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의 구찌’를 선포한 ‘구찌 프리마베라’쇼...감각을 앞세운 ‘게임체인저’되다
“다들 내가 모노그램이 박힌 오버사이즈 봄버 재킷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ChatGPT도 그렇게 말했다더군요. 하지만 그게 구찌에 온 이유가 아닙니다. 구찌는 ‘에너지, 열정, 재미, 그리고 섹스’로 가득 찰 겁니다.”

패션계의 이단아이자 그 스스로가 장르인 구찌의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가 27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그의 첫 번째 구찌 쇼 ‘구찌 프리마베라(Gucci Primavera)’ 컬렉션을 공개한 뒤 취재진에게 건넨 이야기다. 그간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 파격, 이는 뎀나와 마찬가지 단어로 불렸다. ‘가장 구찌다운 것이 뭘까’에 대한 탐구해왔던 그는 구찌의 본질을 이번 쇼를 통해 새삼 그의 방식으로 풀었다.
이번 데뷔 쇼는 구찌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시작점만이 아니다. 구찌의 명성을 되살리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구찌의 모회사인 케어링 그룹의 이익을 늘리는 것만도 역시 아니다. 그동안 ‘조용한 럭셔리’ 열풍 속 도전과 반항보다는 안정 지향에 가까웠던 패션계에서 ‘논란’을 불지피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다.
패션을 두고 사람들이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뎀나의 특장점 중 하나였지 않은가. 그러한 점에서 이번 쇼는 단순한 데뷔전이 아닌 ‘구찌 부활’을 내건 ‘구찌 부흥회’ 같았다. “브랜드를 다시 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리셋의 의지를 무대 위에 고정한 사건이었다.



이번 컬렉션은 실루엣, 텍스처, 소재에 대한 새로운 어휘를 제시했다. 디자이너 톰 포드 시대의 구찌가 품었던 관능미는 살아있으면서도 적용 방식은 더 유연했다. 가벼움과 자연스러운 움직임, 편안함, 그리고 신체 구조를 반영한 실루엣을 중심으로, 철저한 제품 개발 과정을 거친 심리스 가먼트와 유려하게 몸에 밀착되는 피스들을 선보였다. 보이지 않도록 열로 마감된 가장자리와 정교하게 설계된 곡선형 헴 라인은 구찌 특유의 감각을 드러냈다.
컬렉션은 화이트 컬러의 얇고 유연한 패브릭으로 완성된 심리스 미니 드레스로 시작됐다. 동일한 재킷을 스커트, 레깅스, 팬츠, 트라우저와 매치한 룩을 통해 오피스부터 바(bar)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드레싱 방식을 제안했다. 액체처럼 흐르는 가벼운 패브릭으로 재단된 테일러링 룩과 로우컷 재킷, 수평 포켓 디테일이 더해진 트라우저는 스트리트웨어적 감각을 반영한 것이다.
뎀나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새로운 가먼트 유형으로 트랙수트와 드레스를 결합한 트랙드레스, 재킷과 탑을 하나로 통합한 울트라-핏 가먼트, 레더 슈즈와 스니커즈가 어우러져 스포츠카의 날렵한 유선형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슈즈가 등장했다. 정제된 버블 블루종과 봄버, 인타르시아 시어링에는 풍성한 깃털 자수가 더해졌으며, 자연스러운 착용감이 돋보이는 프레셔스 레더로 제작된 바이커 재킷과 슬림한 팬츠도 선보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비례와 신체미를 연상시키는 아도니스(Adonis) 룩, 고대 그리스풍 드레이프가 적용된 스케이터 룩,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시키는 화이트 가운 또한 만나볼 수 있었다.






쇼 공간은 ‘박물관 같은 장엄함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대리석 느낌의 계단형 구조 위해 복제한 고전 조각상이 자리했다. 로이터는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을 떠올리게 한다”며 “1921년 피렌체에서 탄생한 구찌의 기원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건축·디자인 매체 도무스(domus)는 이에 대해 “뎀나는 이탈리아와 르네상스 시대성을 기념비로 박제하지 않고 무대 장치(device)로 사용해 ‘이탈리아다움’이 표면·레퍼토리·시각 문법으로 기능하도록 연출했다”고 해석했다. 즉, 구찌의 역사적 상징을 박제하지 않고 연출 가능한 현재형 언어로 바꿔버린 것이다.
뎀나가 쇼 시작 전 레터를 통해 ‘헤리티지와 패션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며,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적었다. 이 둘이 공존하며 완벽히 서로를 채워줄 때 구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의상과 무대를 통해 뎀나는 그동안 아카이브 탐구를 통해 보여줬던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구찌 아카이브와 이탈리아 문화 유산이라는 정체성, 또 현재의 구찌가 서로 긴장하며 조화를 이루는 관계로 재배치했다.





