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도 삶의 일부다…괜찮아, 지나간다

엘리트 운동선수들이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주요 대회에서 신기록을 달성하고 메달을 따고 큰 성취감을 맛보고 나면 한동안 우울감을 경험한다.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담금질하며 원하는 목표에 달성한 만큼 상대적으로 깊은 무기력감에 빠진다. 환희가 큰 만큼 이후 찾아오는 상실감과 허탈감도 클 수밖에 없다.
어떤 목표를 위해서 박차를 가해 도달하고 나면 한동안은 몸도 마음도 무겁다. 새로 시작하고 도전하는 것이 귀찮을 수 있다. 당연한 순리다. 에너지를 쓰고 나면 우리 몸은 다시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 에너지를 절전모드로 변환한다. 우울감 무기력감은 삶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모든 일에서 마찬가지이다.
에너지 회복 없이 또 소모하면 ‘방전’
“선생님, 제가 작년 한 해 너무 힘들었어요.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진료받으면서 그나마 버텼거든요. 더는 안될 것 같아서 이번에 보직을 내려놓기로 했어요. 이게 맞는 결정인지 모르겠는데, 그걸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력조차 없네요.”
“진우님, ‘나는 무엇이 어떻게 힘들다’고 느끼고 있나요?”
“상사의 지시를 듣고 업무를 분배하고, 그 과정에서 의견을 조율하면서 탈 없이 진행해야 하는데, 부조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자꾸 반복되어요.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에너지도 없고 저 스스로 참고 진행할 수 있는 인내심도 없네요.”
“잠은 잘 주무시는지요?몸이 아픈 데는 없으세요?”
“선생님, 그런데 제가 이게 심리적으로 지친 건지, 업무가 힘든 건지, 체력이 달리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보직을 내려놓는 결정이 계획했던 게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그만두기로 한 것이라, ‘나 이제 망한 것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절정기 이후엔 쇠퇴기
마라톤 완주 뒤엔 ‘포스트 레이스 블루스’
대회 이후 상당 기간은 무기력하고 신체 컨디션과 기분이 평상시보다 다운되는 데 이를 ‘포스트 레이스 블루스(post race blues)’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이해해 보자면 도파민 상승으로 인한 희열을 맛본 이후 상대적인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장시간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 근육의 섬유가 뭉쳐 있고 젖산 등 피로 물질이 쌓여 실제로 몸이 무겁기도 하다.
그러나 희열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이 피로와 무기력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회복되고 옅어진다. 그런데 이 기간이 유독 괴롭고 힘들다. 때로는 대회 후유증이 겁나서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게 꺼려지고 피하고 싶다.
내 마음, 생각, 느낌들을 인지하기
그러려면, 나의 현재 상태를 인지하고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현재는 과거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지고, 이것이 미래를 결정한다. 하루 중 시간을 내어 눈을 지그시 감고, 배꼽 쪽을 응시하며,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어보자. 숨을 들이쉴 때 배가 볼록 나오는 느낌을 느끼고, 숨을 내쉴 때 배가 들어가는 느낌을 느껴본다. 하루 중 있었던 가슴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떠올려본다. 이것이 마음이다. 마음의 생각과 느낌들을 느껴보자.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이런 느낌이 일어나는구나.’ ‘이런 감정이 드는구나.’
※이 글의 상담 사례로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은?
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는 세계 6대 메이저 베를린·보스턴·도쿄·시카고·런던·뉴욕 마라톤을 포함해 50여 차례 국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2024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7분30초다. 현재 삼성서초사옥 마음건강클리닉에서 사내 임직원을 진료하고 있으며 대한 육상연맹 이사를 맡고 있다.
마음이 속상하고 힘들 때,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 마음을 보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답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데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는 마라톤을 하면서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성찰하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스스로 내면을 풍요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새벽마다 달리며 지친 이들의 마음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있다. 20년간 달리기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깨달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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