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드 언제 만들었더라?”…역대최다 장롱카드에 카드사 한숨만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6. 3. 1. 18:2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기성과 급급한 카드업계
휴면카드 비중 15%로 역대 최대
전체 신용카드 2.2% 늘어날때
발급하고 안쓰는 카드 9% 증가
플랫폼 의존도 높아져 비용 늘고
실제 사용은 줄어 수익성 악화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픽사베이]
신용카드 발급좌수가 매년 늘고 있지만, 장기간 사용하지 않아 휴면 상태로 전환된 카드가 늘면서 신용카드 7장 중 1장은 이른바 ‘장롱카드’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카드업계가 타사 고객을 서로 뺏고 뺏기는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휴면카드 수가 전체 신용카드 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서다. 실속은 줄고 고객 유치 비용만 늘어나는 비효율이 고착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1일 여신금융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발급된 전체 신용카드 대비 휴면카드 비중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1년까지만 해도 10% 이하였던 휴면카드 비중은 2022년 11.5%, 2023년 12.8%, 2024년 13.9%로 매년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휴면카드 비중이 14.9%까지 상승했다. 이는 여신금융협회가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높은 숫자다.

휴면카드 비중이 매년 확대되는 이유는 전체 신용카드보다 휴면카드가 약 4배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말 기준 전체 신용카드 발급 규모는 6.4%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휴면카드는 약 4배 수준인 24.0% 증가했다. 2023년엔 이 같은 간극이 다소 해소됐지만 2024년 다시 4배 차이로 확대됐다. 지난해 역시 전체 신용카드 증가율이 2.2%로 둔화했지만 휴면카드는 9.0% 늘어나며, 카드 발급 외형보다 ‘장롱카드’가 훨씬 빠른 속도로 누적되는 양상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업권 전반의 출혈경쟁 구조가 만들어낸 비효율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시장 파이가 제한된 상황에서, 카드사들이 단기적으로 고객을 뺏고 빼앗는 ‘제로섬 경쟁’이 반복되며 휴면카드도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A카드사가 제휴사 할인·캐시백 등 단기 프로모션으로 고객을 끌어오면, B카드를 쓰던 고객들은 기존에 쓰던 카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식이다. 또한 A사의 프로모션이 끝나면 C·D사의 신규 혜택을 보고 다시 옮겨가기도 한다.

신규 회원 유치 채널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변화한 점도 휴면카드 누적을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과거에는 카드모집인을 통한 대면 영업이 활발했지만, 팬데믹 이후 비대면 환경 확대로 네이버·토스 등 플랫폼 기업을 통한 카드 유치가 급증했다. 다만 오프라인 방식과 비교했을 때, 고객맞춤형 마케팅보단 공격적인 마케팅에 치중한 플랫폼 모집 방식이 장롱카드를 더 많이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이에 더해 최근 인기를 끄는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도 휴면카드 양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특정 브랜드와 제휴를 맺어 혜택을 주는 PLCC는 범용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 때문에 제한적인 목적의 소비가 끝나면 이용이 급감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휴면카드 누적은 카드사들의 비용 부담을 늘린다. 카드 발급 단계에서 이미 카드 제작·배송·마케팅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후 사용이 멈추면 해당 비용을 회수할 기회가 사라진다. 휴면 전환을 막기 위한 ‘재이용 유도’ 마케팅 비용까지 투입되면 비용 대비 효율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대형 플랫폼을 통한 발급이 늘어나면서 마케팅 비용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에 내는 마케팅 비용은 늘어나지만 지속적인 카드 사용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아, 결과적으로 비용 대비 효율이 계속 떨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런 방식의 경쟁은 업계 전체로 보면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에 가깝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의 업황 악화 국면에서 이 같은 비효율은 더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압박, 조달 비용 상승, 소비 둔화 등으로 수익성이 이미 압박받는 상황에서, 휴면카드 비중의 확대는 비용은 늘고 ‘수익을 만들지 못하는 회원 풀’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결국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중심 유치 경쟁은 단기 성과는 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멸로 가는 길에 가깝다”며 “플랫폼 채널을 통한 고객 유치 시 지급할 수 있는 인센티브나 수수료에 일정한 한도를 두는 식으로 당국이 나서 최소한의 가드레일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