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만들어낸 거짓말 아래서부터 밀려온 진실, 312일간 윤석열 재판 기록

2024년 12월3일 밤, 윤석열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현직 대통령 중 최초로 내란 수사를 받고, 내란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11개월 동안 44차례 공판이 열렸고, 증인 61명이 출석했다. 2월19일 오후 4시2분, 윤석열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석열 내란우두머리 재판에서 나온 주요 쟁점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①국회의원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방해하려고 했나? ②중앙선관위 서버를 탈취하려고 했나? ③이재명·우원식·한동훈 등 주요 인사를 체포하려고 했나? ④계엄 해제를 지연하려고 했나? ⑤장기 집권을 목적으로 사전에 계엄을 모의하고 실행했나?
피고인 윤석열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책임을 아래로 떠넘겼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민간인),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 일부 계엄 수뇌부도 윤석열의 거짓말에 동조했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한 다수 부하들의 증언과 통화 기록, 당시 남은 문건은 전혀 다른 사실을 드러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아래서부터 진실이 밀려 올라왔다. 그렇게 내란우두머리의 거짓말은 힘없이 무너졌다.
〈시사IN〉은 재판이 시작된 2025년 4월14일부터 무기징역이 선고된 2026년 2월19일까지 312일 동안 법정을 기록했다. 법정에서 나온 윤석열의 주장과 주요 증인들의 핵심 발언·증거를 쟁점별로 재구성해 ‘윤석열의 거짓말’을 따져봤다. 지면 한계로 다 담지 못한 상세한 내용은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의 10가지 거짓말’ 인터랙티브 페이지 liar.sisain.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짓말 1. “질서유지 위해 국회에 군을 투입했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임단과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 등 최정예 대테러 부대가 곧장 국회로 향했다. 윤석열은 재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질서유지를 위해 국회에 계엄군을 보냈다고 강변했다. “국회 본관도 의원들 못 오게 봉쇄하려던 것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분별하여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군 병력을 투입했다(43차 공판).” “절대 실탄 지급하지 말고 실무장하지 않은 상태로 국회에 투입하되, 민간인과 충돌은 절대 피하라고 지시했다(1차 공판).”

사실일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석열의 주장에 호응했다. 윤석열에게 지시받은 건 질서유지였고 자신도 부하들에게 “불순세력의 테러나 불법 점령에 대비해 본청을 방어하고 확보하는 임무를 부여했다(39차 공판)”라고 주장했다. 윤석열과 김용현 전 장관의 말대로라면 윤석열에게 국회의원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을 방해하려는 목적은 없었다. 707특임단도 그저 질서유지를 위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에 진입했을 뿐이다.
하지만 윤석열과 김용현의 주장은 법정에서 부하들에게 반박당했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부터 전혀 다른 사실을 증언했다. 곽 전 사령관은 “‘질서유지’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26차 공판)”라면서 2024년 12월4일 0시31분 윤석열이 직접 전화로 지시한 내용을 법정에서 증언했다. “아직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으니,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 곽종근 전 사령관의 부하인 이상현 전 특전사 1공수여단장도 “사령관에게 ‘대통령이 문을 부숴서라도 들어가라고 지시했다’라는 점을 분명히 들었다(6차 공판)”라고 이야기했다.
2024년 12월4일 이상현 전 여단장과 그의 부하인 김형기 1특전대대장의 통화 녹취록에는 당시 이 전 여단장이 내린 지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국회의사당 본관으로 가서, 지금 애들이 문 걸어 잠그고 의결하려고 하고 있대. 문짝 부숴서라도 다 끄집어내(오전 0시39분).” “대통령님이 문 부숴서라도 끄집어내 오래(오전 1시).” 그런데 명령이 이행되지 않았다. 김형기 대대장은 그 이유에 대해 “할 수가 없었다. 정당한 지시인지 부당한 지시인지 몰랐고 나보다 병력이 걱정이었다(1차 공판)”라고 말했다.

