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남아돈 전기가 오히려 전력망에 ‘압박’으로···AI 시대, 원전은 정말 필수일까
경제성과 현실성 등 따지는 전력수급계획으로 유연성 높여야

[주간경향] 지난 설 연휴(2월 14~18일). 공장과 사무실이 문을 닫자 전력 사용량이 뚝 떨어졌다. 2월 평일에 80~90GW를 오르내리던 전력 수요는 50GW 안팎으로 주저앉았다. 반면 화창한 날씨에 태양광발전은 펄펄 끓었다. 설날인 17일 오전 11시 55분, 태양광발전은 23GW까지 치솟았다. 국내 태양광 설비 용량(약 30GW)을 감안하면 사실상 최대 출력이다. 그 시각 전국에서 사용한 전력의 47.5%를 태양광이 공급했다.
전력은 공급과 수요가 실시간으로 일치해야 표준 주파수(60Hz)를 유지한다. 수요는 적은데 전력망에 전력이 밀려들면 주파수가 올라가고, 수요는 많은데 전력이 부족하면 주파수가 떨어진다. 이 균형이 깨지면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설 낮시간에 넘치는 전력을 감당하기 위해 전력당국은 석탄화력(유연탄)과 가스화력(액화천연가스) 발전을 줄였다. 설 새벽에 20GW의 전력을 만들어냈던 가스발전은 한낮에 5GW로, 13GW 전력을 생산하던 석탄발전은 6GW로 출력을 낮췄다. 일부 태양광발전소에도 출력 제한이 걸렸다. 가스와 석탄발전은 태양광이 급감하는 오후 4~7시 사이, 다시 불을 지펴 태양광의 빈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기저발전원인 원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7~18일 이틀간 특정 시간에 원전 8기의 출력을 정격 용량보다 낮춰 운전하는 감발 조치를 취했고, 8기 합산 감발 규모는 1.605GW였다. 다만 원전은 출력 조정 폭과 속도에 한계가 있다. 설날 원전의 발전 출력은 감발에도 불구하고 온종일 15.8~17.5GW를 유지하며 전력망을 압박했다.

이 장면은 전력당국에 또 하나의 과제가 더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동안은 한여름과 한겨울의 ‘최대 수요(피크)’ 방어가 최대 숙제였다. 혹시라도 부족하게 될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계속 발전소를 짓고 일부는 예비 설비로 두었다. 태양광이 늘어난 이제는 ‘전력 과잉’도 방어해야 한다. 실제로 정부는 2023년부터 봄·가을 일정 기간을 ‘경부하기(전력 저수요 기간) 전력계통 안정화 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햇빛 좋은 휴일 낮시간대 발전 과잉에 따른 수급 불균형과 계통 불안정에 대비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까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로 늘릴 계획이다. 재생에너지가 확대될수록 출력 제한은 더 자주, 더 빠르게, 더 큰 폭으로 요구된다. 딜레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출력을 자유롭게 조정하기 어려운 가장 ‘경직적인’ 발전원, 원전 확대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 전망은 실제와 같을까
현재 26기가 있는 원전은 국내 발전량 비중의 31.7%를 차지한다. 올해 중 울산 울주군의 새울 원전 3·4호기가 발전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고, 2032~2033년에는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가 순차적으로 준공된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추진한 지난 정부는 대형 원전 2기(총 2.8GW)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원자로 4개·총 0.7GW)를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재명 정부가 이 계획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수준에서는 봄·가을 주간에 재생에너지만으로도 전체 수요보다 많은 에너지를 출력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경직적인 원전이 추가로 들어서면 봄·가을 경부하기에 전력 수급을 맞추는 게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국내에서 경직성이 높은 원전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에 근거한다. 우선 2030년대 AI 데이터센터, 전기화, 반도체 공장 등에 들어가는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고, 이에 여름철 최대 수요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다. 대형 원전 2기 및 SMR 1기 신규 건설의 근거가 된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에서도 2038년까지 전력소비량이 연평균 2.0%씩 증가할 것이라는 기본 전제에, 추가로 데이터센터, 전기화,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2030년에 2.3GW(데이터센터), 1.4GW(전기화), 2.0GW(첨단산업)씩 더해지고, 2038년에는 각각 4.4GW, 1.4GW, 11.0GW로 확대되는 것으로 봤다.

