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책도 없이 학교 가는 대학생들…무슨 일인가 했더니

“무거운 책, 이제 들고 다니지 말고 스캔해서 패드에 넣어 다녀요!”
한 스캔 업체 광고 문구처럼 요새 대학생은 책을 사자마자 북스캔 업체로 가져가요. 책을 자른 뒤 고속 스캐너에 넣으면 끝이에요. 몇 분 만에 1000쪽이 넘는 전공 서적도 가벼운 PDF 파일로 바뀌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핵심은 ‘OCR(광학 문자 인식)’ 기능이에요. 책 내용을 그림이 아닌 텍스트로 인식하게 만드는 기술인데 이게 있으면 두꺼운 책 속에서도 모르는 단어를 1초 만에 찾을 수 있어요.
변화 중심에는 효율을 중요히 여기는 대학생들이 있어요. 대학 근처 카페에서 만난 A씨는 “교수님의 빠른 강의 속도를 따라가려면 무거운 책보다 검색(Ctrl+F)이 되는 PDF 파일이 훨씬 좋다”고 말했어요. A씨는 “무거운 전공책 여러 권을 태블릿PC 하나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이 크다”며 효율성과 휴대성이 최대 장점이라고 강조했어요. 6000원이면 무거운 가방에서 벗어나 공부 효율까지 챙길 수 있는 ‘디지털 서재’ 시대가 열린 셈입니다.
데이터도 이런 변화를 보여줘요. 한 대형 서점 자료를 보면 대학 교재와 수험서 전자책 매출은 최근 2년 동안 매년 50% 넘게 껑충 뛰었어요. 공부뿐만 아니라 문화생활로도 퍼지고 있어요. 웹툰이나 웹소설을 통째로 사는 ‘디깅 소비’가 늘고 있죠. 유명 웹툰 회사 실적에도 이런 유행이 잘 드러나요. 2022년만 해도 8억5000만달러 수준이던 유료 콘텐츠 매출이 2024년에는 10억8000만달러를 훌쩍 넘겼죠. 불과 2년 만에 규모가 27%나 커진 셈이에요.
평소 웹툰을 즐겨 본다는 대학생 B씨는 “가격 차이가 두 배 넘게 나지 않는다면 무조건 ‘소장’을 고른다”며 “재밌어서 또 볼 작품에는 아끼지 않는다”고 했어요. 단순 감상을 넘어 ‘내 것’으로 만들려는 마음이 디지털 시장을 키우고 있는 셈이죠. 또 다른 장점은 나만의 비밀 서재라는 점이에요. 책장이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들어오면서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취향을 모을 수 있게 됐죠. 무엇보다 디지털 파일은 영원하다는 믿음도 강해요. 웹툰 독자 C씨는 “계정 아이디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내 서재는 안전하다”며 “영원히 내 것으로 남는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강조했어요.
하지만 최근 중소 웹툰 플랫폼 A사가 갑자기 서비스를 끝내는 일이 있었어요. 서비스 종료 후 기존 소장권은 플랫폼과 함께 사라져 이용자의 공분을 샀죠. 도대체 무슨 일 일까요?

우리는 왜 소장권이 영원하다고 믿을까요?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슈와 논점 제2334호’에서 “기업이 상품을 팔 때 쓰는 ‘소장’이라는 단어는 소비자가 콘텐츠를 영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했어요. 법적인 문제도 있어요. 국회입법조사처는 “민법상 물건은 유체물이어야 소유권이 인정된다”며 “디지털 콘텐츠는 물건이 아니므로 소유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어요. 유체물이란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대상을 말해요. 이 때문에 디지털 소장권은 플랫폼에 접속해 화면을 띄울 수 있는 권리인 ‘라이선스’에 불과한 거죠.
소유권 문제는 과거 전자책 시장부터 이어졌어요. 만화가협회의 ‘2025 열린 만화포럼 대담집’에서 이재민 만화문화연구소장은 예전에 전자책도 ‘99년 대여’ 같은 방식을 쓰면서 문제가 됐다며 “웹툰도 유료 판매를 시작하면서 전자책 시장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고 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직접 파일을 다운로드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는 이 방법도 정답이 아니라고 말해요. 웹툰을 함부로 복사해서 퍼뜨리는 행동을 막기 위해 디지털 자물쇠 기술인 ’DRM‘을 걸어두거든요. 이 자물쇠를 열고 만화를 보려면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계속 인증을 해줘야 해요. 이재민 소장은 좌담회에서 DRM 방식을 쓰면 플랫폼이 사라질 때 인증이 안 돼서 작품을 볼 수 없다고 설명했어요.
대기업이 운영하는 플랫폼은 안전할까요? 플랫폼에 가입할 때 동의하는 이용약관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요. 네이버 웹툰 이용약관 제24조를 보면 유료 서비스 사용 기간은 따로 표시가 없는 한 거래일로부터 1년이라고 적혀 있어요. 서비스 종료 환급 기준도 1년을 기준으로 이루어지죠.
만약 플랫폼이 문을 닫더라도 서재를 다른 플랫폼에 안전하게 옮겨준다면 독자는 구매한 작품을 계속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대형 플랫폼 이용 약관 중에 서비스 종료에 관한 이관 조항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김성주 변호사는 이번 A사 사건을 두고 “해지 통보만 하고 손을 놔버린 셈”이라며 “서비스 종료 시에 그 작품을 좋아했고 소장하고 싶었던 독자들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어요.
해외에서는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고 있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5년부터 디지털 상품에 진짜 소유권이 없으면 ‘구매(Buy)’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규제하는 법안인 ‘AB 2426’을 도입했어요. 기업은 디지털 소장권처럼 소유권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 라이선스 획득처럼 솔직한 이름을 붙여야 하죠.
무거운 종이책 대신 태블릿PC 하나에 나만의 도서관을 꽉 채운 요즘 대학생의 효율과 취향을 모두 잡은 디지털 서재는 이제 캠퍼스에서 새로운 상식이 됐어요. 하지만 우리가 매일 즐겨보는 웹툰의 편리함 뒤에는 약관의 그림자가 숨어 있어요. 여러분의 디지털 서재 주인은 과연 여러분인가요, 플랫폼인가요? 김덕식 기자. 방예별 인턴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속보] “이란, 카타르·쿠웨이트·UAE·바레인 미군기지 공습” - 매일경제
- [속보] 트럼프 “미국, 조금전 이란 내 중대전투 시작”<로이터> - 매일경제
- “월요일이 두렵다” 美 패닉셀 벌어지나 ...이란 공습에 요동 - 매일경제
- [속보] 트럼프, 이란 하메네이 사망 발표…“전세계 위한 정의” - 매일경제
- 미국의 이란 공격…글로벌 시장 충격에 ‘코스피’ 변동성도 커지나 - 매일경제
- 미국 이란 공습에 NSC 회의 소집…청와대 “우리 국민 안전 점검” - 매일경제
- [속보] 트럼프 “하메네이 사망…정밀폭격 지속될 것” - 매일경제
- 이재명 대통령 분당아파트, 29억 내놓자 매수 문의 쏟아져 - 매일경제
-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에 임명…北, 총쏘는 주애 단독사진 공개 - 매일경제
- “WBC 준비됐네!” 김혜성, 대표팀 합류전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 작렬! [MK현장]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