윤석열은 “절대 실탄 지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1월7일 변경된 내란 특검의 윤석열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국회로 출동한 특전사와 수방사가 챙긴 실탄은 각각 5만2882발, 5083발에 달했다. 2024년 12월4일 오전 0시5분 707특임단원 A씨는 707특임단 지휘부가 포함된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 ‘사령부에서 비엘탄 개봉 승인’이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A씨는 법정에 나와 “BL탄은 국지도발이나 전투 시 사용하는 실탄(17차 공판)”이라고 증언했다.
계엄군이 국회에 도착하기 전, 윤석열은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 바삐 전화를 걸었다. 윤석열은 이때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의 출입과 업무는 지장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42차 공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지호 전 청장은 ‘국회의원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이 ‘월담하는 의원들은 불법행위를 하는 것이니 체포하라’고 말했다. 내가 경찰(의 국회) 통제에 관해 법적인 근거가 없어서 곤란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이 ‘포고령이 발령돼 국회 활동이 금지됐다, 그래서 국회를 통제해달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37차 공판).”
2024년 12월3일 윤석열과 조지호 전 청장의 비화폰 통화 기록, 그리고 경찰 무전 기록은 조 전 청장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곧장 국회를 전면 봉쇄했던 경찰은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7분 ‘일반인은 차단, 국회 출입증이 확인되는 자는 들어가도록 조치(서울경찰청이 영등포경찰서에 보낸 무전기록)’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선별적 출입을 허용한 지 8분 후부터 윤석열은 조지호 전 청장에게 여섯 차례 연달아 전화를 걸었다.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은 윤석열에게 직접 국회 출동 임무를 받았던 지휘관 중 유일하게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윤석열은 2024년 12월4일 오전 0시31분 곽종근 전 사령관과 통화한 직후 연달아 세 차례(오전 0시32분·오전 0시34분·오전 0시35분) 이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 후쯤인 오전 1시1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윤석열은 그 뒤에도 이 전 사령관을 두 차례(오전 1시6분·오전 1시13분) 더 찾았다.
이때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이진우 전 사령관은 법정에서 애매하게 설명했다. “계엄 당일 대통령에게 ‘누군가를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 전화 내용도 명령이라기보다는 무거운 질책으로 느꼈다. ‘너희들이 국회까지 가서 국회 기능이 문제되게끔 만들어놓고 뭐 하냐’는 취지로 들었다. ‘발로 차서라도, 네 명이서 한 명을 끌어낼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은 들었지만, 대통령이 그냥 ‘끌어내라’고 말한 적은 없다(35차 공판).” 윤석열이 ‘국회의원을 끌어낼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을 뿐 ‘끌어내라’고 명령한 적은 없다는 이야기다.
계엄 당시 이진우 전 사령관과 함께 차에 타고 있던 부하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오상배 당시 수방사령관 수행부관은 “이진우 전 사령관이 본청 진입이 막혔다고 보고하자, 대통령이 ‘네 명이서 한 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사령관이 사람이 너무 많아 본회의장 문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하자, 대통령은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3차 공판)”라고 증언했다. 이민수 당시 수방사령관 운전 수행부사관의 증언도 비슷했다. “두 번째 전화 때 총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계엄을 다시 하면 된다’라고 했고 ‘총을 쏘더라도”라는 말도 들었다(14차 공판).”
거짓말 2. “보안점검 위해 군이 선관위에 들어갔다”

윤석열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분 만에 정보사 부대원들은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했다. 윤석열은 법정에서 “선관위에는 계엄군이 선거관리 시스템에 보안점검을 하려고 들어갔지만 시간과 준비 부족으로 서버 장비 사진만 찍고 나갔다(42차 공판)”라며 사안을 축소해 설명했다. 김용현 전 장관도 마찬가지다. “계엄이 발령되면 최단시간 내에 정보사 인원을 보내 선관위 서버가 탈취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선점하라는 임무를 하달했다(39차 공판)”라고 주장했다.
‘선관위 장악’ 작전은 민간인 신분이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총괄했다. 노 전 사령관도 윤석열·김용현과 입을 맞췄다. “그때 장관이 말한 게 있었다. 비상계엄이 걸렸으니 선관위 서버실이 가장 중요한데, 그 부분이 피탈되거나 오염되거나 증거가 인멸되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문상호 정보사령관에게 거기 먼저 가서 방첩사가 올 때까지 지키고 있으라고 말했다(34차 공판).”
그날 밤 정보사 부대원들은 실탄을 소지하고 있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현장에 투입되는 정보사 부대원들에게 K5(권총) 실탄을 개인당 10발씩 챙기라고 지시했다. “노상원 전 사령관 이야기에 따라 지시했다. 선관위 야근 인원 퇴근시키고, 출입 인원 통제하고 휴대폰 사용하지 못하게 하라고 이야기했다. 노 전 사령관이 ‘방첩사에서 1개 팀이 갈 거니까 방첩사에 인계하고 철수하라’고 했다(33차 공판).”

