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판결 뒤 ‘헌법 소원’ 가능…사건 적체·소송비용 증가 우려

박지영 기자 2026. 3. 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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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원제땐 무엇이 바뀌나
법원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재판소원법\'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확정된 이혼 판결이 취소되면 그 뒤에 한 재혼은 무효가 되는가.’

지난 18일 대법원이 낸 재판소원 참고자료의 이 질문은 재판소원의 급속한 도입이 가져올 절차적, 실무적 혼란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88년 헌법재판소법 제정 이후 기본권 침해의 구제 수단으로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의 길을 열어놓은 재판소원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당장 재판 실무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만큼, 제도 안착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재판소원법에 따르면 확정판결 중 기본권 침해 사안에 대해 확정 뒤 30일 안에 헌재에 헌법소원 청구가 가능하다. 재판소원을 청구하면서 확정판결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신청도 할 수 있고, 인용되면 판결 효력이 정지된다. 재판소원으로 판결이 취소되면 법원은 해당 재판을 헌재 결정에 따라 다시 해야 한다.

하지만 재판소원의 청구 대상 사유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이른바 ‘소송의 홍수’ 발생 우려도 나온다. 재판소원 청구 사유는 △판결이 헌재 결정에 반하는 경우 △재판이 적법 절차를 어긴 경우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 그 개념이 모호하다. 재판에서 패소한 누구나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며 재판소원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에 헌재에 사건이 몰리는 적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재판소원법을 앞서 도입한 독일·스페인·대만도 헌재의 과도한 업무 부담 증가가 문제화됐다. 헌재에는 현재 9명의 재판관과 70여명의 헌법연구관이 있는데 연간 접수 사건은 약 2500건으로, 평균 처리 기간이 2년 가까이 된다. 여기에 재판소원 사건까지 추가되면 정작 위헌법률심판이라는 헌재 본연의 기능 수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헌재는 사전 심사를 거쳐 본안 사건 판단 대상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재판소원 이후의 절차 규정이 사실상 없다시피 해 후속 입법의 필요성도 거론된다. 재판소원법은 확정판결이 취소되면 ‘사건을 통지받은 최종법원은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 ‘그 심급의 소송 절차에 따라 다시 재판해야 한다’고만 정하고 있다. 헌재에서 위헌 판단을 받으면 대법원이 다시 파기환송 판결을 해야 하는지, 어느 단계에서 최종적으로 판결이 확정되는지 알 수 없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참고자료에서 “소송 절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형적이고 중요한 쟁점들에 대해 아무런 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다시 재판’하라고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재심 규정 법안 등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추가 입법 사항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현재는 대법원이 2심을 취소할 경우 파기환송을 하지만 헌재가 재판을 취소하면 그다음 단계는 어떻게 되는지 현재 입법으로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법원과 달리 헌법재판에는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점에서 법률 소비자로서는 부담이다. 변호사 없이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하면 기각·각하될 수 있다. 4심제 이상의 소송 지옥의 굴레에 빠질 경우 막연한 승소의 기대감으로,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지출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아울러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의 재판 지연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유죄가 확정된 피고인이 재판소원을 제기하면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시간이 지속되거나 재산권 사건에서 패소한 사람이 재판소원을 진행해 승소자의 권리 실현이 미뤄질 수도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유리한 소송구조가 된다.

법조계에선 재판소원법이 헌법 가치 확산과 기본권 보장 기여의 순기능을 담당할 거란 기대감도 적지 않다. 예컨대, 양심적 병역 거부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 등 기본권 침해로 논란을 일으킨 사건들이 재판소원으로 헌재에서 다시 다퉈볼 수 있게 된다. 앞서 재판소원법 제도를 먼저 도입한 독일·스페인·대만 등을 살펴보면 이런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에서도 실제 제도 운용 과정에서 헌재의 지나친 업무 부담 증가, 헌재와 법원 사이의 역할 분담 문제 등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국회 입법조사처는 “스페인은 사전심사 절차를 강화하는 2007년 법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헌법재판의 처리 속도가 느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점, 독일에서도 사건 부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식 사건선별 제도를 도입할지 논의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단순히 사전심사 절차를 운용하는 것만으로 사건 부담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따라서 재판소원 제도 도입 전 헌법재판소가 충분한 사건 처리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조직과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대만에서 재판소원 제도 시행 전 3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던 것처럼 제도 시행 전 실무적으로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이나영 기자 ny379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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