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500년 전 엄흥도처럼… 40년째 단종의 곁을 지키는 화가 서용선
놓쳐선 안 될 작품, 서용선의 ‘단종애사’
미술로 짚어보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이하 ‘왕사남’)가 국내 극장가를 달구며 조선사에서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임금 ‘단종’을 우리 곁으로 뜨겁게 소환하고 있다. 마침, 이 비극을 무려 40년 동안 묵묵히 화폭에 담아온 화가 서용선과 그의 작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술&전시 스토리텔링 유튜브 채널 ‘미미상인’ 진행자 조상인 미술전문기자는 지난 25일 업로드한 영상에서 한국 현대미술 거장인 서용선 화백의 역사화 시리즈 ‘단종애사(端宗哀史)’를 소개했다. ‘단종애사’란 춘원 이광수가 쓴 역사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서용선 화백은 서울대 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을 내려놓고 전업 작가라는 고독한 길을 택해 지금까지 붓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고대 역사에서부터 현대 도시 풍경까지 그 속에 자리한 인간 군상을 특유의 거친 질감과 강렬한 색채로 선보인다. 그는 지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뽑는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면서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서 화백은 1986년 강원도 영월 청령포를 찾았다가 비운의 왕 단종과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킨 실존 인물 엄흥도 서사와 마주했다. 영월에서는 1967년부터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매년 4월 말이면 ‘단종문화제’를 열어 단종의 넋을 기리고 있다.
그는 당시 이토록 처절한 역사가 왜 우리 미술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는지 문제의식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교과서 속에 박제된 역사가 아닌, 영월 사람들이 대를 이어 기억해 온 ‘살아있는 역사’에 매료된 서 화백은 그때부터 단종과 엄흥도에 관한 애잔한 역사를 그림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가 담은 영월 청령포는 빨강과 노랑, 파랑의 강렬한 원색을 날 것 그대로 사용하며 역사의 비극성을 정면으로 포착했다. 청령포를 휘감고 돌아나가는 강물의 색은 시릴 정도로 ‘퍼런 색’으로 표현됐다. 파랑과 대비되는 청령포 대지의 붉음은 권력에 희생된 어린 왕을 떠올리게 한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는 “물살 하나 전혀 없이 새파랗게 그려 마치 제발 고요하기를 바라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한편 계유정난(癸酉靖難) 속 단종과 수양대군(세조), 한명회, 김시습 등 인물들은 하나같이 뒤틀리고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다. 이는 ‘단종애사’뿐만 아니라 서 화백의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이는 서 화백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빨간 눈의 자화상, 2009>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스스로를 충혈된 눈으로 그린 것은 ‘역사를 냉철하게 직시하고 세상을 똑바로 보겠다’라는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자기 다짐을 상징한다.

영화 ‘왕사남’ 속 유해진이 연기하며 관객의 눈시울을 적신 인물 엄흥도는 후환을 두려워해 시신조차 거둘 수 없었던 단종의 마지막을 지킨 충신으로 그려진다. 엄흥도는 역사서에 고작 이름 석 자만 기록된 인물이었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오늘날 큰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다. 서 화백 역시 박제된 역사서 속 엄흥도를 화폭에 불러내 생명력을 불어넣어왔다.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단종의 곁을 지키며 그림을 그려온 그의 작업은 500년 전 엄흥도의 충심과 닮아 있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는 “서양에서는 기록화가 많이 남아있는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역사를 제대로 직시하는 그림이 없다는 고민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서 화백의 역사화 시리즈”라고 부연했다.
이어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역사 속에서도 때로는 권력 욕심을 가진 사람 때문에 누군가는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또 거기에 맞서는 사람도 있다는 것까지 보여준다”면서 “역사의 의미를 현대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서용선 화백의 작품들에 관심을 더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서 화백은 오는 4월 서울 갤러리 네 곳(디스코스온 아트/갤러리 밈/갤러리 JJ/아트스페이스 3)과 영월 관광센터전시관 등에서 ‘단종애사’ 연작 40주년을 맞아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관련 서적 출간도 예정돼 있다.

한편 영화 ‘왕사남’은 강원도 영월 청령포를 배경으로, 1453년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벌인 계유정난으로 왕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노산군(박지훈 분)과 그의 마지막 곁을 지킨 실존 인물 엄흥도(유해진 분)의 가슴 시린 서사를 다루며 관객들에게 큰 여운을 남기고 있다.
한명회 역의 유지태, 단종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궁녀 매화 역의 전미도, 영월 군수 역의 박지환, 노루골 촌장 역의 안재홍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장항준 감독 특유의 유쾌함까지 버무려져 27일 기준 개봉 1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누적 관객 수 673만명을 기록 중이다.
미술을 통해 보는 영화 ‘왕사남’ 이야기와 더 자세한 서용선 화백의 작품 해설은 미술&전시 스토리텔링 유튜브 채널 ‘미미상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신우 AX콘텐츠랩 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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