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손끝에서 시작된 신종 ‘연쇄살인’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2026. 2. 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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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로 유인해 수면제 섞은 약물 투여…20대 남성 2명 사망
AI 검색·SNS 접근 활용한 치밀한 범행…추가 피해 가능성

(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대한민국에서 '연쇄살인'이라는 단어는 한동안 박물관의 유물처럼 여겨졌다.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유영철·정남규·강호순의 그림자가 희미해지고, 사회 구석구석에 촘촘하게 깔린 폐쇄회로(CC)TV와 과학수사의 그물망 아래에서 광기 어린 연속 범죄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 안일한 평화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어두운 골목에서 무참히 깨져 나갔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비추던 모텔 객실, 그 고요한 정적 속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칙적인 괴물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도 우리 사회가 흔히 연상하는 '거구의 괴한'이 아닌, 소셜미디어(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여성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칼이나 둔기 대신 호감 어린 외모와 다정한 미소를 내세워 남성들을 유혹했고, 피해자들은 의심 없이 그가 건넨 독배를 들이켰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모텔에서 남성 2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 김아무개씨가 2월12일 서울북부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소환조사 늦춘 사이에 또 범행

1월28일 오후 9시24분쯤,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모텔 객실로 20대 후반의 남성 A씨와 한 여성이 들어섰다. 오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A씨와 함께 투숙했던 여성이 먼저 모텔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오후 2시쯤, 퇴실 시간이 지났는데도 A씨가 나오지 않자 모텔 직원이 인터폰을 눌렀는데 받지 않았다. 이를 수상히 여긴 모텔 직원이 마스터키를 들고 해당 객실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는 출입문을 여는 순간 기겁하고 말았다. 침대 위에는 A씨가 전날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 몸이 차갑게 식어 있었던 것이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으나 A씨 몸에서는 별다른 외상이 보이지 않았고,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경찰은 모텔 CCTV를 확인해 전날 함께 입실했던 여성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는 강북구 관내에 거주하는 김아무개씨(22)였다. 경찰은 단순 변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A씨를 긴급체포하지는 않았다.

대신 2월2일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했고, 김씨는 일주일 후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다 조사 사흘을 앞두고 경찰이 김씨에게 연락해 출석을 늦추자고 요구했다. 경찰의 수사선상에 있던 김씨는 2월9일 오후 8시40분쯤, 수유동의 또 다른 모텔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20대 중반의 남성 B씨와 함께였다. 약 2시간 후 김씨 혼자 모텔을 빠져나왔는데, 그의 오른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김씨는 다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음 날 오후 5시30분쯤, 퇴실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B씨가 나오지 않자 모텔 직원은 객실로 올라갔다가 B씨의 시신을 발견한다. 현장에는 맥주캔 몇 개와 B씨의 신분증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경찰은 CCTV 영상 등을 분석해 용의자를 특정했다. 이번에도 함께 투숙한 여성이 김씨라는 것을 알고는 상해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한다.

경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사건의 전말도 서서히 드러났다. 피해자들을 부검한 결과 이들의 시신에서는 수면제로 사용되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 다량 검출됐다. 김씨 집에서는 숙취해소제 여러 개와 다량의 향정신성의약품이 발견되는 등 미리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나왔다.

김씨는 경찰에서 "평소 남자들을 만나 편하게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피해자들과 의견 충돌이 생기자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숙취해소제에 넣어 건넸다"며 "죽을지도 몰랐고, 살해할 의사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씨의 범행은 이 두 건 외에 또 있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첫 번째 범행이었는데, 김씨에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남자친구 C씨가 있었다. 그런데 둘은 한 달쯤 만나다가 다투며 소원해졌다.

2월9일 김씨가 피해자와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 ⓒKBS 방송화면 캡처

고교 시절 절도 문제 일으켜 자퇴 전력

지난해 12월14일 김씨는 C씨에게 전화를 걸어 화해하자면서 만나자고 했다. 이날 오후 11시20분쯤 이들은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베이커리 카페 주차장에서 만났고, 김씨는 "하루종일 운전하느라 고생했다"며 C씨에게 수면제를 탄 피로회복제를 건넸다.

약 20분 후 카페에 있던 C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함께 있던 김씨가 놀라는 척하며 C씨 부모에게 연락했고, 다행히 C씨는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했다. 이후 C씨는 지난 1월말 김씨를 상해 혐의로 경찰에 진정을 넣었다.

