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청개구리가 그리운 이유

2026. 3. 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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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

‘3초면 충분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홍보 전문가와의 상담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다. 짧은 영상이 홍보 수단의 대세가 됐고, 홍보의 성공과 실패는 3초 안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도입부 3초 안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하면 다른 영상으로 넘겨버리는 찰나의 선택을 선호한다고 한다. 유행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표현은 다소 진부하다. 왜냐면 너무나 많은 짧은 영상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간단한 영상을 만드는 기술과 정보는 더 이상 독점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까. 그 양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벅찬 변화의 시대이자 아쉬울 것 없는 대량 이미지의 시대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풍요로운가?

하루에 수천만 개, 셀 수 없는 숏폼이 생산돼 업로드되고 있다는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이 진부한 이미지들의 과잉은 시각적 피곤이 누적되는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평가는 창작자에게 치명적인 불명예일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경향으로 분류돼 창작은 계속된다. 이미지 과잉으로 인한 전반적인 하향평준화의 변명이자 억지 합리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플랫폼이 많아졌는데 휴일의 여가 시간을 위한 하나의 영화를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한 경험이 있다. 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나를 감동하게 하는 명작을 보고 싶은 것인데 허비한 시간보다 상실감은 더욱 컸다. 양적으로만 풍요함에서 빈곤하기 그지없는, 어디서 본 것 같은 하향평준화라는 슬픈 결론에 이르게 됐다.

영화 문학 음악 등에서 원작의 출처를 밝히면서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을 따라 하는 오마주(Homage)와는 분명히 다르다. 어디서 본 것 같음의 출처와 기원은 원작에 있다. 원래의 창작물, 예술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창의성과 독창성을 바탕으로 해 예술가의 영혼을 갈아 넣은 작품들이다. 우리는 이런 작품을 명작이라고 표현하며 반복해서 듣고, 또 가서 보고 다시 돌려 보기도 한다. 계속되는 감상에도 감동은 살아 있다. 원작의 힘은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간 청개구리 같은 예술가들에게서 유래한다.

하던 대로 하지 않겠다는 기존 형식과 유행을 따라 하지 않겠다는 청개구리 예술가의 강한 저항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움을 창작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물론 그 청개구리는 엄마에게 혼도 나고 아마도 다른 개구리들 사이에서 따돌림도 당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창작의 고통과 근원적인 고독이 예술가들에게 있지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주류에 저항해 왔다. 고독마저 감미롭다는 50년 된 광고 문구처럼 예술가들은 두려움이 없다. ‘유행에 뒤처질까, 사회에서 소외될까’라는 두려움 또한 예술가들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어디서 본 것 같다, 누구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감상의 평가를 가장 부끄럽게 생각한다. 표절과 위작 시비의 대상이 돼 거론되는 것을 예술가들은 극도로 혐오한다.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창의성의 극단에는 모든 전통을 파괴하며 저항하는 비주류적 문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문화를 상위와 하위로 구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비주류 문화, 서브컬처(Subculture)로 명명되는 하위문화가 가지는 강력한 힘은 주류에 대한 저항에 있다. 전체보다는 특정 소수에게만 공유되는 다양한 문화적 경향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다름의 감동을 주는 마니아 풍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때로는 거칠고, 질서 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감동으로 나를 당황하게 할 때도 있지만 비주류 문화의 강점을 발휘해 평준화가 해체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이미지들의 양적 팽창이 문화적 경향으로 분류된다면 이것 또한 일종의 주류적 흐름으로 예술가들에게 저항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3초 안에 성패가 갈린다는 찰나적 속도의 팽창도 예술가들의 저항으로 해체되기를 바란다. 인공지능까지 가세한 속도의 시대에 성공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예술가들이 가져가기를 바란다. 의도적인 반대로, 일부러 느리게, 창조적인 파괴로 감동의 결핍을 상쇄해 주기 바란다.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예술가들이 그리운 이유다.

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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