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벽 사이를 걷다 — 2·28 이후의 대만 그리고 한국의 계엄

이상헌 기자 2026. 2. 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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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지 않는 징메이의 오후
계엄은 선언 아닌 인프라로 남아
길은 가운데를 비워 둔 채 양쪽의 방들을 연결한다. 창은 닫혀 있지만 빛의 방향은 남아 있고, 나무 한 그루가 시간의 중심처럼 서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공간은 지나간 기억만을 조용히 유지한다. / 이상헌 기자

조용한 그곳엔 둘뿐이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눈 앞의 장면이 설명을 대신했다. 춘절 기간 도시 대부분이 쉬고 있었고 기억 역시 잠시 뒤로 밀린 듯 보였다. 모두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공백 속에서 공간은 더 또렷해졌다. 바람은 통로를 따라 곧게 흘렀고, 벽은 반사 대신 흡수로 응답했다. 군 시설 특유의 정리된 공기. 사건의 격렬함보다 관리의 정숙함이 느껴졌다.

타이베이 남쪽, 2·28 국가인권박물관 징메이 백색테러경관기념구. 이곳의 첫 인상은 폭발의 흔적보다 전환의 흔적이었다. 폭력은 순간을 남기고, 체계는 시간을 남긴다. 이곳은 그 시간이 눌어붙은 자리였다.

통로는 좁고 건물은 낮다. 창은 반복되고 출입구는 기능별로 갈라진다. 병사 숙소, 훈련 공간, 관리 구역이 뚜렷하게 분할돼 있다. 건물은 비어 있어도 설계는 여전히 작동한다. 국가가 시민을 '권리의 주체'로 다루는 방식과 '관리의 대상'으로 다루는 방식은 공간에서 곧장 드러난다. 어디에 세우고, 어디로 걷게 하고, 어떤 시야에 노출시키는지. 감금보다 배열이 먼저다. 폭력의 도구는 총보다 동선에 오래 남는다.
병사(兵舍)의 닫힌 문 앞에 작은 차양만 남아 있었다. 생활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방의 배열은 그대로였고, 병영이라는 이름이 개인보다 질서를 먼저 불러냈다. 비어 있는 공간이 오히려 사용되던 시간을 또렷하게 증명했다. /  호잉띵

1947년 2월 28일은 하루의 사건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행정의 언어가 군정의 언어로 이동하고, 불만이 의견의 범주를 벗어나 치안의 범주로 재분류되며, 시민이 권리의 좌표에서 위험의 좌표로 옮겨지는 순간. 이후 이어진 계엄은 단절된 조치가 아닌 재배치의 연속이다. 폭력은 기록의 표면에서 짧게 보이고 운영은 생활의 깊은 층에서 길게 지속된다. 

걷기 시작하면 숫자는 뒤로 밀린다. 대신 경로가 남는다. 어디서 집결했고, 어디서 분리됐고, 어디에서 기록이 작성됐는지. 감시는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방식보다 이동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직선으로 뻗은 길, 사각지대가 적은 시야, 겹치지 않게 분리된 출입구. 공간은 '숨김'을 어렵게 만들고 '노출'을 기본값으로 둔다. 통치는 물리적 힘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가시성을 설계하는 순간, 통치는 일상의 습관이 된다.
높은 담장과 철조망, 반복되는 격자 벽은 단절보다 관리의 방식을 보여준다. 외부와 내부를 나누는 선은 물리적 경계이면서 기록과 감시가 작동하던 좌표였다. 비어 있는 마당과 정리된 수목은 폭력의 장면보다 체계의 시간을 드러내며, 계엄이 사건이 아니라 공간으로 남는 과정을 조용히 증언한다. / 이상헌 기자

통로의 각도, 벽의 질감, 출입구의 반복, 창의 높이. 눈앞에서 크게 일어나는 장면보다, 매일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장치들이 더 무겁게 남는다. 유리창과 철문, 낮은 창문, 얇은 벽, 규격화된 방 구조. 대규모 학살의 현장이라는 문장보다 '지속 가능한 관리 시스템'이라는 감각이 먼저 밀려왔다. 억압은 순간의 총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점호와 기록, 보고와 승인, 이동과 대기. 그 반복이 체계를 만든다. 체계가 생활을 장악하면 기억도 폭발적 장면보다 일상의 결로 남는다.

38년 두 개의 시간을 살았던 대만
제도적 가능성 여전히 잠복한 韓

2·28 이후 대만은 두 개의 시간을 살았다. 공식 시간과 금기의 시간. 공식 기록은 질서와 안정의 언어를 남기고, 금기의 시간은 체포와 심문, 침묵의 생활을 남겼다. 사건은 사라진 적이 없다. 사건을 말할 좌표가 바뀌었을 뿐이다. 언어는 존재해도 공적 공간이 닫히면 언어는 닿을 곳을 잃는다. 억압의 핵심은 표현을 막는 손보다, 표현이 도달할 공적 좌표를 거두는 방식에 있다.

