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가공·소재 아우른 ‘블루푸드 전쟁’…부산 독보적 위치
- 기후위기 대응 스마트 육상양식
- 첨단푸드테크 결합 고부가 창출
- 유통단계 넘어서 인증·운송까지
- 배후단지에 관련 첨단산업 집적
- 북극경로 부산엔 전용 고속도로
- 유럽수출 이동시간 획기적 단축
- 글로벌 밸류체인 완성 선도해야
1일 부산 기장 해안가 스마트양식클러스터 양식장(9166㎡)에는 SF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 건물 안에선 사람이 사료를 던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수천 개의 센서가 수조 속 산소포화도·염도·수온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화면엔 대서양연어들의 움직임이 3D 모델로 흐른다. AI로 개체별 성장 속도를 분석해 최적의 사료량을 자동으로 결정한다. 순환여과시스템(RAS)이 오염물질을 정화·재사용하면서 기존 가두리 양식에서 흔했던 높은 폐사율은 5%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운영사인 에코아쿠아팜 동상준 PM팀장은 “성장에 최적화된 수온과 사육 조건을 상시 유지한 덕분에 5㎏짜리 성어 출하까지 기간을 2년 내외로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이 선사한 양식장
이 양식장은 부산이 그리는 미래 먹거리 전략, ‘블루푸드’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기후 위기가 닥쳐올수록 전 세계의 시선은 바다로 향하고 있다. 육상 농업이 폭염·가뭄·홍수로 흔들리는 사이, 수산물은 미래 식량 안보의 핵심 대안으로 부상했다. 여기에 첨단 푸드테크가 결합된 고부가가치 수산 가공식품부터 배양 수산 단백질, 기능성 소재를 포함한 ‘블루푸드’는 차세대 글로벌 식품 시장의 격전지가 됐다. 부산은 이 전쟁에서 지리적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북극항로가 곧 열리기 때문이다.

기존 수에즈 운하를 거치면 부산에서 유럽까지 냉동 상태로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수산물의 상품가치는 그 시간만큼 깎였다. 그러나 북극항로가 열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산에서 아침에 출하한 수산물이 십여 일 뒤 유럽 시장 진열대에 오르는 풍경이 현실이 된다. 운송 시간 단축은 물류 비용 하락과 신선도 향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수출 경쟁력의 비약적 상승을 의미한다. 북극항로는 부산 블루푸드 산업의 ‘전용 고속도로’인 셈이다.
부산은 세계 6위권의 컨테이너 항만을 보유하지만, 항만에서 파생되는 부가가치는 아직 크지 않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이 대표적인 비교 사례다. 북극항로 화물이 유럽 내륙으로 분산되는 최종 거점인 로테르담은 항만 자체보다 배후단지에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가 몇 배 높다. 물건을 통과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가공하고 더하고 되팔기 때문이다.
부산 수산업은 오랫동안 그 가능성을 살리지 못했다. 냉동창고 임대와 단순 유통에 머물러 있었고, 창고 시스템조차 현대화가 안 돼 재고 관리가 엉망이었다. 냉동 수산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일조차 시스템 미비로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잡는 어업’의 관성이 강했다.
▮항만도시의 오랜 약점, 그리고 기회

북극항로 시대는 이 구조를 바꿀 결정적 계기다. 부산은 지금 ‘기르는 수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나아가 ‘데이터로 설계하는 블루푸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부산시는 이미 굵직한 투자에 나섰다. 서구 암남동 일원에 총 813억 원을 투입해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수산식품산업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다. 연구개발(R&D)·기업 지원·수출 거점 기능을 한 지붕 아래 통합한 이 시설은, 북극항로로 들어오는 청정 수산물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핵심 거점이 된다. 부산시 이월라 수산진흥과장은 “북극항로가 열리면 운송시간이 짧아져 수산물 수출 경쟁력이 올라간다. 스마트 공동물류센터와 수산물 수출입 거점도 함께 구축해 냉동·냉장 인프라, 스마트 창고, 품질·안전 인증, 해상운송 서비스까지 연관 산업 전체를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재도 키운다. 앞으로 수산업은 데이터를 다루고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 된다. 부산이 블루푸드 인재의 허브가 된다면, 청년 인구 유출 문제도 함께 풀 수 있다. 시는 국립부경대와 연계해 블루푸드 관련 신규 전공을 개설하고, 글로벌 석·박사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할 방침이다. 수질 데이터 분석가, 자동화 설비 운영 전문가, 수산물 이력 관리 시스템 전문가 등 청년들이 선호하는 고부가가치 기술직 일자리가 새롭게 열린다.
▮인프라 짓고, 생태계도 구축
부산 블루푸드 산업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북극해에서 잡힌 대게와 명태가 부산항으로 들어온다. AI 기반 자동 가공 시스템이 이를 HMR(가정 간편식)이나 메디푸드(환자용 건강식)로 탈바꿈하고, 완성된 제품은 북극항로를 타고 열흘 안에 유럽 소비자의 식탁에 오른다. 북극항로가 열리는 가까운 미래에 예상할 수 있는 모습이다.
조금 더 먼 미래에는 물고기를 직접 기르지 않아도 된다. 배양한 수산 단백질, 북극해의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생물에서 추출한 고기능성 물질로 만든 노화 방지 화장품과 특수 의약품이 부산에서 개발·생산·수출된다.
북극항로는 이 고부가가치 제품들을 세계 시장으로 실어 나르는 ‘전용 차로’가 된다. 부산의 기술로 기른 수산물이, 부산항을 통해, 북극이 뚫어준 물길을 타고 전 세계 식탁에 오른다. ‘글로벌 밸류 체인’의 완성이자, 해양수도 부산이 다음 시대를 여는 방식이다.
이처럼 북극항로는 단순한 뱃길 변화가 아니다. 부산이 이 변화를 선점하느냐 그냥 지나치느냐에 따라 10년 뒤 수산업의 지형이 완전히 달라진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부산연구원(BDI) 허윤수 부원장은 “냉장·냉동 화물의 실시간 모니터링과 예측운영, 터미널·배후단지·운송수단 간 시스템 연계 고도화, 사이버보안·복원력 확보 등 데이터·제도·운영 프로세스를 함께 바꾸는 것이 북극항로 시대 부산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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