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게임”…티노 세갈이 관객에게 건네는 ‘경험’

김현경 2026. 3. 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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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서 국내 첫 개인전
‘키스’ 등 8개 ‘구성된 상황’ 전시
티노 세갈 작가가 한국 첫 개인전을 앞두고 2월 25일 리움미술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현경 기자]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디스 이즈 소 컨템퍼러리(This is so contemporary).”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는 길,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미술관 직원으로 보이는 3명의 여성이 반복적인 구호를 노래하며 춤을 춘다.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라는 구호처럼 현대 미술을 비꼬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장 현재적인 미술의 한 순간이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과 티노 세갈의 국내 첫 개인전 ‘티노 세갈’이 오는 3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지난 25년간 비물질적 실천을 통해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해 온 작가의 8개 작품이 전시장과 로비, 정원 등을 무대로 펼쳐진다.

티노 세갈은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화두로 삼아 예술을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서 분리해 비물질적 가치로 치환하려는 시도를 지속해 왔다.

정치경제학과 무용이라는 서로 다른 두 학문을 전공한 그는 인간의 신체, 언어, 사회적 상호작용만으로 구성된 자신의 작품을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 명명한다. 작품은 ‘해석자(Interpreters)’들에 의해 실현되며 관람객이 직접 마주하고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티노 세갈은 일체의 기록을 거부한다. 작품 사진이나 도록, 레이블, 영상 등이 일절 제공되지 않고, 오로지 관객의 기억만으로 작품이 남게 된다.

전시를 앞두고 2월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물질 없이도 조각, 설치 작품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런 작품을 구성하게 됐다”며 “저는 실제 경험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것이 제가 작업을 통해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키스(Kiss)’(2002)다. 오귀스트 로댕의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두 해석자가 서로를 껴안은 채 천천히 동작을 이어 나가며 미술사 속 다양한 키스 장면들을 재현한다. 2팀으로 이뤄진 해석자들은 전시가 이뤄지는 하루 8시간 중 4시간씩 교대로 작품을 선보인다. 관람객은 전시장을 찾은 시간과 해석자 따라 다른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작품은 고전적인 청동상과 살아있는 조각인 인간 실재의 생명력 간의 대비를 극대화한다. 비즈 커튼으로 구분된 공간 속에서 관객은 석자들을 마주하며 ‘구성된 상황’ 속에 빠져든다.

전시장 로비에서 펼쳐지는 신작 ‘무제’(2026)는 7명의 해석자들이 관람객 사이에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으면서 서서히 움직인다. 해석자들끼리 대화하고 교감하다가 관람객에게 슬쩍 다가가 사적인 이야기를 건넨 뒤 다시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작가는 “예술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일종의 ‘게임’”이라며 “작품과 관람객이 관계를 맺고 그 사이에서 뭔가 떠오르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 작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작업”이라며 “극장 무대에서 열리는 무용 공연과 달리 내 작품은 관람객이 전시 안으로 들어와 함께한다”고 부연했다.

M2 1층에서는 작가의 초기작 중 하나인 ‘무언가 당신 코 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Instead of allowing something to rise up to your face dancing bruce and dan and other things)’(2000)이 리움 소장 조각들과 함께 전시된다. 권오상의 사실적인 작품 옆에 놓인 조각 같은 인체는 전시장 전반에 전개되는 조각군의 시작점이 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안토니 곰리의 조각, 강서경의 의인화된 작품, 솔 르윗의 미니멀한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티노 세갈은 리움 소장품 중 조각 26점을 엄선해 구상에서 추상으로 서서히 변화하는 흐름을 구성했다.

티노 세갈 전시 포스터. [디자인 김영삼. 리움미술관 제공]

물질을 넘어서는 예술 철학이 형성된 배경은 작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어린 시절 독일의 산업화된 지역에서 자랐다. 매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땅에서 자원을 채굴해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지속 가능한지 의구심을 갖게 됐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가치 체계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졌다. 물질을 소비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는 예술을 고민하다 인간의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했고, 이후 무용을 공부해 작업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경제에서도 유형의 제조업보다 무형 서비스업의 규모가 더 커지는 등 우리는 이미 사물 중심에서 비물질의 관계 중심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며 “예술가는 자기 시대를 그에 맞는 방식으로 기록하는 사람이며 나는 나만의 비물질적 방법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작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 같은 철학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미술관과 전시 계약을 할 때도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공증인 앞에서 구두로 계약을 맺는다. 소장 계약 시 미술관이나 개인은 해당 작품을 전시할 권리를 갖고, 작가는 구매자나 해석자에게 작품을 구현하는 방법을 직접 구두로 알려준다.

작품 ‘굿즈’도 물질이 없다. 관객이 굿즈를 구매하면 판매자는 돈을 받고 특정 손동작을 알려준다.

작가는 “회화와 조각도 오래된 예술이지만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나 무용 등 형태가 없는 예술도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다”며 “아이에게 야구를 가르칠 때 책이나 영상이 아닌 직접 몸으로 알려주듯 몸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은 지금도 유효한 수단”이라고 했다.

일상에서도 자원의 낭비를 피하기 위해 비행기를 가급적 타지 않아 한국에도 2008년 이후 처음 방문한 작가는 “한국은 지금 역사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순간, 상당히 좋은 순간을 겪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 관람객들이 동시대 미술에 매우 개방적이라고 알고 있다. 전시를 함께 즐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개최된다. 끊임없는 디지털 기록을 추구하는 현 시대에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순간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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