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한동훈’ 무소속 출마하나…최악 시나리오는 보수 분열→민주당 당선
낙선 또는 어부지리 여권 당선 ‘칼국수’ 될 수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2023년 12월26일 정계에 입문한 첫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 법무부 장관으로 검찰정치의 정점에 있던 그가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직행하자 후폭풍이 거셌다. 그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출마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정치 입문은 사심이 아닌 “오직 동료 시민을 위한 헌신”임을 강조했다.
팬클럽은 ‘총선 승리를 위해 배수진을 쳤다’며 감동했지만, 정치권에서는 ‘배지’의 무게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혀를 찼다. 총선 승패를 떠나 일단 원내에 진입해 임기 4년짜리 당내 교두보를 마련하고, 웬만한 계파 전투에는 무너지지 않는 진지를 구축하고, 더 큰 정치를 위해 주변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정치의 기초이자 기본이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낙선한 이재명 대통령이 불과 두 달 만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당 안팎의 비판에도 기어이 원내로 들어간 이유를 이해할 정치적 머리가 초보 정치인 한동훈에게는 부족했던 셈이다.
‘원내’ 중요성 몰랐던 원외 초보의 깨달음
한 전 대표는 불과 3개월 뒤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며 재기에 성공했다. 정치 팬덤에 기반한 개인기를 입증했지만, 원외 당대표 한동훈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총선 당시 인재영입과 당직 인사를 통해 구축한 소수의 친한동훈계는 초선·비례 중심이라는 정치적 한계가 분명했다. ‘서초동 사투리’에 능했던 한 전 대표의 밀행주의는 원내 확장성을 더 떨어뜨렸다.
특히 원내 발언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너무 이른 시점에 자기정치를 시작한 것이 독이 됐다. 대통령과 사사건건 충돌하자 친윤계의 전방위 공세는 거세졌다. 용산 대통령실은 당대표를 건너뛰고 원내 친윤계와 직거래했다. 12·3 비상계엄, 계엄 해제, 대통령 탄핵소추 과정에서 ‘원외 한동훈’은 의원총회에 불려 나와 친윤계 의원들로부터 정치적 집단 린치를 당한 뒤 당대표직에서 쫓겨났다. ‘원내 친한계’였던 장동혁의 반란을 원외에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다.
‘원외 한동훈’은 지난달 국민의힘에서 제명되며 “그냥 한동훈”이 됐다. 정치 입문 2년여 동안 비대위원장→당대표→대선 경선 후보→제명이라는 롤러코스터를 탔던 한 전 대표에게 없었던 것은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원내’라는 정치적 안전벨트였다. 그가 6·3 지방선거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있는 대구와 부산을 훑는 정치 일정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대구서 배신자 프레임 깨야 정치인 미래 있어
친한계에서 1순위 출마지로 꼽는 지역은 보수정당 핵심 지역 기반인 대구다. 유승민 전 의원 사례에서 보듯 이곳에서 ‘배신의 정치’ 프레임을 깨지 못하면, 설령 한 전 대표가 다른 지역에서 배지를 달더라도 고만고만한 보수정치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 리부트를 위해서는 반드시 대구에서 재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박근혜 탄핵 이후 대구는 배신자로 한 번 낙인 찍힌 이에게는 좀처럼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는 차가운 도시가 됐다.
국민의힘이 지방선거 후보 기근에 빠졌지만 대구는 곳간이 차고 넘친다. 현직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대구시장 출마를 이미 선언했다. 당내 경선에서 이긴 후보 지역구는 공석이 되며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친한계에서는 일단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지역구인 수성갑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성갑은 대구에서 보수세가 상대적으로 덜한 곳으로 꼽힌다.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 득표율이 30.33%였다. 20%대였던 대구 다른 지역구에 견주면 승부를 걸어볼 만한 지역인 셈이다. 다만 주호영 의원은 한 전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전망에 “대구는 외지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곳”이라고 단언했다.
이를 의식한 듯, 한 전 대표의 대구 일정은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지난 25∼27일 사흘 일정으로 대구를 찾았다. 27일에는 큰 꿈을 꾸는 보수정당 계열 정치인의 단골 이벤트 장소인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서문시장 방문을 앞두고 그의 팬클럽인 위드후니 에스엔에스에는 서문시장행 단체버스 담당자 연락처가 지역별로 올라왔다. 서울지역 담당자는 “대구 서문시장에 대보름 장 보러 가요”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버스 출발 시간과 장소를 공지했다. 한 전 대표는 서문시장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보수를 재건하기 위해 윤석열 노선을 끊어내야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서보겠다“며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을 끌어올렸다. 취재진에게도 “(출마를)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서문시장에서 죽이나 밥이 아닌 칼국수를 먹었다.
대구 보궐선거에는 변수가 더 있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원외’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공천장을 받으면 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게 된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속도를 내며 통합 선거가 치러질 경우에도 선거판이 커지며 공천 결과에 따라 대구 보궐선거가 치러지지 않을 수 있다.

죽도 밥도 아닌 칼국수 되면 어쩌나
서울 강남지역에 보궐선거 공간이 생길 수도 있다. 장동혁 지도부의 일원인 신동욱 최고위원(서울 서초을)이 최근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한 전 대표는 강남 8학군 출신이기도 하다.
한 전 대표에게 불출마나 낙선보다 큰일은 민주당에 어부지리 당선을 안기는 경우다. 죽이나 밥이 되지 않고 칼국수가 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원내’가 되는 길이 이리 힘들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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