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은 유죄, 계엄은 존중?…지귀연이 연 또 다른 ‘계엄의 문’

이혜리 기자 2026. 3. 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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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433일만의 내란 사건 결론…무기징역 선고했지만 내용은 논란
“자의적 계엄 인정해 내란 꿈나무들에게 길 열어준 판결” 비판 확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사건 재판 법정의 피고인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이준헌 기자

[주간경향]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가 지난 2월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가 12·3 비상계엄의 헌법 위반을 선언하고 대통령직 파면이라는 정치적 책임을 결정했다면, 이번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형사법적 측면에서 12·3 계엄이 내란 범죄임을 확인하고 형벌로 단죄한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내란죄의 본질을 ‘주권 침해’로 규정하면서, ‘대통령도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면 처벌될 수 있다’는 취지를 판결에 담았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피고인 윤석열의 내란 행위는 헌법이 상정한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국회를 포함한 국가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것으로 민주주의 핵심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했다”며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한 내란 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여러 한계를 함께 담고 있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헌법에서 정한 계엄의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어겼다고 인정했지만, 이를 형법상의 내란죄로 처벌하려면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고 했다. 형사재판의 까다로운 원칙, 법원의 보수적인 태도와 협소한 시각, 전근대적인 계엄법 체계 등이 얽혀 12·3 비상계엄의 정치사회적·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오히려 향후 대통령의 자의적인 계엄 선포의 ‘길’을 연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법원을 비판하는 피켓을 든 채 내란 사건 1심 선고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요건 못 갖춘 계엄 인정했지만

이번 내란사건 판결문 총 1204쪽 중 약 670쪽 분량이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 부분이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 3일을 중심으로 타임라인을 정리한 표까지 첨부할 정도로 사실관계 확인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실체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헌법 제77조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실체적 요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헌법과 계엄법은 계엄 선포 때 지켜야 할 절차(절차적 요건)를 규정한다.

윤 전 대통령은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무위원 탄핵을 제기하고 정부 예산을 삭감하는 등 권력을 남용했고, 이는 국가비상사태였기 때문에 정당하게 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살펴봐도 평상시의 방법으로 대처할 수 없는 국가비상사태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계엄 선포 과정에서 국무회의 심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포고령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적용 범위도 너무 광범위해 위헌·위법하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내란죄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현대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봉건시대의 ‘왕’과 다르다는 점을 짚었다. 중세유럽 등의 역사 속에선 국가와 왕을 동일시하면서 왕에 대한 반역을 곧 내란죄로 처벌했지만, 국민주권주의 체제가 형성되면서 왕이 아니라 국민을 거역했을 때 내란죄로 처벌하는 형태로 개념이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그 예로 재판부는 1649년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의회와 갈등을 빚다가 내전 끝에 의회와 신민들에 대한 적대적 전쟁행위를 한 반역죄로 참수당한 일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찰스 1세에 대한 판결은 국왕 역시 국가, 즉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의회를 공격함으로써 주권을 침해해 반역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인식을 퍼뜨린 판결”이라며 “우리 형법상 내란죄 역시 국가 존립에 대한 죄, 즉 주권 침해에 그 본질이 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그 수단으로 계엄을 선포해 병력을 동원했다고 인정하면서 12·3 비상계엄이 내란이라고 확인했다. 형법 제87조 내란죄에 해당하려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대표적으로 ‘군을 국회에 보낸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봤다.

지난 2월 19일 내란 사건 1심 선고가 진행된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 다른 피고인들, 변호인단이 참석해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대통령의 계엄 권한 존중해야?

문제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난 재판부의 인식이다. 재판부는 법원이 계엄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사법심사)할 수는 있다고 봤다. 아무리 대통령의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야 하고, 합헌성·합법성의 판단은 본질적으로 사법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여러 번 ‘국가긴급권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은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법원이 실체적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에 대한 대통령 나름의 판단을 사후적·객관적으로 심리해 내란죄의 성부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목이다.

그 이유로 재판부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라는 점, 법이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는 점을 들었다. 또 법원이 과도하게 개입하면 “(계엄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도 대통령이 권한 행사를 주저하게 돼 사회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헌법이 계엄의 요건으로 정한 ‘국가비상사태’인지 여부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은 일단 존중하고, 가급적 ‘사법자제’의 태도로 형사법적 측면에서 범죄 성립요건을 꼼꼼히 따지는 게 맞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게 “고도의 정치 행위에 관한 사법적 심사 자제, 책임주의와 죄형법정주의 원칙과도 균형을 이룬다”고 했다.

