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겪은 일이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들
“이제 하산해도 될 것 같은데요.”
상담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가까운 지역에 있는 성폭력상담소를 알게 된 뒤, 1~2주에 한 번씩 상담을 이어온 지 1년쯤 지났을 때일 것이다.
처음 상담소를 찾았을 때, 나는 성추행 피해 트라우마로 일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샤워를 하다 성추행을 겪은 부위를 씻을 때도, 미디어에서 남성이 여성의 몸을 만지는 장면을 볼 때도, 성추행을 당하는 순간이 떠오르는 플래시백(Flashback, 과거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자극을 접했을 때 당시의 감각이나 심리 상태 등이 그대로 재현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한 증상)이 일어났다. 그런 밤은 묻어둔 분노가 올라와 잠을 설치곤 했다.
길에서 가까운 거리에 남성이 있으면 내게 손을 뻗을 것만 같아 몸이 움츠러들었다. 시민단체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많은 남성들과 어우러지는 활동에 불안감과 거부감이 들어 망설였다. 결국, 주최측에 내 상태를 미리 설명하고, 활동 중 무리한 느낌이 오면 뒷자리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등 제한적으로 참여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외상의 기억이 편도체와 시상하부에 남아있는데, 이 부분은 뇌에서 생존 관련 본능을 담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부위는 외상 경험을 통합할 능력이 없고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지금도 위험에 처해 있는 것처럼 계속 반응한다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외상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을 경험할 때마다 편도체와 그 주변 구조들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스트레스 화학성분을 폭포수처럼 쏟아낸다”고 설명한다.
나는 일종의 PTSD를 겪고 있었고, 내 편도체는 과잉 활성화 상태였다. 그런 내가 상담사에게 ‘이제 정말 괜찮아졌으니 하산하라’는 말을 듣는 날이 오다니, 신기했다. 새삼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았다. 치유에는 일대일 상담에서 받은 꾸준한 이해와 정서적 지지도 큰 몫을 했고, 성폭력 피해자 집단상담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변화가 찾아온 것은 상담소에서 진행한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 치료에서 주인공을 맡은 이후였다.
가해자는 의자가 아니지만
사이코드라마는 심리치료 기법의 하나로,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일종의 즉흥 연극이다. 사이코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지목한 관객은 조력자가 되어 보통 주인공 삶 속 인물들의 역할을 맡게 된다. 주인공과 갈등을 겪는 대상이나 주변 지지자, 또는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주된 치료 대상이 되는 내담자는 주인공이지만, 조력자나 관객 역할을 맡은 내담자들도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겹치는 부분을 발견해 쌓인 감정을 해소하고 함께 치유에 다가갈 수 있다.
나는 이미 몇 번 사이코드라마에 참여해 조력자와 관객 역할을 맡으며 그런 치유의 효과를 분명히 느꼈다. 하지만 주인공으로 나선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다행히 성폭력 또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모인 자리라, 준비(Warming-up) 단계에서 내 이야기를 꺼내놓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건 당시의 배경과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 가해자가 끝내 사과를 하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한 합의에 이른 과정과 그 후 내게 남은 감정들을 터놓았다.
치료자는 여러 색의 보자기 중 가해자의 이미지에 가까운 색을 선택하라고 했다. 내가 빨간색 보자기를 고르자, 치료자는 의자 위에 그 보자기를 씌웠다. 그리고 가해자가 의자에 앉아있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다.
처음은 어색했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멈칫거리니, 치료자가 옆에서 대신 큰소리로 욕을 해주며 용기를 북돋웠다. 낮은 목소리의 “야.”로 시작된 말에 점차 감정이 실려 목소리가 떨렸다. 울분이 솟기 시작했다. 가해자에게 직접 쏟아내지 못했던 말을 이 자리에서 읊조려야 하는 상황에 억울함이 들었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배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나쁜 놈을 혼내 줍시다.”
치료자가 종이에 테이프를 감아서 만든 방망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시범으로 의자를 세게 한 번 내리쳤다. 퍽. 의자의 방석 부분은 푹신했지만 표면이 매끈해 방망이로 때리니 찰진 소리가 났다. 치료자는 방망이를 내 두 손에 쥐어주었다.
방망이를 휘두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가해자가 내게 했던 성희롱과 무시의 발언들이 떠올랐고, 내면에 응어리진 말들이 울먹임과 갈라짐이 섞인 목소리로, 눈물과 함께 하염없이 쏟아져나왔다. 그렇게 한참 의자를 내리치고 또 내려쳤다. 팔이 욱신거렸다.
나는 후련할까? 이걸로 된 걸까? 알 수 없어서 더 힘을 쏟아붓고 싶었지만 팔이 아파 더 내리칠 수 없었다. 그러자 치료자는 의자에 씌웠던 보자기를 내게 주며 밟아도 좋다고 했다. 나는 엉엉 울며 그것을 열심히 발로 밟았다. 그에게 짓밟힌 내 존엄을 일으켜 세우는 마음으로.
곧 치료자는 가해자 역할을 했던 보자기를 주워서 내게 내밀었다.
“자, 이제 이걸 꽉꽉 뭉쳐서 저 멀리 던져버릴 겁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던지세요.”