이곳의 건물들은 기능을 잃었어도 구조를 유지한다. 군, 경찰, 행정, 기록 체계가 한 덩어리로 결합된 물리적 흔적. 그래서 계엄은 선언이 아닌 인프라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통신망, 통제선, 보고 체계, 이동 경로. 한 번 구축된 예외의 장치는 쉽게 해체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의 장치처럼 보이던 것들이 어느 순간 '위기를 관리하는 체제'의 일부로 편입된다. 사건이 설비로 바뀌는 순간, 정치의 시간은 길어진다.
끝없이 이어진 이름들은 사건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씩 존재했음을 반복해 증명했다. / 이상헌 기자

2년 전 한국에서 벌어진 계엄은 다른 형태로 남아 있다. 장기화된 통치의 형태로 굳어지지 않은 대신, 제도적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 실행된 기억보다 실행 가능한 옵션이 가진 의미가 크다. 민주주의는 그 옵션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비상용 도구로 유지되는가, 잠재적 통치 방식으로 스며드는가. 이 차이는 선언문에서보다 운영에서 확인된다.

비극의 현장을 걷다 보면 비교는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국가가 위기를 설명할 때 쓰는 언어는 국경을 넘는다. 질서, 안정, 국가 보존, 공공의 이익. 단어는 비슷하고, 달라지는 것은 시간의 길이다. 예외가 며칠로 끝나는지, 수십 년으로 이어지는지. 정상으로 복귀하는 기준을 누가 설정하는지. 예외의 지속 기간이 곧 체제의 성격을 드러낸다.

대만의 경험은 예외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는 방식을 보여줬다. 윤석열 정부 사례에서 보듯 계엄은 시작보다 종료가 더 정치적이다. 시작은 위기 설명으로 가능하지만 종료는 권력의 재배치를 요구한다. 기록을 공개하며 책임을 묻는 과정이 따라온다. 마지막에 남는 건 정리의 흔적이다.

안내판과 전시 설명, 보존된 공간, 해설 프로그램. 과거 국가의 행위를 현재 국가가 기록하는 상태. 기억의 제도화는 민주주의의 단계다. 삭제 대신 전시를 선택하는 방식, 침묵 대신 해설을 선택하는 방식. 사건의 크기보다 사후 처리 방식이 현재 체제를 설명한다. 기억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서 정체 체제의 성격이 보인다.

걷는 동안 반복해서 떠오른 생각은 단순했다. 계엄은 역사적 유물이 아닌 구조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국가는 필요할 때 규칙을 잠시 접는 장치를 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장치의 존재보다 시민의 인식이다. 인식이 높을수록 억제가 가능해지고, 통제가 가능해진다. 민주주의는 장치를 없애는 방식보다 장치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지속된다.
기둥과 계단이 교차하는 콘크리트 틈 사이로 나무가 자라며 시간의 층위를 겹쳐 놓는다. 기능을 위해 설계된 구조는 비어 있는 동선 속에서 기억의 틀로 남고, 자연은 그 위를 덮지 않고 함께 머문다. 사람의 움직임이 사라진 자리에서 공간은 침묵으로 형태를 유지한다. / 이상헌 기자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선택지가 적어 보인다. 그럼에도 지금 이 공간은 개방돼 있다. 문이 열려 있고 기록이 공개되고 설명이 덧붙는다. 동일한 물리적 구조가 어제와 오늘 전혀 다른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는 공간의 의미를 전환하는 체제다.

너무나도 슬픈 곳이지만 한 번은 직접 걸어봐야 한다는 말이 먼저였다. 기념관 전시 구역 일부는 보수 공사 중이었다. 설명보다 빈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완결된 전시 대신 뼈대만 남은 건물들이 이어졌다. 아무도 없는 곳이기에 더 오래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시 오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 번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2·28 사건 = 1947년 2월 28일 대만에서 발생한 민중 봉기를 계기로 시작된 대규모 정치적 충돌과 국가 폭력 사태를 가리킨다. 일본 식민지 지배가 끝난 뒤 대만을 통치하게 된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행정 부패와 경제 혼란, 본토에서 이주한 관료·군 중심 통치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단속 과정의 충돌이 시위로 확산됐다. 정부는 이를 치안 문제로 규정하고 군 병력을 투입해 진압에 나섰고, 이후 수개월 동안 체포·처형·실종이 이어지며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단일 폭력 사태에 그치지 않고 이후 장기 계엄과 '백색테러'로 이어지는 통치 체제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정치적 반대 세력과 지식인, 지역 지도층이 집중적으로 탄압되면서 사건 자체는 오랜 기간 금기 기억으로 남았다.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진상 조사와 공식 사과가 진행되며 2·28 사건은 대만 민주화 과정과 국가 폭력 책임 논의를 상징하는 역사적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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