다만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추산한 전력 수요가 과장됐다는 전문가 지적도 있다. 지금도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지역에서는 반대 여론이 높아 건설에 난항을 겪고 있고, 2030년까지 엔비디아로부터 들여오는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으로 전국에 데이터센터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필요한 전력은 넉넉하게 잡아도 1GW 수준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추산한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는 업계의 예상치를 정부가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실제로 그것만큼 늘어날지 명확하지 않고 허수가 많다. 데이터센터의 경우, 이전에도 (부동산 차익을 위해) 수도권에 허가부터 받고 데이터센터는 짓지 않는 ‘알박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전기화, 첨단산업 등에 들어가는 전력이 상당 부분 늘어날 테지만, 일부는 기존의 가스화력발전 등으로 대응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영환 교수는 “지금도 가스화력발전소가 쉬는 경우가 많다”며 “절대적 용량이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가스화력 이용률을 조금만 높여도 어느 정도 버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 가스화력발전 설비 이용률을 10%대로 잡고 있다. 앞으로 증가할 전력 수요를 보다 현실적으로 추산하고, 그에 맞춰 전력 공급 방안을 다변화하는 편이, 전력 수요 예상치를 크게 잡고 신규 원전 건설로 대응하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뜻이다.
대형 발전소가 새로 지어진다고 해도 이 전기를 수도권까지 보내는 송전탑과 변전소 건설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강원 강릉과 삼척 등에 지어진 석탄화력발전소의 경우, 이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500kV HVDC(초고압 직류송전)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상당 기간 주민 반대에 부딪혔고, 이 전기를 받기 위한 경기 하남의 변전소 증설 공사는 현재 반대 여론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원전도 ‘부하추종 운전’ 가능할까
신규 원전 건설의 또 다른 논리는 원전 역시 전력 수요가 크게 줄어드는 봄·가을에 맞춰 큰 폭의 감발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수요 변동에 대응해 발전량을 조정하는, 이른바 ‘부하추종 운전’이다. 실제로 ‘원전 대국’ 프랑스에서는 원전 부하추종 운전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2월 7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주최로 열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정책 토론회’에서 신호철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원장도 국내 원전의 부하추종 운전이 2030년대 상용화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외 원전 개발, 원자로 설계 등에 참여했던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한수원의 부하추종 운전은 원전의 안전성을 크게 낮춘다”며 “프랑스는 하루 두 차례, 30~100%에 이르는 출력 조정을 수십년간 수행해왔지만, 이후 프랑스 다수 원전에서 안전주입계통과 잔열제거계통 배관, 노즐과 용접부 등에서 균열이 연쇄적으로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비영리 민간연구조직인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지난 1월 발표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의 원자력 운영: 프랑스 사례’ 보고서에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프랑스 원전의 부하추종 1회 증가는 비상 고장 정지 위험률이 약 1% 상승하는, 작지만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결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제안도 내놓았다.
“원전을 상당히 유연하게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간헐적인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매우 높아지는 단계에서는 (원전의 부하추종 운전이 줄일 수 있는 전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양수발전, 배터리, 수요 조절 같은) 추가적인 유연성 자산(flexible assets)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남아도는 전력으로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가 전력이 부족할 때 물을 떨어뜨려 발전하는 양수발전이나, 배터리에 전기를 저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지역·시간대 등에 따라 전력요금을 달리해 전력 수요를 분산시키는 방식 등이 더 유효하다는 얘기다.
탄소중립 목표와 재생에너지 확대, 여기에 AI·전기화 등이 맞물리면서 현재 많은 국가가 발전원과 전력망을 어떻게 짜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각 국가가 어떤 위험과 비용을 감수할지, 어떤 기술과 제도를 먼저 갖출지에 대한 사회적 선택에 직면했다.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 같은 과거의 구호 대결로는 정리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26기 원전이 있는 한국으로선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상당 기간 같이가는 상황에서 전력 수급에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영환 교수는 “경제성과 현실성을 따지는 전력수급계획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헌석 정책위원은 “제대로 된 에너지전환 계획을 짜려면 밀실이 아니라 공개토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 확정될 새로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6~2040)’은 그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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