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 사라져가는 동네의 기억을 붙잡다
[한국독서교육신문 이혜미 기자]
이미경 작가가 글과 그림을 맡고, 남해의봄날에서 펴낸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는 사라져가는 동네 구멍가게의 풍경을 섬세하게 복원한 그림 에세이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 잊혀져가는 공간과 정서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책은 단순히 오래된 가게를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전국 곳곳에 남아 있거나 이미 사라진 구멍가게들을 세밀화로 담아내며, 그 공간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과 공동체의 온기를 함께 불러낸다. 빛바랜 간판, 아이스크림 냉동고, 유리병 사탕, 평상과 나무 의자 같은 익숙한 사물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한 시대의 생활사이자 정서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림의 밀도다.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된 가게 내부와 골목 풍경은 독자로 하여금 화면 앞에 오래 머물게 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친숙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정서가 세대를 넘어 공유되는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70~90년대를 지나온 세대에게는 어린 시절의 골목과 놀이, 그리고 이웃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공동체 중심의 생활문화가 지녔던 따뜻함을 전한다. 구멍가게는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아이들이 모이고 어른들이 안부를 묻던 '동네의 중심'이었음을 자연스럽게 환기한다.
작가는 화려한 서사나 극적인 사건 대신, 조용한 장면들을 통해 잊혀진 시간을 복원한다. 그 절제된 시선 덕분에 독자는 각자의 기억을 책 위에 겹쳐 읽게 된다. 골목 끝 작은 가게, 평상 위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 장작불이 타오르던 아궁이의 온기 같은 장면들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 공동의 정서로 확장된다.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는 nostalgia에 머무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 기록에 가깝다. 사라지는 공간을 통해 남겨야 할 가치—이웃, 느림, 공동체의 온기—를 조용히 환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