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북적북적] “사라진 뒤에도 남는 설렘” 『흰 자락이 접히면』 김가진 작가가 말하는 아름다움과 죄책감의 미학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호이 기자] "사라진 후에도 그것을 본 모두가 자체의 흔적을 헤매도록 하는 설렘.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입니다."
김가진 작가의 장편소설 『흰 자락이 접히면』은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미를 찬양하는 작품이 아니다. 역사, 죄책감, 윤리, 그리고 예술가의 고독을 치밀하게 교차시키며 독자를 불편한 사유의 자리로 이끈다.
작가가 정의하는 아름다움은 순간의 감탄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충격의 형태로 와닿고, 박동처럼 지속되며, 기억으로 남는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옅은 잔향으로 사람을 붙든다. 『흰 자락이 접히면』 속 우에노 사에코의 춤 역시 그러하다. 그녀의 춤은 무대 위에서 사라지지만, 그것을 본 이들의 내면에서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근현대 무용사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을 지녔지만, 철저한 재현 대신 '미학적 해석'을 택했다. 김 작가는 다큐멘터리적 접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음을 고백한다. 자료 확보의 한계, 그리고 실존 인물을 다시 심판대 위에 세우고 싶지 않았던 마음. 대신 그는 한 예술가가 남긴 '아름다움'을 다시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친일과 항일이라는 이분법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 그 경계의 회색지대를 응시하는 선택이었다.
소설 속에는 "같은 식민지민끼리의 동질감이 없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작가는 이 문장이 위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역사를 평가하되, 개인의 내면까지 단정하려 드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우리가, 그 선택의 감정까지 재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우에노 사에코는 예술을 지키기 위해 시대와 결탁하는 인물이다. 예술과 윤리가 충돌할 때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김 작가는 단호하다. 예술은 윤리에 의해 함부로 좌우되어서는 안 되지만, 폭력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것. 아름다움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예술이 폭력을 찬양하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를 배반한다는 믿음이다.
사에코는 끝내 용서받지 못할 인물로 남는다. 그러나 작가는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사랑과 연대보다 예술을 택한 선택은 그녀를 고독하게 만들지만, 그 고독은 비극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면, 결국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소설의 문체는 고전적이고 탐미적이다. 일부 독자에게는 쉽지 않은 문장일 수 있다. 그러나 김 작가는 "흘러가는 대로 썼다"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의 성향이자 호흡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에코의 보살춤 장면은 가장 공들인 대목이다. 초면의 인물이 한순간에 매혹될 만큼의 설득력을 언어로 구현하는 일은, 춤이라는 비언어적 예술을 또 하나의 언어 예술로 번역하는 작업이었다.
김가진 작가가 반복해 호출하는 단어는 '숭고함'이다. 그는 이를 감정이나 상태가 아닌 '추앙'에 가깝다고 말한다. 모태적으로 느껴지는 본능 같은 것. "아름다움에 대한 극적인 추앙이 내가 정의하는 사랑"이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글쓰기는 사랑의 표현이라기보다 사랑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흰 자락이 접히면』은 작가에게 여전히 사랑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평생 뛰어넘어야 할 숙적이자 추억으로 남았다. "과연 나의 소설은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완성한 작품.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오히려 조심스러워질 것 같기에, 데뷔작으로 이 무거운 주제를 택할 수 있었다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사라진 뒤에도 남는 설렘. 잊히지 않는 잔향. 김가진 작가는 그 아름다움의 흔적을 좇으며, 예술과 시대, 죄책감과 사랑 사이를 계속해서 탐닉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