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이란 정체성, 부담 넘어 삶의 나침반"

이고운, 배성수 2026. 3. 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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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에 큰 자부심과 동시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체성이 제 앞길을 비춰주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인 독립운동가 안명근 선생의 증손녀 안성심 육군3사관학교 생도(21)는 1일 인터뷰에서 "독립운동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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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심 육군3사관학교 생도
안중근 의사 사촌 안명근 선생 증손녀
“애국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 다하는 결단”
안성심 육군3사관학교 생도. 육군 제공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에 큰 자부심과 동시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체성이 제 앞길을 비춰주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촌인 독립운동가 안명근 선생의 증손녀 안성심 육군3사관학교 생도(21)는 1일 인터뷰에서 “독립운동은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이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려는 결단이었다고 여긴다”고 덧붙였다. 안 생도는 지난달 20일 육군 초급장교 양성기관인 육군3사관학교 63기로 입학했다.

안 생도는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데에는 증조부인 안명근 선생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 자연스럽게 증조부의 삶을 접하며 성장하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며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역사관과 안보관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안 생도의 가정에서 선대에 대한 교육은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뤄졌다. 그는 “부모님은 증조부가 고문과 회유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늘 강조했다”고 말했다. 안명근 선생은 해외 독립군 기지 개척, 매국노 이완용 등의 처단 시도, 대일 무장투쟁 구상 등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다. 그는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끝에 1927년 사망했고,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안 생도는 “주변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점에 대해 응원과 존중을 받으면서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선대에 걸맞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부담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그 정체성을 부담이 아닌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 점이 나를 규정하는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큰 영향을 미쳐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 대학과 사관학교 진학을 두고 고민하다 ‘선대가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독립의 가치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실천하는 군인이 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모님은 처음엔 걱정했지만,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점을 알고 ‘선택한 길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라’는 조언을 건넸다고 했다.

안 생도는 “증조부께서 지금의 나를 보신다면 ‘나라를 위한 마음을 잊지 말라’고 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선대의 정신을 이어받고 싶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장교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그분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부친은 ‘선대의 이름이 아니라, 네 이름으로 당당한 군인이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문의 이름에 기대기보다 제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인정받는 장교가 되고 싶습니다.”

이고운/배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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