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반느' 감독은 왜 고아성을 '못생기게' 분장시켰을까?
편집자주
주말에 즐겨볼 만한(樂)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신작에 대한 기자들의 방담.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결핍과 상처를 안고 어둠 속에 살아가다 서로에게 빛이 되는 세 청춘의 이야기다. 무용수라는 꿈을 접고 백화점 주차 안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록(문상민), 초라한 외모로 따돌림당하는 백화점 직원 미정(고아성) 그리고 어두운 개인사를 한량 같은 모습으로 위장한 채 백화점 주차장에서 일하는 요한(변요한)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원작이다. 영화는 소설의 설정을 크게 바꾸지 않고 가져오면서도 시대 배경을 1980년대가 아닌 현재에 가까운 시기로 변경해 원작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1999년의 성공한 작가인 ‘나’가 1인칭 시점에서 십수 년 전 과거를 회상하는 소설의 구성도 현재의 세 인물에게 시점을 골고루 배정하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외모지상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줄이고 사랑과 청춘 이야기에 집중했다는 차이도 있다.
유명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로 옮기면 원작 팬들에게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얻기 십상이지만 ‘파반느’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탈주’의 이종필 감독이 연출했다.

고경석 기자(고): 영화 ‘파반느’는 고전적이면서도 새로운 느낌의 멜로 영화였다.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던 소설이었는데 영화 덕에 읽게 됐다. 별점은 5개 만점에 3개 반(★★★☆)이다.
강유빈 기자(강): 소설을 읽지 않고 본다면 4개((★★★★), 읽은 뒤에 본다면 3개(★★★). 어둠 속 웅크린 청춘을 아른아른 비춰준 빛 같은 사랑 얘기다.
인현우 기자(인): 별 3개(★★★)다. 이런 영화가 아직 나오긴 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긍정적 의미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본 드라마 또는 영화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강: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서사이지만 외로운 청춘들이 서로의 결핍을 보듬고 구원하는 이야기가 좋았다. 옛날 한국 멜로영화 향수도 느껴지고, '드디어 넷플릭스가 이런 영화를 하네' 싶어 반갑기도 했다. 보다 직관적으로 눈에 꽂힌 건 영상미와 배우들의 호연이었다. 세 배우 모두 좋지만 문상민의 덜 다듬어진, 투박한 연기는 무기력하고 초라한 청춘인 경록과 잘 들어맞았다.

고: 박민규 작가는 원작 소설책 끝부분의 ‘작가의 말’을 통해 “눈에만 보이는 이 아름다움의 시시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소설에선 영화의 미정에 해당하는 ‘그녀’가 ‘못생긴 여자’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영화에선 경록인 ‘나’가 “그래서” 좋아한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계속 더 아름다운 모습만 볼 수 있을 테니까”라면서. 원작과 달리 경록과 미정 사이에 권력의 차이를 지우며 최대한 동등한 위치에 두려 한 흔적이 보인다. 시대 변화에도 잘 맞는 시도다. 감독은 ‘못생긴 얼굴’ 대신 ‘사랑할 자신이 없는 얼굴’로 바꾸려 했다고 한다.
강: 영화는 원작에 비해 못생김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고아성이 거친 피부에 떡진 머리로 등장하긴 하지만 소설 속 표현처럼 ‘세기의 추녀’로 보이지는 않는다. 음울하고, 자신 없는 내면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분장이 조금 도왔을 뿐. 영화가 여주인공의 외모를 못생기게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구시대적이고 촌스러워 보였을 것 같다. 하지만 ‘못생김‘을 대폭 덜어낸 결과 외모지상주의의 폭력성을 날카롭게 지적했던 원작의 핵심 메시지는 흐려지고 청춘 멜로만 남았다.
고: 고아성을 명백히 ‘못생긴 여자’로 설정하진 않았지만 (원작의 설정을 알고 봐서인지) 분장을 보면 그렇게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러 못생기게 보이게 과장한 점이 조금 거슬렸다. 애초 의도대로 외모 자체가 아니라, 사랑에 자신이 없는 심리적 측면을 좀 더 뚜렷이 드러냈으면 했다.

인: 전체적으로 외로움을 안고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를 돕는 구도를 잘 살렸다. 특히 눈에 띄는 게 미정이다. 성장 과정에서 쌓인 피해의식 가운데서도 자기만의 단단함이 있고,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는 부분들이 인상 깊었다. "말을 달리다가 중간에 잠시 멈춰 선다"는 대사를 하는 것이 미정인데, 그러니 고난 속에서도 그렇게 버텨 왔구나, 싶었다. 이 말을 결국 요한이 하고, 마지막에 경록이 상상 속에서 기다려주는 연출을 한다.
고: 원작을 각색하면서 비판적 시선보다 감정에 충실하려 한 감독의 연출을 지지하지만, 사랑의 본성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들이 축소된 점은 아쉽다.
강: 세 캐릭터의 관계성에 대한 설명이 느슨하다고 느꼈다. 각 인물이 가진 아픔과 결핍이 무엇이고, 서로 어떻게 구원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호연과 ‘케미’, 영상미로 어물쩍 넘어간 인상이 있다. 대학에 간 뒤로 눈에 띄게 변한 경록이 지하철에서 미정에게 버럭 화를 내고, 미정이 떠난 뒤 세라(이이담)와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은 혼란스럽기도 했다.

인: 원작은 1980년대가 배경인 설정이라 중간에 둘이 잘 만나지 못하는 부분이 사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이걸 현재에 가깝게 옮기다 보니까 어색한 느낌이 있다. 중반부에 계속되는 두 사람의 거리감과 갈등은 즉각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오는데 그렇게 서로 좋아하는 관계에서 서로 카톡 하나를 안 할 수가 없지 않나. 이 설정을 변명하려고 미정이 괴롭힘과 집안 사정 때문에 휴대전화를 안 가지고 있다고 하기는 했지만.
강: 미정과 경록이 각각 혼자 있을 때는 어둠이, 함께 있을 땐 빛이 쏟아지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캄캄한 집에 있던 경록이 미정의 전화를 받으면서 불을 켜고, 골목길 편의점 앞에 둘이 마주 앉았을 때 가로등 불빛이 핀조명처럼 내려오는 식으로 빛이라는 장치를 노골적으로 강조했다. 영화를 쉽게 이해하도록 도우면서 무드를 만든 연출이라 생각했다. 적재적소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과 음악에 맞춰 컷이 바뀌는 편집도 좋았다.

인: 영화의 엔딩이 비극이라는 가정하에, 경록과 미정의 만남은 순간이지만 그 빛을 안고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간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 대중적 관점에서 영화의 결말은, 원작을 옮기는 데 있어서 최선의 선택인 듯하다. 소설처럼 결말을 더 모호하게, 복잡하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면 호불호가 많이 갈렸을 것 같다.
강: 원작과 영화 모두 요한의 소설 속에선 시간이 흘러 재회하는 해피엔딩을, 현실에선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영화는 두 가지 결말 모두 원작 대비 많은 디테일이 바뀌고 생략됐다. 급한 마무리 같거나 허무하게 느껴졌다면 소설의 마지막 부분만이라도 읽기를 권한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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