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제동, 트럼프는 가속…관세전쟁 2라운드의 서막
동맹국·시장 모두 긴장…정책 불확실성 다시 최고조
(시사저널=김하늬 미국 통신원)
'관세'로 시작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다시 쳇바퀴를 돌고 있다. 지난해 4월 '해방의 날' 선언과 함께 포문을 연 관세전쟁은 새해 들어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모양새다. 물론 1년여 동안 숱한 충돌과 협상, 소송과 보복이 오갔지만 변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관세는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사회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짙어졌다. 법적 공방과 정책 재설계, 정치적 계산이 복잡하게 얽히며 트럼프의 관세 드라이브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사법적 경고'를 받은 대통령이 한층 더 당당하게 강행 의지를 밝히는 상황에서 미국 경제와 정치의 향방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2월20일(현지시간) 연방대법원은 6대3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전면적 관세를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IEEPA가 대통령에게 '수입을 규제(regulate)'할 권한을 부여했을 뿐, 관세를 부과할 권한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관세는 세금이며 과세 권한은 헌법상 의회에 속한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트럼프 2기 이후 가장 뼈아픈 패배"
이번 판결은 단순히 '관세가 맞냐 틀리냐'를 가리는 통상 정책 논쟁을 넘는다. 대통령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의회의 권한인지, 그 선을 다시 분명히 그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보수 성향이 다수를 차지한 대법원이 마침내 대통령의 군주적 태도에 경계를 설정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다수 의견에 합류한 점을 들며 "두 명의 지명자가 등을 돌렸다"고 분석했다. 보수 법원이 더 이상 백악관의 광범위한 행정권 확대에 자동적으로 동조하지 않겠다는 신호라는 해석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를 "트럼프 2기 이후 가장 뼈아픈 패배"라고 표현했다. 동시에 대법원이 '중대 쟁점 원칙'을 적용해 막대한 경제·정치적 파급력을 지닌 조치는 의회의 명확한 승인 없이는 허용될 수 없다고 본 점을 강조했다. 이 원칙은 과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학자금 정책에 제동을 걸 때 보수 대법관들이 활용했던 논리다. 이번에는 그 잣대가 트럼프에게 적용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즉각 반격에 나섰다. 사법부의 제동에도 관세 기조를 오히려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판결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10%의 글로벌 관세를 발표했고, 하루 만에 이를 1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2월24일 국정연설에서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관세가 될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다른 나라들이 내는 관세가 지금의 소득세 제도를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를 단순한 통상 수단이 아니라 재정·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무역법 122조는 5개월짜리 가교(bridge)"라며 301조와 232조 조사를 병행해 구조적 재편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도 "일부 국가는 15%, 다른 국가는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122조는 150일 한시 조치인 만큼, 그사이 301조 조사 등을 통해 국가별 고율 관세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산이다. 반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트럼프와 베센트가 이끄는 경제는 '덤 앤 더머(멍청이와 더 멍청이)'"라고 직격했다.
동맹국들은 301조·232조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인상이 이뤄질지 주시하고 있다. IMF 전 수석부총재 기타 고피나스는 "150일 관세는 무역적자를 지속적으로 줄이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수입업자들이 관세를 피하기 위해 구매 시점을 조정하면서 또 한 번의 변동성 높은 무역 통계가 나타날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인 64%가 트럼프 관세 정책에 반대
전문가들은 그나마 글로벌 경제에 다행인 점은 이러한 대안적 경로들이 IEEPA보다 더 많은 제약과 절차적 장벽을 수반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럼에도 기업들은 자신들이 어떤 세율을 언제 적용받게 될지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면서 '마비적인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트럼프의 전략이 국내 정치 환경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ABC뉴스·워싱턴포스트·입소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4%가 트럼프의 관세 조치에 반대했다. 찬성은 34%에 그쳤다. 인플레이션 대응에 대한 부정 평가는 65%에 달했다. 관세와 물가 문제가 대통령 지지율을 잠식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9%, 부정 평가는 60%로 집계됐다.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1%가 "트럼프가 나이가 들면서 변덕스러워지고 있다"고 답했다. 45%만이 그가 "정신적으로 예리하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내부의 미묘한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대법원 판결에서 세 명의 보수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냈지만, 다수는 대통령 권한의 한계를 인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보수 법원이 대통령의 관세 권한을 무제한적으로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공개적으로는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의 정치적 부담을 의식하는 기색도 읽힌다.
환급 문제는 또 다른 뇌관이다. 펜-와튼 예산모형은 IEEPA 기반 관세로 1750억 달러 이상이 징수됐다고 추산한다. 대법원은 환급 의무 여부를 명시하지 않았다. 만약 대규모 환급이 현실화할 경우 재정적자 관리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미 미국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6%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이제 트럼프의 자칭 '관세맨'의 불안정한 제조업 부흥 구상에 제동을 걸 무게추는 점점 더 의회로 이동하고 있다. 사법부가 헌법적 한계를 분명히 그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법적 경로를 동원해 관세를 재구성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 정가와 월가, 기업,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안도보다 혼란과 피로감이 더 짙어지고 있다.
이번 판결이 트럼프 행정부의 전반적인 보호무역 기조를 단번에 되돌려 세우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속도 조절 장치'는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향후 관세의 향방은 법률 해석을 넘어 정치의 문제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중간선거를 앞둔 의회가 고물가와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 어디까지 대통령에게 권한을 위임할지, 혹은 일정 부분 제동을 걸지. 사법부가 그은 선 위에서 이제 공은 의회와 유권자의 판단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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