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버려!”…그 날도 사람들은 돌을 던졌다, 인공지능과 일렉 기타·도구와 ‘본질’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김주리 2026. 2. 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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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Bob Dylan), 1962년 첫 앨범 ‘밥 딜런’(Bob Dylan) 통해 데뷔
시적이고 철학적인 노랫말과 수려한 멜로디 라인으로 ‘포크의 상징’ 발돋움
1965년, 일렉기타로 무대 올라…‘순혈 포크’ 배신자 낙인 찍힌 ‘뉴포트 사건’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

※ 본 기사는 인공지능(AI)을 일부 활용해 작성됐습니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은 당시 미국 포크 음악의 정신적 중심지였다. 당시 포크 음악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흐름 속에서 상업성과 거리를 둔 ‘진정성’의 문화로 받아들여졌고, 딜런은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그가 일렉 기타를 들고 등장한 순간, 논쟁은 곧바로 정체성과 신념의 문제로 확장됐다. 관중들이 느낀 배신감은 비단 소리의 변화에 대한 반감이 아닌, 자신들이 붙들고 있던 세계가 흔들렸다는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게티이미지/Photo by David Gahr]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1965년 7월 25일,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Newport)에서 열린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당대 최고의 포크 가수 밥 딜런(Bob Dylan)은 관객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아니 어쩌면 이미 예견됐던 비난 세례를 받았다. 관객석에서는 야유와 욕설, 항의가 터져 나왔고, 일부 관객들은 그를 향해 “배신자!”(Trator)라고 외쳤다.

이유는 하나였다. 통기타와 하모니카로 대표되던 딜런이 이날 일렉트릭 기타(electric guitar·전자 기타)를 들고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딜런은 당시 신곡이었던 ‘메기의 농장’(Maggie’s Farm)과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 등을 일렉 기타 사운드로 연주했다. 공연은 채 20분이 되지 않아 종료됐고, 이후 딜런은 앙코르 공연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다시 등장해 무대를 마무리했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은 당시 미국 포크 음악의 정신적 중심지였다. 당시 포크 음악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흐름 속에서 상업성과 거리를 둔 ‘진정성’의 문화로 받아들여졌고, 딜런은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그가 일렉 기타를 들고 등장한 순간, 논쟁은 곧바로 정체성과 신념의 문제로 확장됐다. 관중들이 느낀 배신감은 비단 소리의 변화에 대한 반감이 아닌, 자신들이 붙들고 있던 세계가 흔들렸다는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렉 기타는 도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관객들이 목격한 것은 음악의 변화가 아닌 정체성의 균열이었다.

“Ahh princess on a steeple and all the pretty people
They‘re all drinking, thinking that they’ve got it made”
(아아, 첨탑 위 공주님과 우아하게 차려입은 이들이여
모두가 술을 들이키며, 자신들의 삶을 성공시켰다 생각하는구나)
- 밥 딜런, ‘라이크 어 롤링 스톤’ 中 -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의 6분이 넘는 러닝타임,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는 오르간 리프, 전기적 구성이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사운드는 기존 포크 음악의 형식 안에서는 구현 자체가 불가능했다. 곡은 단순히 새로운 스타일의 시도가 아닌, 새로운 사고 방식이 요구한 필연적이고 효율적인 결과물이었다. 즉 딜런이 바꾼 것은 ‘기타 한 대’가 아닌, 표현의 규모와 방식이다. [게티이미지/Photo by David Gahr]

관중은 왜 분노했는가

이날 관중들이 보인 반응은 단순히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었다. 그들이 느낀 불편함은 음향의 변화가 아닌 ‘역할의 이탈’이었다.

1960년대 초반 미국 포크 음악은 하나의 장르를 넘어 사회적 정체성에 가까웠다.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를 두고, 개인의 목소리로 시대의 문제를 노래하는 음악. 통기타 한 대와 보컬 등 단촐한 편성은 진정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가운데 포크를 노래하는 이들은 연예인이 아닌 증언자였으며 가수가 아닌 시대의 양심에 가까운 존재였다.

밥 딜런 역시 그 기대 속에서 성장한 인물이었다. ‘바람만이 아는 답’(Blowin’ in the Wind), ‘시간이라는 변화’(The Times They Are A-Changin’)와 같은 노래들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현장에서 수십차례 불려졌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개인 뮤지션을 넘어 하나의 상징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관객들이 무대 위의 딜런에게 기대한 것은 새로운 음악이 아닌, 이미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신념의 지속이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예술과 창작이 상징이 되는 순간, 대중은 이를 작품이 아닌 정체성으로 소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이 변화의 조짐을 보일 때, 변화는 곧 배신으로 읽혀진다.

