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고통을 느낀답니다…‘5년 2319만마리 희생’ 동물실험 종식될까 [S스토리-동물대체시험법 논의 재개]
약물 투여·감염에 악성종양 등 유발
실험 동물수 10년새 2배 증가
선진국들 대체시험 전환 가속화
오가노이드·장기칩·AI 활용 등 발전
국내 법 도입 추진하지만 갈길 멀어
규제 강화보다 인센티브로 촉진해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집계한 2020∼2024년 국내 동물실험에 동원된 동물 숫자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동물실험이 적지 않게 이뤄지고 있다. 연간 실험동물 수는 2015년 250만7157마리에서 지난해 459만2958마리로 약 2배 증가했다. 피험체의 고통이 가장 높은 E등급 실험 비중은 지난해 기준 51.5%로 유럽연합(EU·9.2%)과 비교하면 5배가 넘는다.
26일 농림축산식품부, 기후에너지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동물대체시험 관계부처들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2월 동물대체시험 관련 부처 합의안을 도출했다. 앞서 9월 정부가 국정과제로 동물대체시험법 활성화를 천명한지 4개월만이다. 동물대체시험은 동물을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동물을 사용하거나, 사용하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시험법을 말한다.

동물실험을 대체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 2024년 농식품부가 진행한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서 ‘과학·의학적 연구에서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문항에 국민 64.7%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답변도 42.7%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17.4%)보다 높았다.
동물실험에 한계가 있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트레이시 베스 호그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 특별보좌관은 지난해 7월 “동물실험을 통과한 약물의 90% 이상이 인간에겐 안전성이나 효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동물 보호 시민단체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송우진 연구원은 “동물실험 대부분이 신약 개발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암 치료, 뇌 인지 기능 치료 등 분야에선 동물실험 제약이 크다. 종 간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며 “지난해부터 상당수 제약회사가 인체 유래물을 동물 대신 2차원 배양(평면 상태 세포 실험)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필요성은 인지했지만, 대체시험법 추진 속도는 더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시험법에 등재되려면 신규 시험법 기준 5년에서 10년이 소요된다.
2009년 만들어진 식약처 소속 한국동물대체시험법검증센터(KoCVAM)이 국내 동물대체시험법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OECD 시험 가이드라인 4건,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표준 1건을 등재하는 등 성과도 남겼다. 기후부도 2023년부터 OECD 시험가이드라인 2건 등재를 진행 중이다.
다만 연간 실험동물 수가 말해주듯 대체시험 활성화는 외국에 비해 지지부진하다. 7월 한국보건환경보건학회지에 실린 ‘동물대체시험법의 국제 정책·기술 동향과 규제 수용성 비교에 관한 문헌 검토’에 따르면 EU는 2023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기준으로 대체시험 도입률이 90.3%에 달하는데 한국은 18.2%에 불과하다.
고통등급이 높은 실험 비중이 높은 것도 지적된다. 정부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 표준 운영 가이드라인’은 고통등급 D등급을 ‘동물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약물을 투여하거나 반복적인 채혈·침습적 검사, 의도적으로 감염·만성질환·악성종양을 유발하는 등의 실험’으로 규정한다. 가장 높은 E등급은 ‘외과적 처치와 물리적인 충격·자극이 가해지고 동물의 죽음으로 실험이 종료되는 경우’를 뜻한다.
송 연구원은 “산업 관심사가 암, 인지 장애 등이 되면서 고통등급이 높은 실험도 늘었다. 암의 종류가 예전보다 많아진 것도 영향을 줬다. 특정 암 치료에 실패한 항암제가 다른 암에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암 종류만큼 실험동물 사용 수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송 연구원은 “광유전학(optogenetics) 분야에서 뇌를 실험할 때 래트의 두개골을 열고 레이저를 쏴 자극하는 경우가 있다. 마약 수준으로 마취를 해야 래트가 실험을 버틸 수 있는데, 이 정도 고통이 바로 E등급”이라고 묘사했다.
반면 해외는 대체시험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중이다.

현재 대체시험 현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로는 오가노이드가 꼽힌다.
오가노이드는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인간 장기 구조 일부를 모사한 일종의 ‘모의 장기’다. 2차원으로 세포를 배양하던 기존 방식보다 장기 모사도가 높다. 2009년 네덜란드 휘브레흐트연구소에서 생쥐의 직장에서 줄기세포를 얻어 ㎜ 크기의 내장을 만들어낸 게 시작이다.

이상희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은 “인간 몸에 사용되는 화학 물질은 보수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며 “가령 간 오가노이드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를 교차 활용해 최대한 간을 모사하면 독성 여부를 보다 빠르게 걸러(스크리닝)낼 수 있다”고 소개했다.
대체시험법 학계는 오가노이드 외에도 여러 분야로 발전 중이다.
미세 유체공학기술을 활용, 인체 장기 구조와 생리적 환경을 모사한 마이크로칩 기반의 장기칩(Organs-on-Chips)은 오가노이드보다 혈액 흐름, 물리적 힘 등 실제 생체 내 환경을 정밀하게 재현한다. 또 여러 장기칩을 연결하면 인체 전체 시스템을 모사하는 ‘인체칩’도 구성할 수 있어 제약사들의 관심도가 높다. 이외에도 인공지능(AI) 기반 시뮬레이션을 활용, 실험 예측도를 높이는 중이다.
대체시험법 목표는 동물실험의 ‘완전 대체’가 아니다.
송 연구원은 “대체시험법 회의론자들은 ‘지금 기술로는 동물실험을 100%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기술로도 동물실험 중 일부는 대체할 수 있다. 단계적으로 대체하면서 동물실험을 줄일 수 있는데,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게 국내 수용성이 낮은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고 밝혔다.
제약사 등 실험 주체들이 기존에 ‘상식’이던 동물실험 대신 대체시험법을 선택하려면 규제 대신 유인을 만들고, 비용 차이 등을 보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 연구관은 “실험동물과 달리 대체시험 키트를 개발해 판매하면 개당 몇백만원에 이르고 동물 관리 등 부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먼저 대체시험 시장에만 진입하면 세계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산업적 가치를 설명했다.
윤석주 한국동물실험대체법학회 회장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대체시험 신기술을 도입·개발하려면 고가의 장비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자금력이 부족한 국내 기업들에게 진입 장벽이 높다”며 “산업 현장이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강력한 규제가 가해지면 기업에 부담이 돼 기술 도입이 위축될 수 있다. 대체시험은 높은 비용과 실험인력 숙련도를 요구한다. 규제 강화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이 스스로 움직이는 촉진형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주문했다.
차승윤·장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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