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바흐 듣는 듯…바로크 음악 복원, 고음악계의 레전드
한정호의 클래식 수퍼스타즈
![22년만에 내한하는 고음악 대가 존 엘리엇 가디너. [사진 아트프레스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8/joongangsunday/20260228005846042oyju.jpg)
![가디너가 2024년 새롭게 결성한 앙상블 스프링헤드 컨스텔레이션. [사진 아트프레스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8/joongangsunday/20260228005847426ibcl.jpg)
가디너는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함께 오랫동안 일본·홍콩 클래식계가 흥행을 기대하며 초청해 온 대표적 고음악 지도자다. 올해 그의 내한 역시 2004년과 마찬가지로 3월에 열리는 홍콩 아트 페스티벌 일정과 맞물려 주변국을 순회하는 동선이다. 고음악과 역사주의 연주 운동에도 오페라 디바에 준하는 상업적 ‘수퍼스타’가 필요하다는 시장 논리 속에서, 가디너의 역대 내한은 “진짜 바흐를 듣는다”, “정격 연주”와 같은 계몽적 수사를 동반해 왔다. 고음악을 학술 활동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브랜드이자 소비 트렌드로 전환하려는 동아시아 공연 공급자의 고심이 카피에 묻어났다.
스탠퍼드 수재이자 올림픽 스키 다관왕 에일린 구에 비유하면, 가디너 역시 독학으로 바이올린을 시작해 케임브리지에서 사학을 전공한 다분야 엘리트다. 1964년 킹스 칼리지 채플 공연을 계기로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결성했고, 재학 중 이미 중동 투어에 나설 만큼 일찍 상업 시장에 발을 들였다. 파리에서 나디아 블랑제를 사사하며 영국적 코럴 전통에 프랑스적 명료함을 접목했고, 이는 훗날 베를리오즈 해석에서 독보적 성취로 이어졌다.
가디너의 음악적 행보는 단순히 “바로크 음악을 역사적으로 연주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가 60년간 천착한 영역은 초기 음악의 ‘복원’이다. 헨델과 바흐가 실제로 상상하고 들었을 법한 음향을 재현하기 위해 악기·편성·발성·텍스트 처리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의 접근은 음악학적 연구와 사료 검증, 음악 자체에 대한 열정이 결합된 결과다. 사진 복원가가 인화지 위의 변색과 얼룩을 걷어내듯, 세대에 걸쳐 축적된 연주 관습을 벗겨내 작곡가의 의도에 최대한 가까운 소리를 현재 시제로 되살려냈다.
![2019년 가디너가 녹음한 베토벤 전집. [사진 아트프레스토]](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8/joongangsunday/20260228005848675paxg.jpg)
가디너의 명성은 고음악계를 넘어 베를린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런던 심포니 등 세계 정상급 악단과의 정기적 객원 무대를 통해 공고해졌다. 흥미로운 점은 거대한 음향 블록을 지향하는 바그너를 지휘하지 않고, 발레 음악 또한 기피한다는 사실이다. 발레 음악의 리듬 구조가 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바흐 전문가로서의 역량은 수난곡 논의나 B단조 미사 해석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공연 끝나자마자 성악가 폭행 흑역사도
음악과 언어의 관계를 분석하는 통찰은 수십 년간의 실제 연주에서 길어 올린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론적 해설을 넘어선 설득력을 지닌다. 아르농쿠르가 바흐를 교리 해설서처럼 다루는 태도를 경계하며 음악의 자율성과 극적 긴장을 강조했다면, 가디너는 텍스트와 음향이 만나는 지점에서 바흐를 ‘미학적 신학’으로 복원하려 했다. 루터교 일각에서는 은혜 중심의 구원관 대신 인간의 성취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세속적 휴머니즘’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2009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힌 흑역사는 1969년 악보를 익힐 시간도 없이 BBC 노던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던 일화였다. 그러나 대중이 기억하는 가디너의 흑역사는 2023년 8월 프랑스 베를리오즈 페스티벌에서 ‘트로이인’ 공연 직후 베이스 윌리엄 토마스의 안면을 가격한 사건이다. 토마스가 잘못된 방향으로 무대를 퇴장했다는 이유로 가디너는 공연 후 주먹을 날렸다고 전해진다. 가디너는 앙상블 투어를 담당한 인터무지카를 통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고, 토마스의 매니지먼트인 아스코나스 홀트는 “모든 음악가는 학대나 신체적 피해가 없는 환경에서 공연할 자격이 있다”고 밝히며 가디너를 에둘러 비판했다.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는 “놀라운 음악적 영향력”과 “기념비적 공헌”을 언급하며 예우를 표하면서도 도덕적 기준에 따라 절연을 선언했다. 그해 10월 예정됐던 가디너와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의 내한도 연쇄적으로 취소됐다.
가디너의 폭행 사건과 지휘자 프랑수아 자비에 로트가 앙상블 ‘레 시에클’ 신입 단원에게 성기 사진을 보낸 사건은, 지휘자의 눈에 들어야 고용이 유지되는 고음악계의 취약한 노동 구조를 드러낸다. 유럽 정부가 저명 지휘자 중심의 고음악 단체에 재정·프로그램·캐스팅 권한을 집중해 온 방식은 예술적 일관성을 보장했지만, 동시에 사적 권력을 비대하게 만들었다. 이런 유형의 폭력이 공립 악단의 객원 지휘에서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의 근원은 개인의 성정보다 고음악 제작 시스템에 있다. 봉건적 고용 구조를 바꾸는 노력이 없다면 가디너식 폭력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고음악계가 ‘나이 든 전문가’를 무비판적으로 거장으로 떠받들어 온 관행 역시 돌아볼 계기다.
하지만 가디너는 위기를 강한 의지로 돌파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단체에서 축출됐지만, 마치 정치판에서 선거를 앞두고 신당을 창당하듯 컨스텔레이션 앙상블을 급조했다. 단기간에 앙상블이 자리 잡은 것은 광활한 농장을 소유할 만큼의 재력과, 그의 음악 성향을 선호하는 극장 관계자들이 세계 주요 공연장에 널리 포진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24년 12월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는 14일 예정된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공연을 그대로 진행하면서도, 7일 가디너와 컨스텔레이션을 긴급 초대했다. 공연 곡목 역시 기존 프로그램과 동일하게 구성해 전임 앙상블과 후임 지휘자 크리스토프 루세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엘프필하모니는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티켓 구매자에게 컨스텔레이션 공연으로의 교환을 허용했다. 지휘자 개인의 카리스마가 고음악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임을 공연장이 사실상 인정한 사례다.
가디너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복귀와 투어 재개를 알리며 무리 없이 돌아왔다. 각국 투어는 그의 음악적 역량과 더불어, 지휘자의 재능이 면죄부로 기능하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자리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 인터뷰에서 가디너는 정신 건강 전문가 상담과 인지 치료를 언급하며 자제력 강화를 주장했고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은퇴가 자연스러울 법한 팔순의 나이에 이 정도의 ‘재활 서사’를 보여준 사례는 클래식 역사에서도 드물다.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와 몬테베르디 합창단은 내 가족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이사회가 반대했다”고 밝힌 속내에는 여전히 자신이 창립자라는 주인의식이 묻어난다.
가디너가 가디언에 밝힌 인생 최대 과제는 “진지한 뮤지션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새로운 오케스트라 앞에 설 때마다 재판을 받는 심정이라며, “받아들여지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라고 했다. 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국을 처음 찾는 가디너의 마음은 어떨까. 서울 관객의 심판 결과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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