일렉 기타는 소리의 확장인 동시에 창조의 확장이었지만, 관중들의 눈과 귀에는 ‘상업 음악’의 언어로 이동하는 신호에 가깝게 느껴졌다. 전기가 연결된 악기는 시장과 연결된 음악을 의미했고, 이는 곧 포크가 지켜왔던 순수성의 붕괴로 해석됐다. 실제 변화의 크기와 의도와는 무관하게 군중은 자신들이 공유해온 가치 체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랬기에, 야유와 조롱은 음악이 시작되기도 전에 발생했다. 이는 관객들이 작품을 작품으로 평가하기 이전에 변화 그 자체를 ‘변질’로 반응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새로운 음악을 듣게 된다는 기대가 아닌, 자신들이 알고 있던 세계가 붕괴됐다는 신호에 반응했다.

예술은 개인의 표현에서 출발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순간 공동의 소유물로 취급된다. 그리고 공동의 소유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군중은 그것을, 실험 혹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 아닌 이탈과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뉴포트의 야유는 바로 그 집단적 불안이 가시화된 순간이었다.

“Theres too much confusion, I cant get no relief.
Businessmen, they drink my wine, plowmen dig my earth,
None of them along the line know what any of it is worth”
(세상에는 혼란이 너무 많아, 도무지 편히 쉴 수가 없어
사업가들은 내 와인을 마시고, 농부들은 내 땅을 갈아엎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것들의 가치를 알지 못해)
- 밥 딜런, ‘망루(望樓)를 따라 걷다 보면’(All Along the Watchtower) 中 -
일렉 기타는 소리의 확장인 동시에 창조의 확장이었지만, 관중들의 눈과 귀에는 ‘상업 음악’의 언어로 이동하는 신호에 가깝게 느껴졌다. 전기가 연결된 악기는 시장과 연결된 음악을 의미했고, 이는 곧 포크가 지켜왔던 순수성의 붕괴로 해석됐다. 실제 변화의 크기와 의도와는 무관하게 군중은 자신들이 공유해온 가치 체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꼈다. [게티이미지/Photo by Unknown]

딜런은 왜 변절(?)했는가

뉴포트의 사건은 오랫동안 ‘배신’이라는 단어로 설명돼 왔지만, 시간을 거슬러 딜런의 음악적 궤적을 따라가 보면 그날의 선택은 돌발적인 전환이 아닌, 이미 진행 중이었던 변화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딜런의 관심은 더 이상 전통적인 포크 문법 안에 머물지 않았다. 초기 작품들이 사회적 메시지와 서사 중심의 노래였다면 이후 그의 가사는 점점 파편적이고 초현실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문장은 논리보다 감각에 집중됐고, 노래는 주장보다 경험과 사유에 닿아 있었다.

문제는 기존의 어쿠스틱 포크 형식이 그의 새로운 언어를 더 이상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단촐한 기타 반주와 직선적인 구조는 딜런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효과적이었지만, 빠르게 확장되던 딜런의 사고와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이다. 6분이 넘는 러닝타임,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는 오르간 리프, 전기적 구성이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사운드는 기존 포크 음악의 형식 안에서는 구현 자체가 불가능했다. 곡은 단순히 새로운 스타일의 시도가 아닌, 새로운 사고 방식이 요구한 필연적이고 효율적인 결과물이었다. 즉 딜런이 바꾼 것은 ‘기타 한 대’가 아닌, 표현의 규모와 방식이다.

그에게 일렉 기타는 상업성을 향한 타협도 아니었고, 신념의 배반도 아니었다. 창작인의 내면에 있는 본질적인, 더 많은 소리와 더 큰 에너지, 더 복합적인 감정을 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음악적 변화는 신념의 포기가 아니라 표현 방식의 재설계였다.

결국 뉴포트에서 벌어진 충돌은 딜런이 대중음악의 방향을 바꾼 사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중이 이미 고정해버린 이미지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순간에 가깝다. 창작자는 앞으로 움직였고, 관중은 그가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Ophelia, she’s ‘neath the window
To her, death is quite romantic
And though her eyes are fixed
Upon Noah‘s great rainbow
She spends her time peeking
Into Desolation Row”
(창문 아래에 있는 오필리아, 그녀에게 죽음은 꽤나 낭만적이라네
그녀의 눈은 노아의 위대한 무지개에 머물러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때때로 황량한 거리를 엿보곤 하지)
- 밥 딜런, ‘황량한 거리’ 中 -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이 예술의 본질과 순수성을 훼손할 것이라 우려했고, 비난했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논쟁의 대상이었던 도구들은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음악 언어로 편입됐다. 결국 변화가 위협적으로 보이는 순간은, 도구가 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익숙했던 창작 방식의 권위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은 특정한 형식이나 장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어쿠스틱 기타가 진정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전자 악기가 그것을 훼손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용했는가가 아닌, 도구를 활용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에 있다. [게티이미지/Photo by Luciano Viti]

도구는 순수를 위협하는가

뉴포트의 논쟁 이후 반세기가 넘은 지금, 당시 관객들이 보인 격렬한 반응은 다소 과장된 해프닝처럼 회고되곤 한다. 그러나 비슷한 장면은 음악사의 거의 모든 전환점마다 반복돼 왔다.