이 같은 재판부 태도는 ‘정치 계엄’을 허용하는 것으로 상당히 위험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계엄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이런 논리대로면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판단을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더라도 일단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병욱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2월 25일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주최한 긴급 특강에서 “계엄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그 요건은 오로지 전쟁이나 군사적 공격으로 인한 포위상태여야 한다”며 “이번 판결은 정치 계엄도 할 수 있다는 전근대적 인식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역사적으로 모든 독재정권의 계엄은 이념적 대립 시기에 국가의 내부 단속이나 정권의 입지 강화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권한을 남용한 것이었다”며 “이번 판결은 마치 정상적인 계엄, 좋은 계엄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어 “국민주권사상, 의회민주주의, 선거제도, 표현의 자유 등이 확립된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정치적인 원인을 이유로 한 정치 계엄을 인정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2월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 지귀연 재판장이 내란 사건 1심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판결문에는 대통령이 의회 독주를 제어할 수 없는 정치제도 때문에 12·3 비상계엄이 발생했다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도 있다. 재판부는 “선진국의 경우 대통령이 의회와 갈등을 일으켜 군부를 동원해 의회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정도의 갈등까지 가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설계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선진국’들은 의회를 상·하원으로 구성해 신중한 판단을 하거나, 선거에서 의원의 일정 비율씩만 교체해 급격한 의회 구성의 변화를 막고,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을 부여하는 등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도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이 나온다. 박 교수는 “우리 통치구조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였고, 그에 따라 행정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형태의 구조 개편을 해야 한다는 논의가 중심이었지, (재판부가 말하듯이 제도가 없어서) 비상계엄을 해도 좋다는 논의는 전혀 한 적이 없다”며 “완전히 거꾸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강사이자 사회연구자인 최성용씨는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을 “자의적 계엄 선포를 인정함으로써 내란 꿈나무들에게 길을 열어준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대통령이 요건을 갖추지 않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면 탄핵 같은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면 족하고, 형사적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지난 2월 25일 참여연대 토론회에서 “계엄 선포가 요건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족하고 형사책임은 지울 수 없다고 했는데, 친위쿠데타가 성공하면 온 국민이 독재자 치하에서 살아가야 한다. 무슨 방법으로 정치적 책임을 지울 수 있느냐”며 “민주주의 관점에서 이번 판결은 중대한 오류가 있고, 2심에서 전면 재구성돼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3월 15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군 동원 없으면 국헌문란 아닌가

재판부가 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한 것을 윤 전 대통령이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내란을 일으켰다고 본 핵심 이유로 설명하면서도, 그밖에 비상계엄이 초래하거나 초래할 수 있는 여러 피해에 주목하지 않은 것도 이번 판결의 문제로 꼽힌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집회, 시위, 언론, 출판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포고령을 공고한 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귀연 재판장이 선고문을 낭독하면서 “(판결의) 핵심은 군을 국회로 보낸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듯이, 판결문에서도 군 동원 부분이 주로 다뤄졌고 비상계엄으로 인한 다른 헌법상 기본권 침해 등은 상대적으로 얕게 다뤄졌다. 이 때문에 만일 군 동원이 아닌 다른 수단을 써 계엄을 한다면 국헌문란의 목적이 인정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된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참여연대 토론회에서 “지귀연 재판부의 이론대로면 만약 계엄군이 국회를 쳐들어가지 않고 일부 언론기관을 장악하거나 일부 국회의원만 체포했을 때 과연 내란죄로 볼 수 있을까 의문”이라며 “교묘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회색지대를 만들어놓고 있다”고 했다. 최성용씨는 긴급 특강에서 “계엄 선포 자체로 행정권, 사법권이 침탈되고 기본권의 효력이 정지되지만, 이번 판결에서 국회의 권능 침해를 제외한 다른 부분들은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며 “국회를 침탈해서 무력화하면 내란은 성공한 것이라 (내란 세력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데 (국회 침탈만 주목하고 다른 피해를 외면하는 것은) ‘실패하면 쿠데타,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식의 판단”이라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계엄 관련 법 자체의 문제도 지적된다. 애초에 헌법과 계엄법에서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이 계엄 선포 전 국회에 사전동의를 받도록 하는 계엄법 개정안을 추진했지만,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원초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현재까지 여러 개정안이 계엄 선포의 절차적 요건만을 강화하고 국회 침탈을 막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최씨는 “계엄의 적법성을 문제 삼을수록 한편으로는 ‘좋은 계엄’, ‘적법절차에 따른 정당한 계엄’을 상정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며 “12·3 계엄은 동시대에 바로 반박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계엄 선포의 자의성이 두드러졌지만, 계엄 선포 권한에 대해서는 의심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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