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입니까?”…구순 김동호 감독의 질문

김은형 기자 2026. 3. 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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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다큐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연출
김동호 감독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영화인들의 영화인’ ‘영화인들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지난 30년 동안 한국 영화인들의 든든한 ‘뒷배’가 돼온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1937년생으로 2023년 처음 카메라를 직접 쥔 그는 전국 30여개의 작은 극장들과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예술영화관을 누비고, 박찬욱, 봉준호, 정지영, 이창동 등 감독들을 만나 영화관은 어떤 의미인지, 영화의 미래는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구순에 완성한 첫 장편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가 지난 19일 개봉했다. 김 감독을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생각했던 주제는 다른 거였어요. 영화진흥공사 사장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카자흐스탄에 2022년 갔을 때 함께 간 인류학자로부터 고선지 장군의 서역 원정을 따라갔던 고구려 유민들이 정착했다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근처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매료됐죠. 그걸 다큐멘터리로 찍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카메라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진행이 쉽지 않았어요. 마침 코로나로 극장이 어려워지면서 카메라를 들고 극장들을 찾아다녀야겠다고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다큐멘터리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김 감독은 1982년 칸국제영화제 기간에 빔 벤더스가 호텔 마르티네즈 666호실을 빌려 장뤼크 고다르,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스티븐 스필버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동료 감독들에게 영화의 미래에 대해 질문해 완성한 다큐멘터리 ‘룸 666’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영화가 김 감독의 첫 연출작은 아니다. 그는 2010년 15년간 이끌던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그만둔 뒤 단편 극영화 ‘주리’를 만들었다. 전세계 40여개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으며 누구보다 그 속내를 잘 알고 있는 영화제 심사 과정과 심사위원들의 격렬하고 때로 유치하기도 한 논쟁을 코믹하게 그린 24분짜리 영화는 2013년 개봉해 호평받았다.

‘미스터김…’은 우선 100분짜리 영화를 채우는 출연진의 면면에 먼저 눈이 휘둥그레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다르덴 형제, 뤼크 베송 등 세계적인 감독들과 한국의 주요 감독이 100명 가까이 등장해 답한다. 영화관에 대한 그들의 견해 못지않게 흥미로운 건 그들의 표정이다. 노감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과 말투는, 그동안 김 감독이 영화계에서 쌓아온 헌신과 노력을 미뤄 짐작하게 한다.

다큐멘터리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영화관과는 담쌓고 살던 공무원이었다. “문화공보부에서 일하며 1980년대 영화법 개정이나 정책 개선을 해왔지만 영화를 본 적은 별로 없었어요. 그러고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이 되니까 정지영 감독 등 당시 젊은 감독들이 성명을 내고 반대를 했어요. 그때 내가 영화인이 돼야겠구나 마음먹고 남양주종합촬영소 설립과 한국 영화 국외 진출에 발 벗고 나섰죠.”

1988년 배우 신혜수가 ‘아다다’로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1989년 배우 고 강수연이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기까지 한국 영화 불모지에서 그가 뛰어다닌 이야기들은 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두 작품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과는 이때부터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졌고, 2000년 ‘춘향뎐’의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2002년 ‘취화선’의 칸 감독상 수상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뒤에는 사비까지 들여 출장 다니며 삼고초려해 칸, 베네치아,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2000년 당시 불과 5회밖에 안 된 부산영화제에 모이게 한 것도 영화제가 도약하는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매일 밤 해운대 포장마차촌을 돌면서 하루 소주 150잔은 받았던 것 같아요. 바닷가와 휴양지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많지만 세계 어느 영화제를 가도 그렇게 소탈하게 밤새도록 어울릴 수 있는 영화제는 없으니까 외국 영화인들이 반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술친구 죽마고우 다섯명 가운데 한명인 대만의 허우샤오셴 감독이 이번 영화를 찍을 무렵 치매로 투병한 탓에 담지 못한 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큐멘터리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김 감독에게는 국제영화제만큼이나 중요한 영화축제가 생겼다. 경기 광주 그의 자택 거실에서 전동 스크린을 내리고 평범한 이웃들과 영화를 보는 동네 상영회다. 이두용, 배창호, 이장호, 정지영, 이창동 등 그와 각별한 감독들이 이 작은 축제를 찾아와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을 탔을 때 동네 사람들에게 한국 영화에 대해 좀 더 알려드리고 싶어 세계 3대 영화제 첫 한국 수상작(베를린 은곰상)인 ‘마부’(1961)를 함께 본 게 시작이었어요. 그다음 달에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함께 보고, 김 감독의 장남 동원씨를 초대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죠. 지금은 힘에 부쳐 석달에 한번씩 하고 있는데, 지난달에는 윤제균 감독이 와서 ‘국제시장’ 이야기를 재밌게 나눴죠.”

인터뷰 말미, 2년 넘게 100여명의 영화인을 만나 “당신에게 영화관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김 감독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영화라는 건 꿈이라고 생각해요. 꿈에 나비가 되어 정원을 날아다니던 장자가 깨어나서 얻은 깨달음은 극장과 현실의 관계와도 닿아 있어서 영화 ‘주리’를 만들 때 참고하기도 했죠. 영화관은 우리에게 꿈을 실현시켜주는 공간이고, 앞으로도 그 의미는 바뀌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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