같은 날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정보사 100여단에는 정보사 요원 3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2개조로 나눠, 선발대가 2024년 12월4일 오전 6시30분부터 출근하는 선관위 직원들을 순차적으로 체포하면, 후발대가 이들을 심문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들은 야구방망이, 케이블타이 등의 도구도 준비했다. 문상호 전 사령관은 그 이유를 “노상원 전 사령관이 도구 준비를 언급한 기억이 난다. 위협용이었다(33차 공판)”라고 증언했다.
김봉규 정보사 대령은 선발대가 체포한 선관위 직원들을 심문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 대령은 2024년 11월 중순 노상원 전 사령관이 자신에게 건넨 ‘계엄 시 업무 지시 사항’ 문건을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복기해 작성했다. 김 대령은 법정에서 해당 문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노상원 전 사령관이 ‘할 일이 정리되어 있으니 보면 알 거다’라며 문건 하나를 건넸다. A4 용지 10장이 조금 넘는 분량의 문건은, 대부분 유튜브에서나 보던 부정선거 의혹 내용이었다. 문건에 ‘계엄’이라는 단어와 선관위 직원 30명의 이름, 수방사 B1 벙커에서 조사가 이뤄질 거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 직원들이 출근하면 확인해서 데리고 오라는 지시였다(12차 공판).” 윤석열·김용현·노상원의 주장과 달리,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계엄군을 선관위에 보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노상원 전 사령관은 왜 방첩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지시했을까?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방첩사 수사단장도 군사법원 재판에서 ‘그날 밤 선관위 정도 규모의 서버 카피는 물론 떼오는 것도 불가능했다’고 증언했다. 남들 다 아는 걸 왜 나만 모르나? 내가 바보인가(31차 공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은 “여인형 사령관이 명확하게 선관위 서버를 카피하거나 안 되면 떼오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명령을 내릴 때 ‘대통령과 장관님의 지시’라고 명확히 말했다(11차 공판)”라고 반박했다.
거짓말 3. “‘누구를 체포하라’고 지시한 적 없다”
12·3 불법계엄 당시 정치인 등 주요 인사 ‘합동체포조’는 존재했다. 방첩사 부대원 10개조 총 49명, 경찰 10명, 국방부 조사본부 10명 등 군경이 합동체포조를 구성해 국회로 출동했다. 윤석열은 “내가 홍장원이나 방첩사령관을 통해서 ‘누구 체포하라’고 했다는 건 전부 새빨간 거짓말(1차 공판)”이라면서 책임을 부인했다.
김용현 전 장관도 윤석열이 뒤늦게서야 상황을 알았다고 거들었다. “계엄 해제 후에 대통령이 전화해 ‘방첩사령관한테 명단 줬다는 게 뭐냐’ 이렇게 하문을 했다. 그래서 ‘포고령 위반 우려가 있는 인원들하고 관심이 필요한 인원들 몇 명을 제가 불러줬습니다. 그리고 동정을 파악해보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대통령이 ‘불필요한 일을 한 것 같다’면서 조금 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40차 공판).”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은 윤석열에게 직접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피고인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3분 전화를 걸어서 ‘봤지? 싹 다 잡아들여서 정리하라’면서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강하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29차 공판).” “이후 여인형 사령관이 나에게 불러준 체포 명단에는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이 포함되어 있었다(30차 공판).” 이에 대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해명은 궁색했다. “군인들은 ‘체포, 검거, 공격해, 쳐부숴’ 같은 말이 입에 배어 있다. 나도 모르게 한 말이 있고, 나도 나중에 보니까 ‘이때 이런 말을 왜 썼지’ 싶은 말도 있다(31차 공판).”
그런데 그때 여인형 전 사령관에게 체포 명단을 들은 사람이 또 있다. 조지호 전 경찰청장이다. 조 전 청장은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30분경 여인형 사령관이 전화를 걸어 ‘경찰 안보수사 요원 100명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정청래 등의 명단을 불러주며 ‘우리가 체포할 건데 위치추적을 해달라’고 했다. 이후에 ‘위치추적 요청 명단에 한동훈 추가합니다’라고도 했다. 법원 영장이 있어야 해서 안 된다고 했는데도, ‘하여튼 좀 해달라’고 했다(37차 공판)”라고 증언했다.

