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유가 초비상…韓 원유 70% 중동에 의존

정지성 기자(jsjs19@mk.co.kr), 강인선 기자(rkddls44@mk.co.kr), 임성현 특파원(einbahn@mk.co.kr) 2026. 3. 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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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네이 사망에 호르무즈 봉쇄 위기
韓 원유 70% 중동 의존…공급 ‘직격탄’
JP모간 “브렌트유 120~130달러 우려”
민·관 7개월 치 비축…단기 영향은 적어
정유업계 “사태 장기화 시 국내 우선 공급”
무역수지·기업 원가도 동반 압박 불가피
유가 100달러 오르면 물가상승률 0.7%P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을 보여주는 지도 위에 송유관의 모습이 합성돼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선언하면서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국가 경제의 생명줄인 원유 수급과 이에 필요한 수송로가 위협받으면서, 경제 전반에 ‘안보 리스크’가 증폭할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1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이란을 비롯한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원유 약 2100만배럴이 매일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이는 글로벌 해상 원유 물동량의 4분의 1에 달한다.

중동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더욱 취약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원유 도입량의 약 70%가 중동산이다. 또 액화천연가스(LNG)의 20.4% 역시 이곳에서 온다. 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이란 공습 직후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통행량이 기존의 3분의 1 미만으로 급감했다.

이에 유가 급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쟁 발발 전부터 브렌트유는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올 들어 20% 가까이 급등했다. 영국 금융사 바클레이스는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JP모건도 호르무즈해협 봉쇄 시 브렌트유 가격이 120~130달러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요 정유사들은 1일 사태 파악과 향후 대책 마련을 위해 일제히 비상회의를 열었다. 업계는 유가 급등과 이로 인한 원유 수급 리스크, 장기 수익성 악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유국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협의체 OPEC+ 소속 8개국은 4월 원유 생산량을 하루 13만7000배럴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중동 정세가 급변하면서 서둘러 회의를 열고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파급 효과와 증산 카드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1일(현지시간) 이란의 공습으로 추정되는 공격 이후 두바이 제벨 알리 항구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기둥 옆으로 요트 한 척이 지나가고 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중동 곳곳의 미군 거점을 타격했다. [AFP = 연합뉴스]
국내 정유업계는 단기간에 사태가 수습될 경우 저가에 도입해 둔 물량을 기반으로 제품을 팔 수 있어 정제 마진이 일부 개선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고유가·고금리 여파로 글로벌 경기와 석유 수요가 위축돼 실적에 더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 비축유와 민간 재고를 감안하면 당장 국내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정부와 협의해 대체 도입선 확보, 수출 물량의 내수 전환 등으로 국내 공급 안정에 최우선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부는 이날 문신학 차관 주재로 ‘제2차 실물경제 점검회의’를 열었다. 사태가 장기화해 민간 원유 재고가 일정 비율 이상 감소하는 등 수급 위기가 악화될 경우 여수, 거제 등 전국 9개 비축기지에 비축된 전략비축유를 국내 시장에 공급하기로 했다. 현재 정부가 1억배럴 가까운 원유를 보유하고 있는 등 민관이 합쳐 약 7개월분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한국의 석유 비축량은 221.2일 규모로, IEA 기준인 90일 대비 크게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이 중 정부는 117.1일어치를, 민간은 104.1일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석유를 먼저 소진하면 정부가 비축 물량을 풀어 부족분을 공급하는 구조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중동 외 지역 석유를 현물 스왑을 통해 들여오는 방식의 대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군 기지가 있는 바레인 마나마에서 28일(현지시간) 폭음이 들린 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유가 상승은 향후 한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국내 수출은 0.39% 감소하는 반면 수입은 2.68% 증가해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된다. 공급망 차단 시 정유·석유화학·전력 등 기간산업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하기 어렵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중동지역 직접 수출 비중은 2%에 못 미쳐 크지 않지만 유가와 해상 운임, 보험료 상승이 수출기업 원가와 물류비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며 “물류업계와 긴밀히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체 루트와 비용 지원 등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피시먼 외교문제협의회(CFR) 지정학경제연구센터 센터장은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통화 정책과 인플레이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을 압박하고, 이미 무역 갈등으로 타격을 입은 취약한 세계 경제를 다시 뒤흔들 수 있다. 유가 상승은 각국 중앙은행이 진행해 온 금리 인하 기조를 멈추게 하거나, 일부 국가에서는 다시 금리를 올리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급등할 경우 전 세계 평균 물가상승률을 0.6~0.7%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한국은행 등의 통화 정책 기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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