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사려는 남자들의 긴 줄…지루했던 사내들은 서로 탱고를 췄다 [히코노미]
돈은 묵직할수록 중력이 셌다. 졸지에 부가 쏟아진 도시엔 한몫 챙겨보려는 남자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항구에는 매일같이 사내들이 몰려들어서, 도시에 여자라고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극단적 남초사회였다.
몸이 달아오른 남자들은, 머리가 긴 사람이다 싶으면, 헤벌쭉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비누 향에 배꼽 아래가 간지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약삭빠른 인간들은 여자를 팔아 큰돈을 챙길 궁리를 했는데, 이 더러운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매춘 업소를 열자마자 남자들로 법석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포주들은 제 차례를 기다리는 사내들을 달래야 했다. 악사에게 악기를 켜게 했는데, 손님들은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탱고’의 시작. 돈이 넘쳐흘러서, 돈 냄새를 맡고 찾아온 수많은 이민자들로 복대겼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이곳의 경제사는 탱고만큼이나 강렬하고, 처연한 것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름처럼 좋은(Bueno, 스페인어로 좋은) 공기(Aires·공기)로 가득했다. 독립국은 애국심이나 치기로만 세워지지 않는 법이어서 도로, 철도, 상하수도와 같은 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했다. 이 돈을 대겠다고 나선 건 영국의 투자자들이었다. 영국 투자은행 베어링 브라더스는 1824년 아르헨티나에 100만 파운드 돈을 빌려줬다. 아르헨티나는 초원에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소와 양을 길렀고, 도시에 영국인이 좋아하는 맥주를 팔았으며, 영국인이 죽고 못 사는 축구장을 지어댔다. 가톨릭 국가였던 아르헨티나에 영국을 위한 개신교 교회가 세워질 정도였다.

때려도 묵묵한 아르헨티나가 기특해서, 영국은 더 많은 투자로 보답했다. 광활한 영토에 영국이 주도한 철도가 깔리고, 방방곡곡 도시가 들어서자, 아르헨티나는 보다 늠름해졌다. 영국도 이를 기껍게 바라봤는데, 아르헨티나의 이익이 영국의 이익이 될 수 있어서였다. 아르헨티나의 기차는 영국의 석탄을 먹고 달렸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행여 형님의 심기가 불편할까 싶어 영국 철도 회사들에게 수익률을 보장하는 법까지 통과시켰다.

목조 주택이 석조 저택으로 바뀌고, 거적때기를 걸치던 시민들은 정장을 빼입었다.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40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6%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로 불렸다. 세계 10대 부국의 명단에 아르헨티나가 들어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과 어깨를 견줬다. 유럽의 사교계에는 “Riche comme un Argentin”(아르헨티나 사람처럼 부유하다)는 조어가 유행했다.


거대 함선에서 내리는 남자들이 처음 목도한 것은 도시에 가득한 남자였다. 극단적 남초 도시에서, 새로 온 이민자들은, 모골이 송연했다. 영락없이 총각 귀신으로 죽어야 할 운명을 직감해서였다. 이때부터였다. 매춘의 씨앗이 고약하게 발아하고 있었던 건.

지어도 지어도 손님들로 들끓어서, 포주들은 전문적으로 동유럽에서 인신매매 단체(즈위 미그달)를 굴리기도 했다. 괜찮은 신랑감을 소개해주겠다는 말에, 높은 임금의 일자리를 주겠다는 말에, 동유럽의 여성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윤락 여성으로 팔려나갔다.

아르헨티나는 영국의 제6 자치령으로 불렸다. 영국이 기침하면, 아르헨티나는 폐렴을 앓았다. 영국 베어링 브라더스 은행 파산 위기로 런던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아르헨티나는 10년 동안 경제 불황에 시달렸다.

영국산 석탄에 무관세를 부여하고, 영국계 철도와 트램 회사에 수익을 확대 보장하며, 외환 수입을 영국 채무 변제에 먼저 할당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국 육류 수출의 유통 권한을 영국 냉장 회사들에 공식적으로 위임했다. 이 나라의 지도자가 아르헨티나의 리더인지, 아니면 영국의 총독인지, 시민들은 헷갈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질서가 새로 서게 되었을 때, 아르헨티나도 새출발하고 싶었다. 진저리가 나는 영국과의 관계를 끊고 싶어서, 대통령을 새로 세웠다. 대표적 반영주의자 후안 페론이었다. 지지자들의 열화에 페론도 몸이 달아서 1946년 취임 일성으로 “경제 해방”을 선언했다.

아르헨티나는 웃지 못했다. 페론이 사들인 철도는 고물에 가까웠다. 세계의 수출 창고로 빛나던 시절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시골의 물건을 도시로 옮기는 정도에 불과했다. 매년 막대한 적자가 쌓여갔다.
페론은 국부를 희생해, 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는 정치인이었다. 빚이 쌓여서, 경제가 어려워지자, 국고를 풀어 노동자들의 배를 불렸다. 후대 학자들은 이를 포퓰리즘, 페론주의라고 불렀다. 수익이 없고, 복지만 가득한 곳에서, 기업이 남아 날 리가 없는 법이어서, 영국의 기업들은 시나브로 짐을 싸고돌아 갔다. 페론은 의기양양했다. 민간 기업이 없으면, 공공기관을 세워서 시민을 채용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아르헨티나는 침몰하고 있었다.

위기에 몰릴 때, 남 탓만큼 좋은 탈출구는 없는 법이어서, 군부는 “이 모든 게 영국 탓”이라면서, 군사를 일으켰다. 아르헨티나 앞 바다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영국령 포클랜드를 공격했다(1982년 포클랜드 전쟁).

대처의 영국군은 대서양을 건너와야 하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아르헨티나군을 손쉽게 요리했다. 74일의 교전 끝에 아르헨티나는 항복을 선언했다. 군부는 경제도 못 하고, 전쟁도 못 하는 맹꽁이에 가까웠다. 대처는 이 승리를 기반으로 분열된 영국을 통합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여전히 넓게 퍼진 안갯 속이다. 그들에게 남은 건 탱고와 축구와 소고기. 영국의 유산뿐이었다.

ㅇ아르헨티나는 독립 직후 영국과 특수관계를 맺고 경제를 발전 시켰다.
ㅇ한 때, 남미의 파리로 불릴 정도로 크게 번성했으나, 영국에 경제적 종속도 심화됐다.
ㅇ결국 후안 페론 대통령이 자립을 선언했으나, 경제는 오히려 고꾸라졌다.
ㅇ아르헨티나는 위기 타개책으로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으나, 잉글랜드에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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