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설산 너머에서 박노해가 본 마지막 풍경들 [카메라 워크 K]

김창길 기자 2026. 2. 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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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날듯이 The Colca Caynon, Central Andes, Peru, 2010. ⓒ박노해

알프스에 오른 철학자 니체는 10년 동안 동굴에서 칩거하던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를 만난다. 구름보다 높은 안데스에 오른 시인 박노해는, 아니 사진작가 박노해는 아이들을 만난다. 단단하고 동글동글한 감자알 같은 아이들.

“그 작고 둥근 몸과 마음은 생기 찬 탄력이다.”

순백의 산봉우리에 둘러싸힌 파키스탄 훈자 마을에서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사과를 딸 때면 꼭 눈 맞는 청춘 남녀가 있어 수확이 끝나면 풍성한 결혼 자치가 벌어진다.”

에티오피아 라스타 산맥에서는 물 긷는 여인을 만나고, 페루의 콜카 계곡에서는 야생화 너머에 콘도르를 만난다. 하얀 설산 너머 또 설산이 펼쳐지는 곳에서 지친 박노해를 맞이한 건 지붕 없는 카페. 박노해는 작은 카페에 앉아 마음을 녹인다.

“거대한 설산이 한 장의 찻물로 내려지고

흐르는 구름은 가만히 찻잔을 맴돌고

고요가 어리고 미소가 번지고 힘이 차오르고.“

14년 동안 박노해의 사진을 보여주던 전시 공간 ‘라 카페 갤러리’에서 마지막 전시가 진행 중이다. 세계의 높고 깊은 곳에서 찍고 쓴 사진과 글을 모은 <산빛>전이다.

라 카페 갤러리는 2012년 문을 열고 2019년에 서촌으로 이전했다. 2층에서 박노해의 사진을 감상하는 건 무료. 하지만 급격한 임대료 인상으로 이 공간을 지속하기 어려워 오는 3월 29일에 문을 닫는다. 운영이 어려웠다면 유료 전환을 고민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박노해가 몸담은 ‘나눔문화’의 철학과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거 같아 고개를 주억거린다.

“혼란한 세상 가운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던 라 카페 갤러리에 남겨 놓은 시인이자, 사진작가이자, 혁명가 박노해의 문장 중 하나를 옮겨 적는다.

“내 안의 산 같은 믿음이 흔들리고 사랑의 빛이 희미해질 때

이 ‘산빛’을 따라 걸으며 그대 안에도 산빛이 눈부시게 비추기를.”

길 위의 카페 Pakistan, 2011. ⓒ박노해
안데스 산정의 아이들 Peru, 2010. ⓒ박노해
훈자 마을 사과 수확 Pakistan, 2011. ⓒ박노해
훈자 마을 사과 수확 Pakistan, 2011. ⓒ박노해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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