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면 학교에서 나오던 주먹밥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가족·연인·학생 등 발걸음 이어져
참혹한 당시 기록, 분노·슬픔 교차
"최후까지 항쟁했던 영령들 감사"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 형제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2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전남도청 임시개방 첫날, 본관 1층 서무과 방송실의 영상에서는 항쟁 마지막날인 5월 27일 당시 간절하던 여성의 애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상을 지켜보던 방문객들의 얼굴에는 숙연함이 엿보였다.
이날 도청에는 연휴에 따사로운 햇살까지 내리쬐면서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족과 연인, 군인, 수녀, 학생 등의 시민들은 전시관 곳곳을 관람하며 1980년 5월 그날의 아픔을 떠올렸다.

전시관 곳곳에서는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고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부모가 설명을 해주며 자녀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도 했다.
본관에 입장하면 바로 볼 수 있는 탄흔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몸을 기울이거나 촬영하는 등 자세히 관찰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시민들의 사진 앞에서 방문객들은 발걸음을 떼지 못하기도 했다. 참혹했던 당시의 현장 모습과 희생된 수많은 오월 영령들이 사진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사진을 지켜보던 한 관람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옮겼고 대다수의 방문객들의 표정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고등학생 김주아(18)양은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5·18을 제대로 알고 싶었는데 실제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영상과 전시를 보면서 울컥했다"며 "학교 급식에서 매년 5월이면 주먹밥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대강(45)씨는 "1980년 5월 당시에 누나가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총알을 피하기 위해 이불을 창문에 붙여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최후의 항쟁지였던 곳에 와보니 내가 5·18을 직접 겪었다면 어땠을지 고민했다. 당시 오월 영령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뜻깊다"고 밝혔다.
3·1절 연휴 기간을 맞아 먼 타지에서 발걸음한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참혹했던 5월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어 뜻깊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에서 온 배재용(31)씨는 "온라인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직접 최후의 항쟁지를 방문해보니 가슴이 먹먹하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왔지만 당시의 현장을 느낄 수 있어 보람있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가족과 함께 방문한 김지유(14)양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당시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 사격을 했다는 것이 화가 난다"며 "많이 무서웠을 텐데 마지막까지 항쟁했던 오월 영령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고개 숙였다.
시민들을 맞이하기 위해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직원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이날 첫 해설을 맡은 김현진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해설사는 "복원을 한다는 건 당시의 이야기를 현장감 있게 들려줄 수 있는 것"이라며 "말로만 설명할 때는 당시 상황을 사람들이 상상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는데 사진이나 영상자료가 있어 시민들이 이해에 용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또 5·18이야? 라는 말들이 이곳에서 '아,' 라고 표현됐으면 좋겠다"며 "지겹게 들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민주주의 과정에서 계속 함께 이야기되는 이유이면 좋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