그날 밤 ‘체포 명단’은 존재했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기관에서 작성한 체포 명단이 유사하다. 구민회 방첩사 중령은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이 불러준 체포 명단을 포스트잇에 작성했다.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해주, 조국, 양경수, 양정철, 이학영, 김민석,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박찬대, 정청래’ 모두 14명이다. 홍장원 전 1차장이 받아적은 체포 명단에는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김민석, 김어준, 조국, 박찬대, 정청래, 김명수, 김민웅, 민주노총 위원장, 권순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거짓말 4. “전 병력은 즉각 철수했다”

윤석열은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이후 즉시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대신, 합동참모본부 지하 결심지원실을 찾았다. 결심지원실은 합참 지휘통제실 안에 마련된, 군 수뇌부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별도의 군 보안시설이다. 2024년 12월4일 오전 1시1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지만, 윤석열이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을 의결한 건 3시간30분이 지난 오전 4시30분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인 오전 5시40분 계엄 해제를 공고했다.
윤석열은 계엄 해제를 지연하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이후, 국무위원들이 빨리 안 오기 때문에 일단 국방부 장관과 계엄사령관을 불러서 군의 대응 상황을 먼저 종료시키라고 했다.” “뒤늦게 추가 병력이 국회 인근에 도착했지만 바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자 전 병력은 즉각 철수했다(42차 공판).” 김용현 전 장관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때 대통령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다는 보고를 받고 안도했다. 결심지원실에서 회의 끝나고 나가면서 내가 병력을 철수시키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즉시 철수시키라’고 말했다(40차 공판).”
하지만 이는 윤석열과 김용현 전 장관, 두 사람의 주장일 뿐이다. 당시 국방부 장관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김철진 전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은 합참 결심지원실에서 벌어진 상황을 목격했다. 김철진 전 보좌관은 윤석열이 김용현 전 장관에게 화를 냈다고 증언했다. “대통령은 김용현 장관에게 국회 투입 병력 규모를 물은 뒤, ‘500여 명 정도’라는 답이 돌아오자 ‘거봐, 부족하다니까. 1000명을 보냈어야지. 이제 어떡할 거야’라며 강하게 질책했다(7차 공판).”
현장에는 방첩사 소속 B 중령도 있었다. B 중령은 실시간으로 방첩사 지휘부가 포함된 단체 대화방에 상황을 보고했다. 이 대화방에는 박성하 전 방첩사 기획관리실장도 들어와 있었다. 박 전 실장은 당시 단체대화방에서 본 내용을 이렇게 증언했다. “대통령은 결심지원실로 들어오면서 ‘의원들부터 잡으라고 했잖아요’라고 소리쳤다. 김용현 장관이 ‘인원이 부족했다’고 답하자, 대통령은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계엄 해제 의결이 됐어도, 그 새벽에 다시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된다’고 했다(22차 공판).”

김용현 전 장관이 철수가 아니라 오히려 병력 재투입을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영권 전 특전사 파견 방첩사 방첩부대장은 2024년 12월4일 오전 2시13분경 김용현 장관과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의 통화를 들으며 메모를 남겼다. “당시 김용현 장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곽종근 사령관의 답변은 정확히 들었다. 곽 사령관은 ‘장관님, 지금 국회에서도 다 철수했는데 선관위로 다시 병력을 투입하는 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이미 국회에서 해제 의결이 됐는데, 다른 병력을 다시 출동시키라는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증거로 남기기 위해 메모했다(13차 공판).”
철수 지시를 받지 못한 건 수방사·정보사·방첩사 모두 마찬가지였다.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5분 내에, 대통령이 이진우 사령관에게 전화해 ‘지금 190명이 들어와서 의결했다는데 실제인지 확인 안 되니 계속해라’ ‘결의안이 통과됐어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되니까 너네는 계속해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오상배 전 수방사령관 수행부관, 3차 공판).” “2024년 12월4일 오전 1시30분에도 상부의 복귀, 철수 명령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오전 2시30분에 내가 팀장들에게 철수하라고 지시했다(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 10차 공판).” “상부의 철수 지시는 전혀 없었다(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33차 공판).”

거짓말 5. “계엄 모의·장기 집권 목적 없었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왜 비상계엄을 준비하고, 실행했을까? 내란 특검은 수사 결과, ‘윤석열이 김용현, 노상원, 여인형 등과 함께 2023년 10월 이전부터 비상계엄을 수단으로 한 내란을 준비했다’ ‘입법권과 사법권을 찬탈해 권력을 독점하고 장기 집권할 목적으로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인하여 비상계엄 요건을 조성하려 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국회에서 헌정질서 내에서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정치활동을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행위로 몰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결론내렸다.