나는 손에 쥔 휴지 뭉치로 코를 닦으며 보자기를 더 꼭꼭 밟은 뒤, 그것을 집어들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를 지르며 문 쪽으로 있는 힘껏 던졌다.
|
▲ 나는 이날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가해자를 벌했고, 무력했던 자신을 용서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성폭력을 겪은 다른 이들의 존재를 느끼고 깊은 공감을 나눈 것이다. 그들의 눈빛과 표정에서 진실한 이해와 지지가 전해져 왔다. (자료 이미지 | ChatGPT 생성) |
끝은 아니었다. 이제는 나 자신을 만날 차례였다.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하라는 치료자의 지시에, 나는 또 다른 빈 의자를 향해 말했다. 더 이상 자책하지 말라고. 그 일이 일어난 건 네 탓이 아니라고. 고분고분한 소녀의 모습으로 자라온 것, 그래서 나이 많은 남자 어른의 고함에 움츠러들고 성범죄에 이용된 것에도 네 잘못은 없다고. 넌 매 순간 잘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것뿐이라고.
이어서 내가 지목한 관객 한 명이 나와 마주 섰다. 그는 또 하나의 내가 되어, 방금 내가 했던 말을 내게 똑같이 들려주었다. 너그럽고 단단한 인상의 그 여성은 마치 잘 씹어서 먹여주듯 문장들을 말해주었고,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았다. 낯선 사람의 품이었지만 오래 부대껴온 사이처럼 포근했다. 그렇게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안아주지 못한 나 자신을 안아주었다.
극이 모두 끝나자, 몰입해 있어서 몰랐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대성통곡한 것도, 욕을 쏟아낸 것도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를 지켜보는 관객들도 모두 눈이 젖어있었다. 많이 울어 눈이 부은 사람, 아직 눈물을 닦는 사람도 있었다. 둥글게 둘러앉아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여러 사람이 비슷한 마음을 들려주었다. 극을 지켜보며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고.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연대하며,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기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의자는 가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의자일 뿐’이라 생각하면 허무하고,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아닌 물건에 벌을 주며 애써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는 게 억울하고 슬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눈 마음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오로지 개인의 불운이 아님을 깨달았고, 같은 공간에서 서로에 대한 연민과 지지를 느꼈다. 또, 자기 안에 있는 분노가 스스로를 지켜주는 안전한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을 분출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무력해 보였던 자신을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내면에 있음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나의 플래시백은 대부분 사라졌다. 남성과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도, 의식은 되었지만 전만큼 불편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사이코드라마는 직면을 연습하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사이코드라마는 꽤 현실과 가까우며, 실제 상황에서 직면이 불가능할 때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극적이면서도 강력한 도구이다”.
몸에서 출발하는 치료법은 편도체와 시상하부에 갇힌 외상을 언어를 관장하는 논리 영역, 즉 대뇌피질 쪽으로 서서히 옮기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대뇌피질은 새로운 정보를 통합하고 바꾸는 능력이 있어, 외상 기억을 이 부위로 통합시키면 생존자들은 피해가 ‘과거’에 일어난 일, 지금은 ‘끝난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동적 스트레스 반응과 PTSD가 감소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많은 생존자들의 치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대응 방법을 안내하는 책 『보통의 경험』(한국성폭력상담소 저, 이매진, 2011)에서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내가 겪은 일에 관해 잘 아는 사람도 조력자가 될 수 있”다고 썼다. 트라우마 연구자 주디스 루이스 허먼(Judith Lewis Herman)은 “심리요법은 독단적인 교리가 아니라 협동에서 나오는 노력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사이코드라마와 집단상담에서 폭력 피해생존자들을 만나 나누었던 연대감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든든하고 따뜻하게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러나 심리요법으로 극적인 변화를 바라며 서두르는 마음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치유로 다가가는 데는 각자의 속도가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대부분의 변화는 더디게 오”며, “조그만 자기애로도 충분하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아이가 걸음을 배울 때 한 발을 떼고 넘어지더라도 그 첫 번째 시도에 우리가 기뻐하는 것처럼, 자신이 비틀거리고 넘어져도 조급해하거나 화내지 말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라고 말한다.
규칙적이고 건강한 일상생활을 지키는 것만으로 성폭력 피해생존자는 자신을 위한 최선의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매일 충분히 자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취미를 즐기는 것. 그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어느 날 돌아봤을 때 과거가 아닌 현재의 더 건강한 나를 발견하게 해준다.
물론 내가 겪어본 것은 내게 일어난 성폭력들뿐이고, 치유의 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처 속에서 분투하는 용기 있는 이들에게 한 가지 생각을 나누고 싶다. ‘말하는 것이 아픔만이 아니라 치유도 가져온다’는 믿음 자체는 버리지 말자는 것. 성폭력을 겪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 도처에 있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는 것.
더 많은 피해 생존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만나 치유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민바람. 자신의 경험으로 사회 구조를 비추는 글을 쓴다. 퀴어, 여성, 신경다양성, 빈곤, 지역 문제의 교차성 탐구에 관심이 많다.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2025년 재출간), 『낱말의 장면들』(2023) 등을 출간 후, 퀴어 소설을 써왔다.
Copyright © ildar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