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자체가 위헌이다 [아침햇발]

이재성 기자 2026. 3. 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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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2월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성 | 논설위원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사퇴는 현재 사법부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국민 여론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단면을 잘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정작 물러나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모두가 알고 있는데, 조희대 대법원장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가게무샤’를 ‘대리 사퇴’하게 했다. 1호 가게무샤(천대엽 전 법원행정처장)를 사실상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내정한 데 이어, 국민주권 박탈 시도라는 정치적 승부수의 행동대장(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주심)이었던 2호(박영재)가 사퇴했으니, 이제 누구를 3호로 세워 방패막이로 쓸 셈인가.

조 원장은 마치 진지전을 벌이듯 사법부라는 요새를 지키며 여론을 통해 반전을 노리고 있다. 본인의 ‘출근길 문답’이나 잦은 법원장회의, 박 처장 보직 사퇴(대법관직은 사퇴하지 않았다!) 카드는 모두 여론을 향해 흔드는 절박한 구조 요청 깃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아뿔싸, 여론이 요지부동이다. 주요 언론의 지원 사격에도 오히려 비아냥과 힐난이 넘쳐난다. “모기가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라는 노회찬의 촌철살인을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둑 잡는 법 만드는데 도둑과 상의하냐?”라는 좀 더 직설적인 화법이 유행한다. 무리한 입법 강행이라는 비판에도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 3법’ 국회 의결을 밀어붙일 수 있는 근거가 여기 있다. 1년이 다 되어가는 조 원장의 진지전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듯 보인다. 조 원장은 지금 사냥꾼에게 쫓겨 머리만 처박고 있는 꿩 같은 신세다.

법원은 ‘냉각 장치’가 고장 난 컴퓨터처럼 자정 기능을 상실했다. 양심적인 판사들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는 변방의 북소리로 공중에 흩어졌고,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눈치를 보며 침묵을 선택했다. ‘사법 불신’의 뿌리이자 원인 제공자인 조 원장은 주변을 둘러싼 법원 고위 관료들의 ‘지록위마’에 취해, 본인이 ‘벌거벗은 제왕’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론은 매우 직관적이어서 수시로 이성을 잃기도 하지만, 어떤 석학보다도 통렬하게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 조 원장이 ‘3법’의 위헌성을 제기하면, ‘당신이 대법원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고 여론은 답한다. ‘헌법 제1조’를 침해한 대법원장의 존재야말로 상시적 위헌 상태라고 보는 것이다.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가 갈 것”이라고 조 원장이 3법을 비판하면, ‘국민이 아니라 너희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겠지’라고 여론은 조롱한다.

조 원장을 비롯한 법원 고위 관료들의 주장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국민 팔이’다. 당신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국민을 걱정했나. 국민을 그렇게 걱정해서 국회를 침탈한 내란범을 풀어줬나. 전과자를 대통령으로 뽑으려 하는 무지몽매한 국민이 안타까워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속전속결로 제1야당 대선 후보를 날리려 했나. 사퇴와 해명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깡그리 무시하지 않았나. 당신들은 들켜버렸다. 입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떠들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국민을 업신여기는 귀족집단이라는 것을.

지금 국민이 어떤 국민인가. 무려 검찰총장 출신 현직 대통령의 내란을 겪은 국민 아닌가. 미래의 내란범이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했던 무수한 약속들, 국민과 법을 섬기겠다던 수많은 다짐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거짓이었는지 깨달은 국민 아닌가. 이른바 ‘윤석열 효과’는 선출되지 않은 엘리트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을 ‘근거 있는 불신’으로 바꿔놓았다. 어떤 식으로든 국민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가 현실적 과제로 떠올랐다. 방법론적으로 투박한 측면이 있지만, 민주당의 3법 강행에 역풍이 크지 않은 이유는 ‘국민의 명령에 따르는 중’이라는 전반적인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헤겔이 말한 ‘이성의 간지’가 한국 사회만큼 정확하게 들어맞는 사례가 또 있을까. 칼을 멋대로 휘두르다 마침내 제 목을 베어버린 윤석열과 검찰에 이어, 내란 사태 와중에 개혁의 과녁으로 등장한 사법부 역시 누가 시켜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자신들의 권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성찰하지 않고, 주어진 권한이니 마음껏 행사해도 된다는 집단적 만용이 오늘의 사태를 부른 것이다. 조희대 원장은 기만적인 ‘국민 팔이’와 자기모순적인 ‘위헌 타령’ 그만하고 당장 사퇴하라. 당신으로 인해 사법부는 이미 충분히 망가졌다. 그런데도 철면피처럼 계속 버틴다면, 당신이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헌법재판관들이 내려다보는 피청구인 좌석에 앉아 탄핵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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