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관계 조정하는 역할은 AI가 대체 못해”…AI 시대, 인간 변호사의 역할

생성형 인공지능이 전문직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특히 변호사의 경우 핵심 업무에 인공지능이 활용되면서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3년차 전후 어쏘 변호사가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하게 되면서 이들이 설 자리도 줄어들고 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허위 판례 인용이나 정교한 위조문서가 재판과 수사 과정에 등장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외국에서는 대응을 시작했지만 한국 법조계에서는 아직 명확한 윤리 기준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인공지능과의 협업을 깊게 고민해온 추은혜 변호사(법률사무소 더든든)의 기고는 이러한 변화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추 변호사는 인공지능과의 협업은 불가피하되, 결과물을 검증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인간 변호사라고 강조한다. 또한 인공지능의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감정과 관계 등을 다루는 것과 같은 인간 법률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짚는다.
법률 분야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진 영역 중 하나다. 사실관계 요약 및 정리, 쟁점 도출, 판례 검색, 외국 입법례 등 참고 문헌 정리, 서면 초안 작성과 같은 과정이 과거에는 3년 차 전후 어쏘 변호사의 몫이었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요즘 신입 변호사 채용을 하지 않는 사무소가 늘어난 데는 이런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나는 공동 대표 변호사와 함께 사무소를 운영하지만, 업무는 각자 독립적으로 처리한다. 오늘 날짜 기준 전자소송 시스템에 등록된 사건 수는 109건이다. 과거 변호사 한 명당 평균 사건 수가 약 50건이었던 것에 견줘 업무 효율이 두 배 이상 높아진 셈이다. 판례 리서치, 사안에서 어떤 주장을 할 것인지, 어떤 포인트가 가장 설득력 있을지 뽑아내는데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어쏘 변호사 한 명과 함께 토론하며 사건을 처리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새벽 2시에 프롬프트를 보내도 묵묵히 답해준다. 인간 어쏘였다면 이미 이직을 고민했을 시간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리걸테크에 대한 법조계 인식조사 및 교육방안 연구’에 따르면 변호사 4명 중 3명이 법조 인공지능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인공지능과의 협업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실무의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인공지능을 쓰되, 어떻게 농락당하지 않을 것인가.
판례검색부터 증거 조작까지
이 문제는 가사에 국한되지 않는 법조계 전반의 특성이다. 실무에서 상대방 측이 제출한 자료에 의구심이 생기는 순간들이 있다. 대화의 맥락을 바꾸기 위해 앞뒤를 자른 캡처, 날짜와 시간이 지워진 화면, 형식은 그럴듯하지만, 출처가 불분명한 문서들. 이전에도 이런 편집은 가능했다. 다만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면서 그 정밀도와 손쉬움이 달라졌다.
예컨대, 지난달 11일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기소한 사건은 충격적 사례다. 의뢰인이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기능으로 계좌 잔고 23원을 9억여 원으로 바꾼 잔고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법원은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이 계좌 영장을 통해 위조 사실을 밝혀낸 뒤에야 사건이 바로잡혔다. “육안으로 식별이 곤란할 정도로 정밀하게 위조해 판사까지 속였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메시지 캡처, 녹음 파일 등 상대방 자료에서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형식이 지나치게 깔끔한 느낌이 들 때는 반드시 의심해 보아야 한다.
AI 리서치 결과는 검증의 시작점
2025년 한 해 공식 확인된 사례만도 세 건이다.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이 인공지능 의견서에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했고,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아동학대 불송치 결정문에 챗지피티를 활용하면서 강간상해 사건 판결(대법원 2015도11233)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건 판결(서울북부지법 2019고단285)을 아동학대 법리의 근거로 인용했다. 두 판결 모두 아동복지법과 무관하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공인노무사 답변서의 판례 10건 전부가 실재하지 않는 사건이었다.
이처럼 허위 판례 사례들이 빈번히 등장하자 적극적 대응책도 나오고 있다. 영국 고등법원은 2025년 판결에서 허위 판례 제출에 법정모독 등 형사 책임까지 경고하며 인공지능 오남용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미국변호사협회(ABA) 역시 인공지능 출력물에 대한 독립적 검증이 변호사의 기본적 책무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변호사가 인공지능을 쓰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아직 법조 인공지능 활용에 관한 공식 윤리 지침도, 인공지능 생성 서면에 대한 고지 의무 규정도 없다. 미국과 영국이 제재와 판결로 기준을 만들어가는 동안, 한국 법조계는 여전히 제도의 공백 속에 있다. 그 공백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기술을 잘못 사용한 전문가가 아니라 그 결정에 인생이 걸린 당사자들이다.
인간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판단
의뢰인이 담당 변호사에게 인공지능을 사용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답한다면, 거짓일 확률이 높다. 오히려 솔직하게 밝히지 않는 것은 개인정보 처리 원칙조차 세워두지 않은 채 무방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나는 당연히 사용한다고 답하고, 어떤 용도로 활용했고 결과물을 어떻게 검증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의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인간 법률가의 역할이 더 선명해진다. 법률 분쟁은 법리의 충돌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과 관계의 충돌이다. 이혼 소송을 앞둔 의뢰인이 상담실에 들어올 때 그 표정에는 분노와 공포와 서운함이 뒤섞여 있다. 양육권 분쟁 중인 부모는 자녀의 법적 권리를 다투는 사람이기 이전에 아이와의 관계가 멀어질까 봐 두려운 사람이다. 재산분할 협상이 끝없이 길어지는 이유도 돈의 문제만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쌓인 상처,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각,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 숫자 뒤에 있다. 데이터와 평균값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않다.
법정에서 이기는 것보다 관계를 재정의하는 것이 의뢰인에게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 예컨대 이혼 후에도 아이를 매개로 한 부부의 관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판결문 한 줄보다 더 오래 남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사람을 읽는 것, 관계를 다루는 것, 상황의 무게를 감지하는 것 이것은 어떤 인공지능도 대신할 수 없다.
AI와 인간 변호사의 협업
의뢰인이 가져오는 증거부터 출처를 확인하라. 날짜와 시간이 보이는 원본, 끊기지 않은 전체 흐름을 기본으로 요청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제시한 판례는 공신력 있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직접 검증하고, 판시 내용이 실제로 있는지까지 대조하는 것이 원칙이다. 법률 분석이나 문서 작성에 인공지능을 활용했다면 의뢰인에게 알리는 것이 맞다. 감정과 삶이 직접 걸린 사건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서면을 인공지능이 도운 손으로 썼다는 사실을 의뢰인은 알 권리가 있다. 의뢰인의 상황과 감정,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종합하는 판단은 인공지능에 맡길 수 없다. 인공지능은 평균적인 사건을 기반으로 학습한다. 변호사 앞에 앉은 의뢰인의 사건은 항상 평균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틀렸을 때, 책임지는 건 변호사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지금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추은혜 법률사무소 더든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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