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심석희는 화해했는데…임효준·황대헌 악연은 왜 멈추지 않나

김경무 스포츠 칼럼니스트 2026. 2. 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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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에서 재소환된 한국 쇼트트랙의 우울한 기억
빙상연맹의 일관성 없는 대응이 갈등의 불씨 남겨

(시사저널=김경무 스포츠 칼럼니스트)

'임효준'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한국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아픈 손가락'이다. 몇 년 전 중국으로 귀화해 '린샤오쥔'으로 변신한 임효준. 그와 대표팀 후배였던 황대헌의 7년 전 시작된 악연은 지난 2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통해 다시 소환됐다. 시간이 흘러도, 올림픽만 열리면 왜 사람들은 둘의 과거 질긴 악연을 언급하게 되는 걸까. 그것은 정녕 끊어낼 수 없는 걸까. 

8년 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로 돌아가보자. 당시 22세로 한국체대 소속이었던 임효준은 쇼트트랙 남자 1500m와 500m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는 감격을 맛봤다. 한국 남자팀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해낸 쾌거였다. 무엇보다 선수생활 중 정강이뼈·발목·손목·허리 부상 등으로 무려 7번이나 수술대에 오르는 고난 끝에 일궈낸 금메달이어서 "인간 승리"라는 찬사도 나왔다. 그리고 전 대회였던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때 노메달에 그쳤던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자존심을 되살린 것이기에 그 가치는 더했다.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 황대헌 ⓒ뉴시스·연합뉴스

황대헌, 남자팀 에이스 박지원과도 충돌 

그러나 2019년 6월, 진천선수촌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벌어진 이른바 '바지 내리기 사건'이 임효준의 쇼트트랙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빙상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당시 일부 선수 사이에 장난이 오갔다. 그리고 황대헌이 줄을 타고 '클라이밍 로프'에 오르자 선배 임효준이 장난스럽게 그의 반바지를 잡아당겼고, 순간 엉덩이 일부가 노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황대헌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돌연 신고하면서 장난은 엄청난 사건으로 확대됐고, 임효준은 하루아침에 동성 간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결국 논란 끝에 임효준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 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또한 1심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돼 그는 파국을 맞게 됐다.

이후 시간이 지나 임효준은 2심과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고 성추행범 오명을 벗었다. 하지만 쇼트트랙을 계속하기 위해 이미 중국으로 귀화해 '린샤오쥔'이 된 뒤의 일이었다. 한국 쇼트트랙으로서는 한 시대를 풍미할 재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과연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정확하고 엄격한 조사를 통해 임효준에게 그런 중징계를 내렸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만일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어떻게 됐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뼈아픈 질문으로 남는다.

아무튼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중국 대표팀은 30살이 된 린샤오쥔(임효준)의 존재에도 남녀 통틀어 은메달 1개(남자 1000m 쑨룽)에 그치는 등 최악의 성적을 냈다. 한국도 남자의 경우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황대헌의 남자 1500m 은메달, 남자 5000m 계주 은메달, 임종언의 남자 1000m 동메달이 전부였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악연은 황대헌-임효준의 경우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국내외 대회에서 잦은 무리한 충돌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황대헌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남자팀 에이스이자 경쟁자인 박지원과도 이런 충돌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일부 팬으로부터는 아직도 '반칙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시리즈 남자부 종합우승으로 두 번씩이나 '크리스털 글로브' 영예를 안았던 박지원은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국가대표팀에서 결국 탈락하게 됐다. 그러나 대한빙상경기연맹은 황대헌의 다소 무리해 보이는 '팀킬' 행위에 대해 어떤 경고나 주의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쇼트트랙 경기를 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과거 임효준에 대해 발빠르게 내렸던 중징계와는 대비돼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어쨌든 한국 남자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박지원 같은 확실한 에이스의 부재를 절감했다. 특히 팀워크가 절실한 계주에서는 더욱 그랬다. 준결승까지 좋은 레이스로 결승에 올랐지만, 레이스 막판 이정민의 1위 탈환 역주에도 황대헌이 선두 자리를 내주면서 3위로 밀렸다. 다행히 황대헌의 막판 스퍼트로 은메달을 따낼 수 있었지만, 모처럼 찾아온 우승 탈환의 기회를 놓친 부분에 대해 아쉬워하는 팬도 적지 않다.

심석희가 2월14일(현지시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준결승에서 최민정을 밀어주고 있다. ⓒ뉴시스

불편한 관계였던 심석희-최민정의 합작품으로 女계주 '우승'

이에 반해 이번에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보여준 심석희·최민정·김길리·노도희의 아름다운 금빛 질주, 그리고 쇼트트랙 마지막 경기인 여자 1500m 결승에서 최민정이 자신을 우상으로 여기며 성장해온 후배 김길리와 치열한 선두 다툼 와중에도 무리하지 않는 레이스로 금·은메달을 합작하던 장면은 길이길이 명장면으로 회자될 듯하다. 

사실 심석희와 최민정의 악연도 임효준·황대헌에 못지않았다. 시작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였다. 여자 1000m 결승에서 두 선수가 충돌해 함께 넘어진 사건은, 2021년 심석희가 당시 코치와 나눈 사적인 메시지가 폭로돼 '고의 충돌' 의혹이라는 메가톤급 폭풍으로 변했다.

특히 메시지 속에 심석희의 좋지 않은 의도가 드러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심석희는 자격 정지 처분을 받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나가지 못했다. 계주에서 두 번씩(2014년, 2018년)이나 금메달을 딴 심석희의 부재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으로서는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한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네덜란드에 밀려 계주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8년 동안 지속된 최민정과 심석희의 불편한 관계는 최민정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심석희→최민정→김길리 등으로 이어지는 골든 멤버가 여자 계주에서 형성됐고, 이는 감격적인 금메달로 결실을 맺었다. 특히 레이스 막판 힘이 좋은 심석희가 최민정의 엉덩이를 힘차게 밀어주면서 한국팀이 2위를 탈환했고, 마지막 주자 김길리가 놀라운 인코너 돌파로 이탈리아의 아리안나 폰타나를 제치며 1위로 나서면서 이를 악물고 골인하는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완성됐다.

경기 뒤 최민정과 김길리가 서로 뒤엉켜 금메달 기쁨을 만끽하는 사이, 심석희가 혼자 빙판 위에서 허리를 숙여 눈물을 흘리는 짠한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후 계주 출전 선수들은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 서로 잘했다고 격려하며 함박웃음 꽃을 피웠다. 심석희는 "(최민정이) 올림픽에서 개인전을 준비하는 것도 힘든데, 계주까지 개인전보다 더 생각해줘 고마웠다. 주장으로서 책임감과 힘든 게 많았을 텐데 그런 부분까지 많이 노력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고 후배 최민정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최민정 또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화답했다.

사실 한국 쇼트트랙은 세계 정상급이었지만 올림픽 때만 되면 좋지 않은 일이 터지는 등 불안한 화약고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 여자대표팀이 보여준 화해의 드라마는 진한 감동을 선사했고, 남자대표팀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여자대표팀이 보여준 것은 관계의 복원이었다. 앞으로 더는 임효준·황대헌 같은 사례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대표팀 선수 관리에 더 엄정해져야 한다. 여론 눈치를 살피느라 누구는 봐주고, 누구한테는 중징계를 내리는 원칙 없는 행태가 더는 나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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