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 ⑼'61년만에 끝난 애도' 루뭄바 민주콩고 초대 총리

박성진 2026. 2. 28. 08: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벨기에 지원 분리주의 세력에 피살…뒤늦게 금니 한 점 유해로 봉환돼 안장
맬컴 X "아프리카 대륙을 걸어간 가장 위대한 흑인" 추모도
민주콩고 독립영웅 루뭄바 유해 안장식 (킨샤사 AFP=연합뉴스) 2022년 6월 30일(현지시간)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의 리메트 타워에서 독립 영웅이자 초대 총리인 파트리스 루뭄바의 유일한 유해를 담은 관이 그의 영정과 함께 운구되고 있다. 2022.6.30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 2022년 6월 30일 아프리카 중부에 있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의 수도 킨샤사에서 독립 영웅 파트리스 루뭄바(1925∼1961) 초대 총리의 '금니' 한 점 유해가 안장됐다.

앞서 피살 61년 만에 식민 종주국인 벨기에에서 조국으로 유해가 봉환됐다. 하지만 묘에 안치된 것은 달랑 그의 금니 하나뿐이었다.

펠릭스 치세케디 민주콩고 대통령은 안장식에서 "마침내 콩고 국민은 그들의 걸출한 총리에 대한 안장을 거행하는 영광을 가질 수 있게 됐다"면서 "우리는 61년 전 시작한 애도를 이제야 끝내고 있다"라고 기렸다.

독립 영웅이자 초대 총리까지 지낸 루뭄바의 빈약한 유해가 이처럼 뒤늦게 돌아온 데는 민주콩고 식민지 역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루뭄바는 1958년 콩고민족운동(MNC)을 창당하고 당수에 오른 뒤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벨기에의 식민 통치를 강하게 비판했으며 1960년 민주콩고가 독립하자 만 34세의 젊은 나이에 초대 총리에 올랐다.

그해 6월 30일 민주콩고 독립 행사에서 보두앵 당시 벨기에 국왕이 식민 통치 덕분에 민주콩고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잔혹한 식민 통치를 일삼았던 레오폴드 2세 벨기에 국왕이 어떻게 민주콩고를 개화시켰는지를 언급했다. 그러자 루뭄바 총리는 행사에 예정돼 있지 않던 연설에 나섰다.

루뭄바는 자신들이 겪었던 폭력과 수모를 거론하며 식민 통치를 "강제로 우리에게 가해진 치욕스러운 노예제"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영국 BBC 방송은 "아프리카 흑인이 루뭄바 이전에 유럽인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 적은 없다"며 "벨기에인들은 매우 놀랐다"고 벨기에 사회학자 루도 드 위트를 인용해 보도했다.

벨기에 국왕 앞에서 루뭄바가 한 연설은 사실 어릴 때부터 준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이미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실수하면 동급생들 앞에서 이를 지적하는 등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밝히며 장래 정치인의 싹을 키워갔다. 

하지만 당시 민주콩고에서는 독립 직후 정치 혼란이 심했고 루뭄바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보기도 전인 취임 2개월 만에 모부투 세세 세코 대령의 군사 쿠데타로 실각하고 체포됐다.

그는 체포된 후 민주콩고에서 분리 독립하기 위해 내란을 일으킨 남동부 카탕가주로 넘겨져 1961년 1월 17일 즉결 처형됐다.

초대 총리 취임에서 처형까지 7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했던 벨기에는 루뭄바의 묘지가 순례지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시신을 절단한 뒤 산(酸)으로 녹이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시신 처리에 가담한 벨기에 경찰 간부는 1999년 출연한 다큐멘터리에서 일종의 '사냥 트로피'(hunting trophy)로 루뭄바의 금니를 챙겼다고 밝혔다.

벨기에 당국은 루뭄바 가족이 소송을 제기하자 2016년 경찰 간부의 딸이 갖고 있던 금니를 압류한 뒤 2022년 민주콩고에 이를 돌려줬다.

콩고민주공화국 '독립의 아버지' 파트리스 루뭄바 파트리스 루뭄바 초대 콩고민주공화국 총리(왼쪽에서 세 번째)가 1960년 12월 2일 콩고 레오폴드빌(현재 킨샤사) 공항에서 손이 뒤로 묶인 채 트럭에 앉아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루뭄바의 피살 이후 배후에 미국과 벨기에가 있다는 의혹은 지속해 제기됐다.

루뭄바의 통일된 민주콩고 구상과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 범아프리카주의 등은 당시 다른 아프리카 지도자들도 주창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중앙에 한반도의 약 11배나 되는 큰 영토와 많은 자원을 보유한 민주콩고의 초대 총리로 등장한 비타협적 정치인 루뭄바는 서방에 눈엣가시였다.

특히 벨기에는 민주콩고 독립 이후에도 다양한 이권을 갖고 있었다. 루뭄바가 처형된 카탕가주는 우라늄 등 광물자원 매장량이 많아 서방 국가들의 각축 대상이었다.

루뭄바는 총리 집권 당시 카탕가주를 진압하기 위해 옛소련에 접근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동은 냉전 시기 미국의 눈 밖에 나는 결정적 계기기 됐다.

벨기에 의회는 2001년 조사에서 정부에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1975년 미국 연방상원 위원회는 중앙정보국(CIA)이 루뭄바를 제거하려고 별도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한 사실을 확인했다.

콩고 분리주의자들과 벨기에는 루뭄바의 흔적까지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어 했으나 그는 오히려 사후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았다.

루뭄바는 국내외에서 식민 종주국에 맞서 독립을 추구하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뿐만 아니라 대서양 건너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 흑인 해방을 외친 혁명가 맬컴 엑스(X)는 루뭄바를 가리켜 "아프리카 대륙을 걸어간 가장 위대한 흑인"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지도 [제작 양진규]

sungjinpark@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