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경력 양심 당구' 산체스가 웰컴저축은행에 감사해한 이유[인터뷰]
[용산=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순간의 승리보다는 양심을 택하며 깊은 울림을 줬던 프로당구선수 다니엘 산체스(51·스페인)가 어느덧 시즌 마지막 대회를 앞두고 있다.
'3쿠션 4대천왕'으로 유럽을 호령하던 그가 프로당구 PBA 입성한 지도 어언 3시즌째. 팀리그 웰컴저축은행 웰컴피닉스에 입단한 올 시즌에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산체스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웰컴금융그룹 본사에서 만났다.

지난 2023-2024시즌 PBA에 도전장을 던진 산체스는 세 시즌만에 '역대급'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개막전 준우승에 이어 3차 투어 4강에 올랐고, 지난 6차 투어부터는 무려 4연속 결승에 올랐다. 9개 투어에서 4강에 6번, 결승전에 5번 올라 2회 우승컵(7차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8차 하림 챔피언십)을 들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프로당구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한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고, 행복하다. 월드챔피언십까지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산체스는 얼마 전 신사적인 플레이로도 칭송받았다. 지난달 2일 열린 응우옌꾸옥응우옌과의 '웰컴저축은행 PBA 챔피언십' 결승전 마지막 7세트에서 공격을 시도하기 전에 심판에게 공을 건드렸다고 먼저 인정했다.
비록 산체스는 결승에서 패해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승리보다 양심을 택하는 자진 파울 선언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구 팬은 물론 동료 선수들에게도 큰 울림을 전했다.
이에 산체스의 팀리그 소속 팀인 웰컴저축은행은 산체스의 스포츠맨십을 기리기 위해 대회 우승 트로피와 동일한 형태에 실제 청자색을 입힌 'Great Sportsmanship' 특별상을 제작해 전달했다.
손종주 웰컴금융그룹 회장은 "소속 선수로서 보여준 고결한 스포츠 정신이 모든 선수들에게 감동과 교감을 안겼고, 구단에도 큰 자부심을 안겨줬다"며 특별한 트로피 전달 배경을 밝혔다.
산체스에게 이 트로피는 우승보다 값진 것이었다.
"당구를 처음 배울 때부터 페어플레이를 하라고 배웠고, 그저 실천했을 뿐이다. 많은 분들이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결국 내가 실수한 거다.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한 실수였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이 트로피는 우승 트로피보다 더 값지고 특별한 상이다. 웰컴저축은행이 이런 팀이기에 더욱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다음 시즌에는 웰컴저축은행 주최 대회 우승 트로피를 반드시 들어올리겠다. 새로 지은 연습실 한가운데에 이 상을 전시할 예정이다(웃음)."

산체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웰컴저축은행으로 팀리그 팀을 옮겼다. 편안하면서도 승부에 진심인 팀 분위기는 선수의 개인 성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선 친구인 (세미) 사이그너와 오래 알고 지낸 용현지가 있어 마음이 편했다. 사이그너가 나이가 더 많지만 나를 많이 존중해주고 구단에 나를 주장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나 역시 존중의 의미로 그를 우스타(장인, 마스터를 의미하는 튀르키예어)라고 부른다. 다른 동료들은 물론 구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잘 대해줬다. 첫 번째 투어에서부터 결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에는 팀의 영향이 크다."
"당구 인생에서 최고의 시즌은 아니지만, 확실히 PBA 입성 후 가장 좋은 흐름이다. 특별히 준비를 한 건 없지만, 좋은 구단과 동료들을 만나 마음이 더 편해져서 당구에 더 열중할 수 있었다. 팀에 외국인 선수가 둘이고, 영어를 할 수 있는 한국 선수와 아닌 한국 선수가 있다. 하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선수가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정말 잘해줘서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목청이 가장 좋은 김예은의 선창에 맞춰 경기 전에 팀 구호를 외치는데, 이 역시 팀 분위기에 큰 도움이 된다. 비록 올 시즌 팀리그에서는 우승하지 못했지만, 다음 시즌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산체스가 꼽는 시즌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지난해 11월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시즌 첫 승이자 PBA 통산 2승을 거둔 게 가장 좋았다. PBA 입성 후 한국 무대에서 거둔 첫 승(통산 첫 우승은 베트남 하노이)이기 때문이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PBA 전용 경기장 밖에서 대회를 많이 열어달라고 했는데, 바로 이어진 하림 대회에서 바로 전용 경기장 우승을 달성해 더 좋았다(웃음)."

35년 동안 당구를 쳐 온 산체스지만, 여전히 당구가 재밌다고 한다. 이제는 '삶'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소중한 것이라고.
"당구를 처음 접했을 때는 9살이었고, 16살에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1년에 삼풍백화점에서 당구 월드컵 경기를 치른 적도 있다. 당시 20세 이하는 해당 대회에 참가할 수 없어서 특별 비자를 받아 출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구장에는 출입할 수가 없어 연습을 못했다."
"우승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궁극의 목표는 아니다. 계속해서 더 나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다. 당구는 공 배치가 정해진 상태에서 치는 초구를 제외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스포츠다. 그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 내가 항상 완벽하게 치고 이기면 무슨 재미가 있나. 잘할 때는 '산체스'로 있다가도, 못할 때는 '죽은체스'가 되는 거다(웃음). 실력자도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못하면 질 수 있고, 그렇기에 더 노력해야 하는 점을 즐기고 있다. 당구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삶' 그 자체다. 9살에 당구를 처음 해 본 이후로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당구와 연관돼있었다. 또한 당구 덕에 한국, 일본, 미국, 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출신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산체스는 오는 6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시즌 최종전 'PBA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출사표를 던지며 소속 팀인 웰컴저축은행에 감사를 표했다.
"웰컴저축은행과는 이제 한 시즌을 함께했을 뿐이지만, 나의 PBA 커리어에서 매우 중요한 팀이다. 팀 구성원들과 편하게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기량을 펼칠 수 있었다. 남은 월드챔피언십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팀에 기쁨을 안기고 싶다."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holywater@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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