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접하는 사운드 마사지

유주현 2026. 2. 28. 01: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4번째 ‘나우톤’ 공연에서 독특한 앰비언트 즉흥 음악을 선보인 에코하우스와 자유로운 자세로 감상하는 관객들. [사진 WeSA]
제주 사려니 숲의 풀벌레소리, 인도 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를 흔드는 바람. 가본 적 없지만 그리운 소리들이다. ASMR 유튜브 채널이나 명상 앱에 있는 사운드 메뉴들이라서다. 집중이 필요하거나 멍때리고 싶을 때 혼자 온라인으로 듣던 ASMR 앰비언트 사운드가 오프라인으로 내려왔다. ‘몰입형 명상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공연 형태가 뜨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11시. 휴일 아침부터 마포구 상수동의 작은 공연장 ‘틸라 그라운드’에 50여 명이 모여들었다. 어둑한 지하 공간에 요가매트를 깔고 앉으니 무슨 종교 행사에 온 듯한데, 드러눕는 걸 권한다. 여기서 마음의 때를 벗겨주는 건 누군가의 설교가 아니라 ‘사운드’.

국내 일렉트로니카 1세대 뮤지션 가재발을 중심으로 명상과 앰비언트 음악을 결합한 사운드 테라피 시리즈 ‘나우톤(NowTone)’이다. 지난해 여름 시작한 프로젝트로, 이번에 네회째 공연을 열었다. 주최측은 ‘네번째 조율’이라고 표현하는데, 매번 조금씩 달라지면서 답을 찾고 있으니 적절한 비유다.

‘나우톤’을 기획한 뮤지션 가재발. [사진 WeSA]
‘조율’은 1, 2부로 나뉘어 2시간 넘게 이어졌다. 1부는 DJ 가재발과 명상 가이드 대니 애런즈의 듀엣이었다. 싱잉볼 명상의 전자음향 버전이랄까. 커다란 스피커가 토해내는 초저음의 종소리가 공간을 에워싸고, 대니 애런즈가 이끄는 ‘프라나야마 호흡법’을 따라 하다보니 사운드의 진동에 호흡의 리듬이 동기화되며 마치 우주공간에 홀로 붕 떠 있는 것 같다. 이질적인 소리에 취해 모든 일상의 소음으로부터 분리된 느낌이다. 음악 전공자인 한 관객은 “앰비언트 사운드에 관심이 있어서 왔는데 호흡을 따라하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면서 “층간소음 탓에 잠을 설쳤는데 피곤이 풀려 개운하다”고 했다.

공연 후 만난 가재발은 이런 감각을 ‘사운드 하이’라고 표현했다. “전자음향에 취해 혼자서 뿅 가곤 했던 경험”을 공유하려는 행사라는 것이다. 공연을 기획한 위사(WeSA)는 ‘서울을 세계 사운드의 중심으로’라는 비전 하에 전자음악 페스티벌, 코딩 아카데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지원하는 아트 플랫폼이다. 최유정 대표는 “명상과 앰비언트의 결합은 이미 세계적인 트렌드”라며 ‘나우톤’ 공연을 연 6회 이상 지속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했다.

2부는 정가 일렉트로닉 듀오 ‘에코하우스’가 분위기를 바꿨다. 국가무형유산 가곡 이수자 이기쁨과 그에게 정가를 배운 미국인 레이첼 에펄리가 정가의 메아리와 같은 앰비언트 음악을 들려줬다. 지난해 이들의 데모 공연에 공감한 나우톤 측의 제안으로 공식 데뷔 무대를 가진 셈이다. 요가매트 사이를 검정 가죽점퍼를 입은 레이첼과 검정 베일로 얼굴을 가린 이기쁨이 차임벨, 풍경 등 타악기를 무구처럼 흔들며 돌아다니더니, 온갖 자연의 소리를 디제잉하며 정가 창법으로 노래도 부른다. 파란눈의 미국인이 “I’ll be waiting for silence~”라며 자작 정가곡을 부르는 모습이 놀랍게도 자연스럽다.

이들은 “보컬 기반 앰비언트 즉흥 음악을 하는 팀”이라고 스스로 소개했지만, 힙한 MZ무당들 같았다. 심신이 지쳐있는 이들에게 ‘사운드 트리트먼트’를 베푸는 느낌이랄까. 가장 아날로그한 소리 정가와 전자음향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페스티벌 ‘싱크넥스트’에서 선보인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과 설치미술가 부지현, 정가 가객 정마리의 콜라보 공연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앰비언트 사운드와 빛과 연기로 조성한 깊은 바닷속으로 관객을 빠트리고 난파선의 유령들을 달래는 씻김굿이었다.

저들이 ‘심해(深海)’를 조성했다면, 에코하우스는 관객을 여기저기로 이동시켰다. 작은 벨과 차임으로 싱그러운 숲으로 데려갔다가 먹먹한 베이스 사운드와 뽀글뽀글 소리가 나는 타악기로 물속에 빠트리기도 하고, 신시사이저와 보컬로 사막과 우주까지 날아갔다. 사운드 자체로 씻김을 주니, MZ무당들의 ‘굿’은 유령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공연일까. 신이 아닌 ‘사운드’를 모신 제의로서 가장 원시적인 공연일 수도, 단지 ‘사운드 마사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누워서 듣는 콘서트가 늘고 있다”면서 “스트리밍과 숏폼 등으로 음악이 흔해빠진 시대, 젊은 세대들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명상과 결합해 온몸으로 체험하는 행위 정도는 돼야 음악을 제대로 느꼈다고 만족한다”고 말했다. ‘음악을 듣는다’는 정의가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유주현 기자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