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벽 사이를 걷다 — 2·28 이후의 대만 그리고 한국의 계엄
계엄은 선언 아닌 인프라로 남아

조용한 그곳엔 둘뿐이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눈 앞의 장면이 설명을 대신했다. 춘절 기간 도시 대부분이 쉬고 있었고 기억 역시 잠시 뒤로 밀린 듯 보였다. 모두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공백 속에서 공간은 더 또렷해졌다. 바람은 통로를 따라 곧게 흘렀고, 벽은 반사 대신 흡수로 응답했다. 군 시설 특유의 정리된 공기. 사건의 격렬함보다 관리의 정숙함이 느껴졌다.
타이베이 남쪽, 2·28 국가인권박물관 징메이 백색테러경관기념구. 이곳의 첫 인상은 폭발의 흔적보다 전환의 흔적이었다. 폭력은 순간을 남기고, 체계는 시간을 남긴다. 이곳은 그 시간이 눌어붙은 자리였다.

1947년 2월 28일은 하루의 사건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행정의 언어가 군정의 언어로 이동하고, 불만이 의견의 범주를 벗어나 치안의 범주로 재분류되며, 시민이 권리의 좌표에서 위험의 좌표로 옮겨지는 순간. 이후 이어진 계엄은 단절된 조치가 아닌 재배치의 연속이다. 폭력은 기록의 표면에서 짧게 보이고 운영은 생활의 깊은 층에서 길게 지속된다.

통로의 각도, 벽의 질감, 출입구의 반복, 창의 높이. 눈앞에서 크게 일어나는 장면보다, 매일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장치들이 더 무겁게 남는다. 유리창과 철문, 낮은 창문, 얇은 벽, 규격화된 방 구조. 대규모 학살의 현장이라는 문장보다 '지속 가능한 관리 시스템'이라는 감각이 먼저 밀려왔다. 억압은 순간의 총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점호와 기록, 보고와 승인, 이동과 대기. 그 반복이 체계를 만든다. 체계가 생활을 장악하면 기억도 폭발적 장면보다 일상의 결로 남는다.
38년 두 개의 시간을 살았던 대만
제도적 가능성 여전히 잠복한 韓
2·28 이후 대만은 두 개의 시간을 살았다. 공식 시간과 금기의 시간. 공식 기록은 질서와 안정의 언어를 남기고, 금기의 시간은 체포와 심문, 침묵의 생활을 남겼다. 사건은 사라진 적이 없다. 사건을 말할 좌표가 바뀌었을 뿐이다. 언어는 존재해도 공적 공간이 닫히면 언어는 닿을 곳을 잃는다. 억압의 핵심은 표현을 막는 손보다, 표현이 도달할 공적 좌표를 거두는 방식에 있다.

2년 전 한국에서 벌어진 계엄은 다른 형태로 남아 있다. 장기화된 통치의 형태로 굳어지지 않은 대신, 제도적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 실행된 기억보다 실행 가능한 옵션이 가진 의미가 크다. 민주주의는 그 옵션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비상용 도구로 유지되는가, 잠재적 통치 방식으로 스며드는가. 이 차이는 선언문에서보다 운영에서 확인된다.
비극의 현장을 걷다 보면 비교는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국가가 위기를 설명할 때 쓰는 언어는 국경을 넘는다. 질서, 안정, 국가 보존, 공공의 이익. 단어는 비슷하고, 달라지는 것은 시간의 길이다. 예외가 며칠로 끝나는지, 수십 년으로 이어지는지. 정상으로 복귀하는 기준을 누가 설정하는지. 예외의 지속 기간이 곧 체제의 성격을 드러낸다.
대만의 경험은 예외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는 방식을 보여줬다. 윤석열 정부 사례에서 보듯 계엄은 시작보다 종료가 더 정치적이다. 시작은 위기 설명으로 가능하지만 종료는 권력의 재배치를 요구한다. 기록을 공개하며 책임을 묻는 과정이 따라온다. 마지막에 남는 건 정리의 흔적이다.
안내판과 전시 설명, 보존된 공간, 해설 프로그램. 과거 국가의 행위를 현재 국가가 기록하는 상태. 기억의 제도화는 민주주의의 단계다. 삭제 대신 전시를 선택하는 방식, 침묵 대신 해설을 선택하는 방식. 사건의 크기보다 사후 처리 방식이 현재 체제를 설명한다. 기억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서 정체 체제의 성격이 보인다.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선택지가 적어 보인다. 그럼에도 지금 이 공간은 개방돼 있다. 문이 열려 있고 기록이 공개되고 설명이 덧붙는다. 동일한 물리적 구조가 어제와 오늘 전혀 다른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는 공간의 의미를 전환하는 체제다.
너무나도 슬픈 곳이지만 한 번은 직접 걸어봐야 한다는 말이 먼저였다. 기념관 전시 구역 일부는 보수 공사 중이었다. 설명보다 빈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완결된 전시 대신 뼈대만 남은 건물들이 이어졌다. 아무도 없는 곳이기에 더 오래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시 오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 번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2·28 사건 = 1947년 2월 28일 대만에서 발생한 민중 봉기를 계기로 시작된 대규모 정치적 충돌과 국가 폭력 사태를 가리킨다. 일본 식민지 지배가 끝난 뒤 대만을 통치하게 된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행정 부패와 경제 혼란, 본토에서 이주한 관료·군 중심 통치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단속 과정의 충돌이 시위로 확산됐다. 정부는 이를 치안 문제로 규정하고 군 병력을 투입해 진압에 나섰고, 이후 수개월 동안 체포·처형·실종이 이어지며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단일 폭력 사태에 그치지 않고 이후 장기 계엄과 '백색테러'로 이어지는 통치 체제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정치적 반대 세력과 지식인, 지역 지도층이 집중적으로 탄압되면서 사건 자체는 오랜 기간 금기 기억으로 남았다.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진상 조사와 공식 사과가 진행되며 2·28 사건은 대만 민주화 과정과 국가 폭력 책임 논의를 상징하는 역사적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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