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식물의 시선으로 다시 쓴 인간의 역사

곽은영 기자 2026. 3. 1. 10: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욕망하는 식물. (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황소자리)

『욕망하는 식물』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믿어온 전제를 뒤집는다. 인간이 자연을 길들였다는 믿음 대신 식물이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자신을 번성시켜왔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사과꽃 사이를 오가는 꿀벌을 보며 씨감자를 심던 어느 날, 저자 마이클 폴란은 깨닫는다. 꿀벌은 꿀을 얻는 대신 꽃가루를 퍼뜨리고 인간은 식량을 얻는 대신 씨를 심어 유전자를 확산시킨다. 그렇다면 인간 역시 식물의 번식 전략에 동원된 존재 아닐까? 이 질문은 이 책의 출발점이 된다. 

폴란은 말한다. "식물은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자기 종을 퍼뜨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동물을 유혹해 이용하는 것임을 알았다."

꿀벌이든 인간이든 상관없이 식물은 동물의 욕망을 자극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린다. 그래서 사과는 더 달콤해졌고 감자는 더 풍성한 덩이줄기를 키워냈다. 인간의 욕망은 식물 진화의 동력이 되었다.

인간 중심의 시각을 내려놓고 보면, 농경과 재배조차 자연의 거대한 흐름 속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찰이다.

사과는 인간의 '달콤함에 대한 욕망'을 매개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 개척 시대, 존 채프먼은 사과 씨를 들고 서부를 누볐다. 폴란은 이를 두 생명체의 협력으로 바라본다.

"그는 사과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만큼 자기 역시 사과를 위해 일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인간과 사과는 서로를 이용하며 번성했다는 해석이다. 

사과는 씨를 보호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갖추고 있다. 덜 익은 열매는 녹색을 띠고 맛이 없고 씨앗은 쉽게 소화되지 않도록 설계됐다. 식물은 결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17세기 네덜란드를 뒤흔든 튤립 열풍 역시 인간의 미적 욕망과 맞닿아 있다. 폴란은 그 광풍의 출발점이 '아름다움'이었다고 말한다.

회색빛 사회에서 강렬한 색을 피워낸 튤립은 인간의 감각을 사로잡았고 결국 경제와 문화까지 움직였다. 식물은 인간의 탐미 본능을 매개로 번성의 기회를 얻었다.

대마초는 인간의 의식에 작용하는 화학물질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공진화를 이뤄냈다. 박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잡종을 거듭해온 생존 전략은 놀라울 만큼 집요하다.

감자는 세계인의 주식이 되었고 현대에는 유전자조작 작물의 상징이 되었다. 폴란은 GMO 감자를 재배하며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를 체험적으로 성찰한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한다고 믿는 순간, 또 다른 위험이 시작된다는 경고다.

『욕망하는 식물』은 식물학과 인류학, 철학과 진화론을 넘나들며 문명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묻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우리가 식물을 재배하는 동안 식물 역시 우리의 욕망을 설계하고 있었다고.

결국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자연의 주인인가, 아니면 공진화의 한 구성원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