서 이런 감정을 앞으로 몇 번이나 느낄까요? 1심과 2심에서 다 졌고, 가망 없다고 하는 전문가들도 많았는데. 소비자들의 권리와 기본적인 상식이 통한 판결이 내려져 너무 기쁩니다. 큰 홀가분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요."
이 씨는 "우리 같은 수선업자들이 특정 유명 브랜드 간섭 없이 우리의 기술과 수선업을 계속할 수 있고, 소비자분들도 리폼 수선을 맡기실 때 불법인지 고민하지 않고 자유롭게 맡길 수 있게 된 점에 대해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 씨는 이날 선고를 듣고 다시 수선업체로 돌아가 평소처럼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오랜 단골부터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까지, 승소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 '이제 불법일까 봐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취재진에게 웃어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경한 / 수선업체 사장]
"특별한 계획은 없고요. 저도 내년이면 60살이고, 여기 같이 계신 수선 업자분들도 나이가 저보다도 높으신 분들이라 망치 들 힘이 있을 때까지 여기서 일하는 게, 그게 꿈이에요. 다른 거 없습니다."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배지현 기자 (veteran@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트럼프 “이란 지휘부 대거 제거…새 지도부와 대화할 것”
- “유가 100달러 전망까지”…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 흔들까? [잇슈 머니]
- 이란, 호르무즈 해협서 민간 선박 공격…국제유가 수직 상승 우려
- 전남광주통합법 국회 통과…‘대구경북’ 처리 무산에 여야 ‘서로 탓’
- “돈 있는 어르신은 좀”…지하철 무임·기초연금 기준 바뀔까? [잇슈 머니]
- 남극 빙하 934m 뚫었더니…얼음 아래 ‘물고기 떼’ 가득 [취재후]
- 5백만 원어치 태극기…“익명 지켜달라”
- 함부로 접근했다 덥석…철창 밖 소녀 낚아챈 동물원 사자 [잇슈 SNS]
- [잇슈 머니] “운동하면 최대 5만 원”…튼튼머니, 병원·약국 결제도 가능
- ‘투잡’은 기본…‘고물가시대’ 청년 생존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