내란 특검은 이른바 ‘최상목 문건’에 담긴 국헌문란 목적 의도에 주목한다. 윤석열이 12·3 비상계엄 당시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에게 건넨 A4 크기의 종이 한 장에는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해 보고할 것’ ‘국회 관련 각종 자금을 완전 차단할 것’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특검은 이 문건이 “국회의 의결 없이 예비비를 우회해 편성하고, 국회 관련 모든 예산을 완전 차단하며, 위헌적·초헌법적 기구인 국가비상 입법기구 창설과 운영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도록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라고 판단했다.
재판에서 윤석열은 사전 계엄 모의도, 장기 집권 목적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김용현 장관이 사령관들한테도 계엄 선포를 알려주지 못했다. 내가 2024년 12월2일 예정된 감사원장 탄핵 발의가 무산되면, 계엄 선포도 없는 것으로 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장기 집권을 하려면 결국은 국회를 해산해야 하는데, 국회를 해산하거나 국회가 준영구적으로 기능이 정지되도록 할 만한 어떤 계획을 세운 것이 없다(42차 공판).”
윤석열은 이 쟁점과 관련해 김용현 전 장관을 직접 신문했다. 윤석열이 “계엄 선포 전에 계엄과 관련된 논의는 우리 둘밖에 안 하지 않았냐”라고 묻자 김 전 장관은 약속한 듯 “그렇다(40차 공판)”라고 답했다. “국가비상 입법기구 예산, 이걸 두고 1980년도에 신군부가 국회 해산하고 만든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이야기를 하는데 그럴 상황은 아니지 않나?”라는 윤석열 질문에도 김용현 전 장관은 “그렇다(40차 공판)”라고 답할 뿐이었다.

“계엄 관련 논의는 둘밖에 안 했다”라는 윤석열·김용현의 주장과 달리,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2024년 10월27일 휴대전화에 ‘포고령 위반 최우선 검거 및 압수수색’ 등 계엄과 관련한 계획들을 적어 내려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획은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여인형 전 사령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위로 메모를 썼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열심히 군 생활한 사람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내용을 포렌식으로 조각조각 끄집어내어, 그것들을 취사선택해 왜 멋대로 스토리라인을 만드느냐(31차 공판)”라고 말을 돌렸다.

이진우 전 사령관도 “당시 나를 포함해 출동했던 부하 누구도 계엄 선포를 상상도 못했다. 나중에서야 우리가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35차 공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인터넷에 검색한 기록에 대해 명확한 해명은 하지 못했다. ‘평양상고(공) 무인기(2024년 10월15일)’ ‘국회의사당·한동훈 당 게시판 조작(2024년 11월9일)’ ‘김동연(김동현의 오기) 판사 면직(2024년 11월27일)’ ‘쇠지렛대·문을 열거나 부수는 데 사용하는 도구(2024년 12월2일)’ ‘국회 해산이 가능한가요(2024년 12월3일)’ 따위다.
계엄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사령관은 계엄의 준비 과정을 70쪽 분량의 ‘노상원 수첩’에 기록했다. 수첩에는 ‘국회 봉쇄’ ‘수거 대상’ ‘사살’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북의 공격 유도’ 등 계엄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노상원 수첩에 적힌 핵심 군 간부 인사 내용은 그대로 단행됐다. 노상원은 자신이 수첩을 작성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상관에게 보고할 때 저렇게 써서 보고하느냐(34차 공판)”라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 때 “김용현 장관이 말하는 걸 메모해놓으라고 지시해서 그때그때 적은 거”라고 진술한 것과 달리, 수첩 내용이 김용현 전 장관이나 윤석열과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다.

노상원 전 사령관이 입을 다물면서, ‘노상원 수첩’의 진실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수첩에는 진보 성향 인사 수백 명을 A~D 등급으로 분류해 ‘수거’한다는 계획부터, ‘이송하는 과정에서 사고로 위장해서 폭사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살상 계획, 계엄 후 헌법을 개정해 선거제도를 바꾸고 후계자를 찾겠다는 장기 집권 계획까지 담겨 있다. 본격적인 수사를 앞둔 2차 종합특검(특별검사 권창영)은 “내란 관련 사건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의 외환 의혹과 함께 노상원 수첩에 적힌 내란 준비 의혹을 추가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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