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의료’화되지 않은 건강한 삶을 요구한다 [우리 동네 지선 의제]

박서화 2026. 2. 2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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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서조차 서울은 주인공을 차지한다. ‘전국 인사이드’ 필자를 비롯한 지역 언론인들이 이른바 중앙이 아닌 ‘지역의 눈’으로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꼭 다뤄야 할 ‘우리 동네 지선 의제’를 꼽았다.
ⓒ시사IN 최예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선)가 6월3일 치러진다. 1995년이 1회였으니 서른 해를 갓 넘긴 셈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지역 소멸’ ‘산업 공동화’ ‘저출생’ 같은 문제가 만성질환처럼 따라붙는 한국 사회에서 ‘지선’은 절실한 기회의 시간이다. 주민 삶에 밀착한 변화의 가능성이 4년마다 돌아오는 6월의 선거에서 움튼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지방선거에 거는 기대는 크지 않다. 1회 68.4%를 기록한 지방선거 투표율은 2회부터 52.7%로 떨어지더니 50%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2018년 지선에서 한 차례 반짝 60.2%를 찍었을 뿐이다. 시골 마을의 농로부터 대도시의 뒷골목까지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비춰야 할 투표용지 일곱 장(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교육감·광역의원·기초의원)이 쓸데없이 많다고 느끼는 유권자도 있다.

정말 그럴까. 〈시사IN〉은 ‘지역의 눈’으로 6·3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특집 기획을 준비했다. 부산·충청·경남·광주·경북·강원·경기의 언론인 7명이 ‘우리 지역의 지선 의제’를 꼽았다. 이들에게 지역은 취재 대상일 뿐만 아니라 각자의 삶이 뿌리내린 터전이기도 하다. 지방선거에서조차 주인공을 차지하는 서울은 과감히 뺐다. 이른바 ‘중앙’의 시선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다채롭고 풍성한 지선 이야기가 담겼다. 이 글과 함께라면 다가올 지선도 조금은 설레지 않을까?

1980년 영국에서는 정부를 불편하게 만드는 보고서 한 권이 세상에 공개된다. 일명 ‘블랙 리포트’라 불리는 이 보고서는 이런 질문 아래 쓰여졌다. 1946년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출범시키고 전 국민에게 무상의료 서비스를 제공 중인 영국에서, 도대체 왜 건강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가? 보고서의 답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건강은 의료가 아니다.”

같은 질문에서 나오는 다른 답들이 있다. 강원 지역의 지방선거에서 의료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거론되는 주제다.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는 ‘의사 부족’과 ‘구급차 뺑뺑이’, 그리고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아픈 몸의 고통이 혼란스럽게 섞이면, 주민들은 정치에 묻는다. 보편적 건강 보장을 달성했다는 한국에서, 왜 우리는 여전히 불건강을 겪어야 하느냐고 말이다. ‘정치’가 여기에 내놓은 답은 10여 년째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병원을 설치하고, ‘건강 도시’나 의료산업을 지역 내에 유치하겠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응답이다. 그러나 병원을 설치하면, 건강 도시를 만들면, 의료산업을 유치하면 주민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나?

마을 공동급식을 하는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유천3리 주민들. 강원 지역 50여 개 마을에서는 ‘농촌마을 공동급식’ 사업을 시행 중이다. ⓒ정선군 제공

시계를 다시 1980년 영국으로 돌린다. 오늘날 한국에서 여전히, 아니 날이 갈수록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되는 지역 간 건강 불평등을 두고 블랙 리포트는 명징한 답을 건넨다. 주민들이 겪는 불평등은 계급적이고, 동시에 지역적이며, 그 원인은 ‘의료’가 아닌 ‘사회’에 있다고 말이다. 블랙 리포트가 더 많은 병원 대신 빈곤 퇴치를, 더 많은 의료 대신 주거와 교육·노동 환경의 개선을 권고한 이유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냉전의 산물이, 식민지와 군사독재의 유산이 그대로 남은 강원 지역에서 주민들은 일하다 아프고, 실업으로 우울하고, 젠더 위계 속에서 삶을 착취당한다. 병원을 지을 수 없고 아파도 돌봄을 받지 못하게 하는 환경 역시 여기서 유래한다.

그러나 1980년 영국 보수당 정부가 블랙 리포트의 권고를 비현실적이라며 묵살했던 것처럼, 오늘의 정치 역시 주민의 고통을 묵살한다. 그러고는 사람의 삶을 형평성 있게 하는 어려운 길 대신 대학병원 건물, 최첨단 의료 장비라는 쉬운 길을 택한다. 하지만 그 끝에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건강도 없고, 형평성도 없다. 이것이 내가 강원 지역 지방선거의 테이블에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불편한 주제가 놓여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그것은 의료화되지 않은,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는, 건강의 도구적 가치를 믿는, 건강 형평성의 회복이다.

오랜 기간 탈정치의 뒤안길에 놓여왔으나 의료화되지 않는, 사람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건강은 여전히 가장 급진적인 주제다. 그러나 이미 국제사회는 답을 알고 있다. 블랙 리포트가 발표되기 2년 전, 국제사회 134개국이 모여서 채택한 알마아타 선언은 ‘모두의 건강’을 목표로 내세우며 이렇게 쓴다. “건강 달성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회적 목표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건 부문 외에도 많은 다른 사회적·경제적 부문의 조치가 필요하다.”

먼 곳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정책이 될 필요는 없다. 한 가지 예시를 들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강원 지역 50여 개 마을에서는 ‘농촌마을 공동급식’ 사업을 시행 중이다. 밥상에는 다 큰 아들이 속 썩이는 이야기, 올해부터는 무릎이 아파 호미질을 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 옆집 순이 할머니가 요즘 우울해서 밥을 못 먹는다는 이야기가 오른다. 식사가 끝나면 주민들은 함께 상을 치우고, 어떻게 해야 우리가 좀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지 대화한다. 나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건강 형평성 정책을 본 적이 없다.

박서화 (<강원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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