19세기 초 피아노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에도 일부 음악가들은 이를 경계했다. 이전까지 귀족 살롱과 교회 중심이던 음악이 가정으로 이동하면서,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음악의 품격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였다. 기술적 편의가 음악적 깊이를 약화시킨다는 논쟁이었다.

20세기에 들어 일렉 기타가 등장했을 때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증폭된 사운드는 ‘소음’으로 취급받았고, 록 음악은 한동안 진지한 예술이 아닌 상업적 소비문화로 분류됐다. 이후 신디사이저와 드럼 머신이 등장했을 때는 인간의 연주를 대체하는 기계가 감정을 제거할 것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디지털 녹음과 샘플링 기술, EDM 제작 방식 역시 “진짜 음악이 아니다”라는 논쟁 속에서 출발했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이 예술의 본질과 순수성을 훼손할 것이라 우려했고, 비난했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논쟁의 대상이었던 도구들은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음악 언어로 편입됐다.

결국 변화가 위협적으로 보이는 순간은, 도구가 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익숙했던 창작 방식의 권위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은 특정한 형식이나 장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어쿠스틱 기타가 진정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전자 악기가 그것을 훼손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용했는가가 아닌, 도구를 활용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에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남는 것은 논쟁이 아닌, 그 변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방식과 언어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새로운 도구가 예술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이미 일상의 편의 기술을 넘어 창작의 영역으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공동 집필한 소설과 에세이가 출간되고, 알고리즘이 생성한 이미지가 미술관 전시에 오르며, 음악 제작 과정에서도 AI 작곡과 편집 기술이 실제 작업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한때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신성시되던 상상력과 창작 행위가 더 이상 인간만의 독점적 능력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변화 앞에서 익숙한 질문이 다시 한 번 제기된다. 기계의 개입이 늘어나면 예술은 진정성을 잃게 되는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창작물은 ‘진짜’인가. 혹은 외부 도구가 인간의 감각과 사고를 ‘대체’하고 있는가.

피아노의 대중적 확산, 전기 증폭 장치, 신디사이저, 오토튠까지, 디지털 기술은 언제나 예술을 기계적 생산물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등장했고, 그때마다 논쟁의 대상만 다를 뿐 핵심은 동일했다. 우리는 그것이 표현의 확장이 아닌 인간성의 축소라고 받아들여왔다.

작곡가는 악기를 통해 머릿속의 소리를 현실로 끌어내고, 미술가는 물감과 캔버스를 통해 감정을 가시화하며, 작가는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사유를 구조화한다. 창작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직관과 감각, 상상력과 창의력을 외부의 매개를 통해 구현하는 과정과 결과다. 기술은 그 과정을 단축하거나 확장했을 뿐, 창작의 출발점 자체를 바꾸지 않았다.

인공지능 또한 인간이 가지고 있던 사고와 상상을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도록 활용되는 도구에 가깝다. 표현의 속도가 빨라지고, 가능성을 넓히며, 여느 기술과 마찬가지로 오남용 될 수 있지만,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인간에게 달려있다.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정답은 말이지, 친구여
그저 바람 속에 있다네
정답은 바람 속에 있다오)
- 밥 딜런, ‘바람 속에 있는 답’(Blowin‘ In The Wind) 中 -
도구는 달라져도 결국 인간이 예술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말하고 느끼게 하는가, 그리고 그 표현이 끝내 우리 안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결국 시간이 지나 남는 것은 사용된 도구나 기술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낸 경험이다. [게티이미지/Photo by Brooks Kraft]

1965년 뉴포트의 그 날, 관중들이 들은 것은 비단 앰프를 통해 흘러나온 일렉 기타의 사운드가 아닌 자신들이 믿어온 질서가 흔들리는 소리였다. ‘포크’라는 형식에 기대어 지켜내고 싶었던 순수성, ‘딜런’이라는 이름에 투사해놓았던 신념, 그리고 예술은 ‘이래야 한다’라는 관념적 규칙이 무너지는 순간에 그들은 분노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의 우리, 누군가는 인공지능을 통해 창작의 종말을 보고, 누군가는 인간성의 훼손을 말한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기저에는 기술 자체가 아닌 기술이 건드리는 ‘경계’에 있다. 내가 믿어온 기준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내가 익숙한 방식으로 쌓아온 권위와 형식이 무력해질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공포’다.

하지만 도구는 달라져도 결국 인간이 예술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말하고 느끼게 하는가, 그리고 그 표현이 끝내 우리 안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결국 시간이 지나 남는 것은 사용된 도구나 기술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낸 경험이다.

대부분의 변화가 그렇듯, 그것은 이해되기 전에 먼저 거부된다. 결국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도구의 변화 그 자체가 아닌, 표현의 형식과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는 무수히 증명해왔다.

야유와 조롱과 공포가 떠난 뒤 남는 것은 결국 위대한 음악 그 자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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