런웨이 캣워크도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연출됐다. 칼리 클로스, 케이트 모스 같은 수퍼 모델들은 움직임 전문가 팻 보구슬라프스키의 지도를 받아 각자의 방식으로 걸었다. 정형화된 패션쇼의 ‘캣워크’라는 개념을 뒤틀어버렸다. 하기사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방식으로 걷진 않는다. 가장 현실적인 캣워크이자 마치 또 다른 안무 같은 생경함을 보여주는 것이 뎀나식 파격이었다.
옷만큼이나 캐스팅 자체도 화제였다. 해외 패션지 보그는 비비안 윌슨, 가브리에트, 알렉스 콘사니, 네트스펜드, 페이크밍크 같은 ‘디지털 It-kids’와 케이트 모스, 마리아카를라 보스코노 같은 수퍼 모델들이 런웨이를 장식한 것을 두고 ‘뎀나식 구찌 아키타입(집단 무의식 속 보편적인 이미지)의 제시’라고 해석했다. 전통적인 생태계 뿐만 아니라, 온라인 문화 권력을 흡수해 확장한다는 것이다.
데이즈드는 “브랜드의 새 시대가 소셜 미디어 리셋(인스타그램 wipe)으로 시작됐다” 전했다. 이번 프리마베라 쇼는 런웨이가 출발이 아닌, 온라인 피드부터 이미 시작된 쇼라는 것이다.
국내 스타들은 ‘1열’을 장식하며 또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구찌 글로벌 브랜드 앰버서더 박재범, 박규영, 스트레이 키즈 리노를 비롯해 에스파 닝닝 등이 참석했다. 또 데미 무어, 패리스 힐튼 등 다양한 할리우드 스타들도 현장을 빛냈다. 구찌의 ‘새로운 인구’를 정의하고 창출해낸 이번 ‘Primavera’는 런웨이에서 끝나지 않고, 피드에서 이미 시작된 쇼였다.
흥미로운 건, 이 쇼가 ‘개념 과잉’ 대신 매출 동력이 될 제품군을 노골적으로 전면 배치했다는 점이다. 아이코닉한 구찌 뱀부 1947(Gucci Bamboo 1947) 핸드백은 한층 슬림하게 재해석되었으며, 유연하게 이어 붙인 레더 조각으로 완성한 뱀부 핸들이 적용됐다.
하우스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은 미노디에르(minaudières) 클러치는 휴대전화와 필수 소지품을 수납할 수 있는 확장된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초미니멀한 농구화 실루엣과 모카신의 편안한 슬립-온 구조를 결합한 스니커즈, 레더 슈즈 특유의 단단한 느낌을 완화한 로퍼도 만나볼 수 있었다.
WWD는 “거의 모든 룩에 가방이 등장했고, Bamboo 1947의 볼륨 업데이트, 미니어처 아카이브 백, 스니커 등 액세서리의 공세가 이어졌다”면서 “섹시, 재미 같은 감정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매장으로 연결했다”고 밝혔다. 일부 아이템은 쇼 직후 바로 판매되는 방식이었다. 이를 두고 케어링 CEO 루카 데 메오가 이를 “속도와 역동성의 신호”라고 설명했다. 구찌를 ‘살아있는 문화’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뎀나는 옷으로 선언했다.
뎀나의 목표는 “구찌를 재미와 섹시, 에너지로 다시 ‘형용사’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뎀나의 선택은 ‘새로운 구찌’를 넘어 구찌를 시장의 중심으로 복귀시키는 시도였다. 쇼를 선보인 뒤 불과 몇 시간 동안 수많은 피드와 각종 댓글들이 생성되는 등, 구찌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현상만 보아도, 무척이나 감정적인 이번 쇼를 통해 뎀나는 고도의 지적인 게임을 즐기고 그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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