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성장한 대만, 왜 출산율은 세계 꼴찌? 비밀은 ‘양극화’
“IT 업계만 호황”…낮은 임금, 집값 폭등, 높은 양육비라는 3중고
(시사저널=모종혁 중국 통신원)
2월13일 대만 주계총처(한국의 국가데이터처)가 기자회견을 했다. 주계총처는 "지난해 4분기 대만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2.65%, 작년 경제성장률은 8.68%"라고 발표했다. 올해 전망치도 제시했다. 주계총처는 "최근 대만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타결됐고 세계적인 인공지능(AI) 관련 제품의 폭발적 수요에 힘입어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면서 올해 대만 수출액은 7831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 대만 수출액 6408억 달러보다 22.2%나 증가한 수치다. 그러면서 "수출 성장세를 반영해 올해 성장률이 7.71%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1월 중화경제연구원을 비롯한 국책연구기관은 올해 성장률을 4%대로 전망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주계총처는 이를 7%대로 상향 조정했다. 이날은 대만이 2월14일부터 역대 최장의 9일 춘제 연휴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대만 정부로선 경제 호황을 선전하기 좋은 시점이었다.

대만 경제, 수출 호재에 올해도 7.7% 성장 전망
이 발표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지만, 대만 경제의 호황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한국과 비교하면 성과가 두드러진다. 작년 한국 성장률은 1.0%였다. 코로나 사태의 충격이 밀어닥쳤던 2020년 -0.7% 이후 가장 낮은 성적이다. 올해 성장률도 낙관적이지 못하다.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국제통화기금 등은 1.8~1.9%를 전망했다. 지난해 한국의 저성장에는 이유가 있었다.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이에 따른 탄핵 국면, 조기 대선 등 정치 불안이 이어졌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던 2016년 4분기 성장률은 0.8%, 2017년 1분기와 2분기는 각각 0.9%와 0.5%였다. 그나마 성장을 견인한 것은 수출이었다. 작년 수출액은 7097억 달러로 전년보다 3.8% 증가했다. 그러나 전년보다 31.8%나 증가한 대만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과다. 사실 대만도 경제 성장 공헌도에서 고정자산투자(2.72%)를 제외하면 민간소비(0.68%)와 정부소비(0.16%)는 낮았다. 대외무역이 6.66%의 공헌도로 성장을 끌어올렸다. 작년 대만의 1인당 GDP는 한국의 3만6107달러보다 많은 3만9477달러에 달했다.
1인당 GDP에서 대만이 한국을 추월한 것은 22년 만이다. 2003년 한국은 1만5211달러로, 1만441달러의 대만을 넘어섰다. 주계총처는 올해 대만의 1인당 GDP가 4만4181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2016년 3만 달러를 넘어선 이래 10년째 제자리걸음인 한국을 따돌린 것이다. 대만은 한국보다 뒤늦은 2021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대만이 성장을 구가한 배경에는 전형적인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 아래 반도체·전자전기·광학기기 등 IT 제품이 전체 수출의 52%를 차지하며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미국을 중심으로 한 AI와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에 따른 수요가 폭발하면서 대만이 가장 큰 수혜를 보았다. 작년 대만의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89.5%), 전자부품(25.8%), 전기제품(13.4%), 광학기기(10.2%) 등은 대폭 증가했다. 대미 수출은 전년보다 78% 급증한 1982억 달러였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요 무역흑자 국가를 대상으로 관세전쟁을 일으켰지만, 대만은 이를 극복하고 사상 최대인 1501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거뒀다. 전체 수출에서 미국 비중은 30.9%로, 중국과 홍콩을 합친 26.6%보다 높았다. 한국도 반도체 수출이 24.4% 증가했다. 하지만 대미 수출은 전년보다 3.8% 감소한 1229억 달러였고, 무역흑자도 495억 달러에 그쳤다.
경제 호황 아래 사는 대만인들의 실질 소득과 생활은 어떨까? 2월11일 주계총처가 발표한 작년 대만 제조업과 서비스업 근로자의 평균 월급은 전년보다 3.2% 증가한 5만643대만달러(약 232만원)였다. 한국 상용근로자의 평균 월급인 418만원보다 훨씬 낮다. 최저임금은 한국이 시급은 1만30원, 월급은 209만원이었지만, 대만은 시급이 190대만달러(약 8721원), 월급은 2만8590대만달러(약 130만원)였다.
2011년까지 구매력 평가 환율을 반영한 양국 근로자의 실질 임금 차이는 5% 안팎으로 크지 않았다. 2011년 대만이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에 준하는 양안 경제협력 기본협정(ECFA)을 맺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국민당이 집권했던 대만 정부는 중국 기업에 비해 뒤처지는 대만 기업의 제품 가격 경쟁력을 보존하기 위해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 그 결과 2024년 근로자 임금은 한국이 70.8% 올랐으나 대만은 54.4%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한국보다 낮은 대만 물가를 반영해도, 대만 근로자 임금은 한국보다 16.2% 낮게 됐다.
"AI 붐 꺼지면 대만 경제 가장 큰 타격 가능성"
학교를 졸업해 갓 회사에 입사한 초년생이 받는 월급 차이가 더 컸다. 작년 4월 대만 노동부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대만 상용근로자의 초임 평균 월급은 3만7000대만달러(약 170만원)였다. 이는 한국 상용근로자의 초임 평균 월급인 300만원보다 훨씬 낮았다. 게다가 18.7%에 달하는 대만 상용근로자는 최저임금에 불과한 월급을 받고 있다. 이런 현실로 인해 대만 젊은 층은 결혼과 출산 포기로 대응하고 있다. 대만의 결혼 건수는 2023년 12만5192쌍, 2024년 12만3061쌍, 2025년 10만4376쌍으로 감소했다.
신생아 수는 2023년 13만5571명, 2024년 13만4856명, 2025년 10만7812명으로 줄었다. 합계출산율은 2023년 0.88명, 2024년 0.86명, 2025년 0.72명으로 추정됐다. 2024년 출생아 수 23만8317명, 합계출산율 0.75명으로 반등한 한국과 대비된다. 한국은 작년에 출생아 수가 더 늘어 25만4500명이 됐다. 그렇게 대만은 합계출산율이 0.80명인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저출산 국가로 등극했다. 올해는 더 위험하다.
지난 1월 황젠페이 대만 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은 "올해 출생아 수는 보수적으로 잡아 8만8000여 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낮은 실질 임금, 폭등하는 집값, 높은 양육비 등으로 젊은 층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을 사려면 타이베이에서는 15년 이상 걸린다. 이는 13~14년 걸리는 서울보다 더 길다. 대만 도시의 적지 않은 주택과 아파트는 재개발을 하지 않아 허름하고 낡았다. 따라서 대만 젊은 층은 자국을 '귀신섬'이라고 부른다.
이에 "22년 만에 1인당 GDP에서 한국을 추월했다"고 환호하는 정부 및 언론과 달리 대만인들은 냉소하고 있다. "소수 IT 업계 종사자들을 빼고 누가 4만 달러를 버느냐"는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는 한국에 대해 가지는 우월의식도 비판했다. IT 산업에 치우친 대만과 달리 한국은 반도체·이차전지·자동차·조선·석유화학·철강·방산·바이오헬스·화장품·게임·엔터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다양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AI 붐이 꺼질 경우 대만 경제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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