C씨가 의식을 회복하자 김씨는 챗GPT에 '수면제랑 술을 같이 먹으면 어떤가' '얼마나 같이 먹으면 위험한가' '죽을 수도 있나' 등의 질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I는 음주 시 약물 복용의 위험성과 호흡곤란, 사망 가능성을 경고했다. 김씨에게 이 경고는 금지령이 아닌 '매뉴얼'이 된다. 이후 그는 약물의 양을 크게 늘리며 더욱 정교하게 조제해 A씨와 B씨에게 먹여 죽게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첫 번째 남자친구 사건은 본격적인 살인을 위한 '사전 실험' 단계라고 보고 있다. 김씨의 주장대로 단순히 재우려고 했다면 추가 범행에서 약물을 늘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김씨의 범행 수법은 갈수록 치밀해졌다. 그는 가방에 두 종류의 숙취해소제를 넣고 다녔다. 하나는 약물이 든 것, 다른 하나는 깨끗한 것. 피해자가 방심한 틈을 타 약물이 든 병만을 건넸고, 범행 후에는 그 빈병을 수거해 집으로 가져갔다. 현장에는 약물이 들지 않은 일반 숙취해소제 병만 남겨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김씨는 또 알리바이를 조작하려고 했다. A씨가 이미 의식을 잃었거나 사망한 시점에 "술에 너무 취해 계속 잠만 자니까 나는 먼저 갈게"라는 메시지를 A씨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두 번째 사망자인 B씨에게도 "치킨 주문하고 영화 보는데 갑자기 잠들었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음식 올 때쯤 깨우긴 했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수사기관 조사에서 "피해자가 살아있을 때 헤어졌다"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연출이었다. 김씨는 고의성을 계속 부인했으나 계획범죄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던 것이다. 경찰은 살해 고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의 혐의에 '살인'을 추가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경찰의 대응이다. 경찰은 1차 사망 사건 발생 후 이미 김씨의 신원을 특정했다. 그러나 조사 사흘을 앞두고 돌연 "증거 확보가 더 필요하다"며 소환 날짜를 스스로 늦췄다. 경찰이 "추가 증거 확보가 우선"이라며 조사를 미루는 사흘 사이, B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국과수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적극적인 신병 확보에 나서지 않은 '행정 편의주의'가 연쇄살인의 마지막 고리를 끊지 못한 셈이다.

김씨는 다양하게 남성들과 접촉했다. 남자친구와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알게 됐고, 사망한 남성들은 술집 등에서 알게 돼 한두 차례 만난 사이였다. 특히 김씨는 SNS 활동에 적극 나섰다. 하루에도 10여 개의 게시물을 올리면서 온라인 친구들을 늘렸고, 직접 팔로하고 댓글을 달고 메시지로 대화했다. 예쁘장한 외모와 다정한 말투에 남성들이 호감을 보냈고, 이 중에서 만남을 추진하거나 만났다. 

실제 김씨와 만났던 한 30대 남성은 김씨와 술을 마시다 그가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를 3만5000원어치나 구매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때 김씨가 "돈이 없으니 대신 결제해 달라"고 해서 대신 내주었다. 대전에 거주하는 한 남성은 "'서울에 간다'고 했더니 김씨가 '우리 집 근처로 숙소를 잡으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추가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 실제 지난달 강북구의 한 노래방에서 김씨가 건넨 숙취해소제를 마신 30대 남성이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다고 전해진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의아한 것은 범행 동기다. 이전의 연쇄살인은 거액의 금품을 노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김씨는 다르다. 첫 번째 사망자인 A씨에게는 "배달 전문 고기 맛집이 있는데 방 잡고 먹자"는 것이 전부였고, 두 번째 사망자에게는 13만원어치 치킨을 시켜 결제하게 한 뒤 약물을 먹였다. 김씨가 모텔에서 들고 나온 비닐봉지 안에는 A씨가 결제한 치킨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사망자들의 지갑이나 휴대전화 등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김씨는 고등학교 때 절도 혐의 등 문제를 일으켜 학교에서 자퇴했다. 이번 범행은 그의 성장 과정, 성격과 취향, 외모와 사치 욕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범행 이후 김씨는 피해자들에게 죄책감을 갖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의심됐다.

피해자와 피해자 지인이 나눈 카톡 대화 ⓒMBC 방송화면 캡처

체포 30분 전까지 셀카 사진 올리기도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온라인은 들끓었다. 김씨의 인스타그램 사진과 신상이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대중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김씨의 예쁜 외모에 매료돼 그의 범행을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면서 맹목적으로 추종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20대 여성의 평범하고도 화려한 외모 뒤에 숨겨진 잔혹성에 경악했다.

더욱 의아한 것은 경찰이다. 두 명을 살해하고 한 명에게 부상을 입혔는데도 "범행 수단의 잔혹성이 요건에 미달한다"며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칼로 찌르거나 시신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약물을 이용한 계획적 연쇄살인은 그 어떤 물리적 폭력보다 비열한 수법이다. 특히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신상 비공개는 제보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거세다.

김씨는 체포되기 30분 전까지도 셀카 사진을 올리며 소통에 집착했다. 그에게 타인의 생명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잠시 '재워둬야 할' 소모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사회적 병리 현상을 담고 있다. 정신과 처방약의 손쉬운 오남용, SNS를 통한 목적 불분명한 만남의 위험성, 그리고 기술(AI)을 범행의 도구로 삼는 신종 범죄의 출현까지.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마주한 것은 '평범함의 악마성'이다. 우리 곁에서 웃고, '좋아요'를 누르고, 다정한 손길로 건네던 숙취해소제가 언제든 독배로 변할 수 있다는 공포. 경찰의 뒤늦은 긴급체포와 신상 비공개 결정 사이에서, 유족들의 통곡은 강북구의 차가운 모텔 골목에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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